얽히고설킨 업체들 줄줄이 뽑힌다
▲ 사진 속 야간투시경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부남)는 지난 5월 19일 부품 납품단가를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방위산업체 E 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날 검찰은 E 사 본사 사무실에서 회계장부 및 납품거래 목록이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 E 사는 방위사업청에 부품 구입가격을 과다 계상하는 방식으로 4억 4000만 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허위로 부품 원가 정산자료를 제출해 1억 6000만여 원을 챙긴 의혹도 받고 있다.
E 사는 야간투시경 잠망경 등 광학류를 제조해 납품하는 곳으로 2009년 12월 말 기준 연매출 220억 원 규모의 중견 방위산업체다. 지난 2005년 전자광학장비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업체로부터 전자광학장비 기술협력 독점 계약권을 따내면서 국내 방위산업 시장에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이런 E 사의 비리 의혹은 검찰이 대형 방산업체 L 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4월 초 L 사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L 사가 협력업체에서 사들인 무기와 각종 군사장비를 정상 가격보다 비싸게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혐의를 두고 수사를 벌여왔다.
본사 압수수색 당일 검찰은 L 사뿐만 아니라 관련 해외구매 대행업체 4곳에 대해서도 동시에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벌인 업체들 중 한 외국계 해외구매 대행업체에서 확보한 부품 입고 내역 자료 분석을 토대로 E 사와 관련한 비리 의혹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E 사가 받고 있는 의혹 중 일부는 또 다른 대형 방위산업체 S 사와 연관된 납품 내역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져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은 E 사가 S 사에 열상관측장비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부품 구입단가를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수십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집중적으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S 사 관계자에 대한 수사도 벌일 예정인 것으로 전해져 결국 S 사도 이번 L 사 검찰 수사 여파를 피해 가기 어려운 상태다.
그런데 검찰 주변에선 L 사 수사를 벌이던 수사팀이 최근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은 앞서 4월 말 L 사의 전 대표이사 A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협력사들과의 거래 방식과 납품 과정의 의혹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수사 과정에서 L 사와 관련한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진 상태라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A 씨 조사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은 현재 진행 중인 방위산업 비리 의혹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이 아니고 L 사 소속 그룹과 관련한 것으로 안다”라면서 “때문에 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결국 이번 L 사 검찰 수사가 그룹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검찰에서는 대외적으로 “우선 6월 중순까지 L 사와 이번 비리 의혹이 드러난 협력업체에 대해 사법처리를 끝낼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는 상황. 그러나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팀이 수사 확대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만큼 수사가 더욱 길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L 사는 최근 현역 육군 소장이 연루된 간첩사건과 함께 불거진 사정당국의 간첩 혐의 수사에 전직 직원이 직접 개입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6월 4일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는 북한 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현역 육군 소장 김 아무개 씨를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우리 군의 작전계획과 교범 등을 북측에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진한)는 김 씨에게 정보를 넘겨받아 직접 북한 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박 아무개 씨를 구속 기소하고 또 다른 간첩 혐의로 전직 L 사 부장 손 아무개 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예비역 장교 출신인 손 씨는 지난 2004년 알게 된 북한 공작원에게 2005년 군 통신장비 기밀 자료를 넘겨주고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공작원과 통신중계기 사업의 북한 진출을 논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손 씨는 지난 5월 말 L 사를 퇴사했으며 간첩 혐의와 회사와는 특별한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손 씨의 간첩혐의가 앞서 2005년부터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L 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L 사가 방위사업체인 만큼 특정 기술 자료가 외부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L 사 측은 “자체 조사 결과 기술유출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