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범, 사제관계 성추행 의혹만 최소 4건 ‘사과’…고영, 사적 질문+술자리 강요 논란 ‘시인동네’ 폐간
이유운 시인은 자신의 SNS를 통해 고영 시인에 대한 폭로를 한 최초 고발자다. 사진=이유운 시인 트위터 캡처
#위력에 의한 강요 및 권력 행사
문단 내 미투 운동이 다시 불붙고 있다. 최근 고영 시인과 조동범 시인이 위력에 의한 강요 및 성추행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형태는 2016년 있었던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과 비슷하다. 청년 시인들은 실명을 밝히고 “등단을 빌미로 기성 문인들에게 성적희롱이나 부당한 요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최초 고발자는 이유운 시인이었다. 이 시인은 과거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에 투고한 뒤 고영 발행인 겸 시인으로부터 부적절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고 시인이 전화를 걸어 나이와 대학, 사는 곳, 좋아하는 시인 등을 물어보며 “목소리가 어리다. (좋아하는) 시인도 내가 키운 것이다. 등단하면 내 제자가 되는 것이다. 잘 키워 주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시인은 “집요할 정도로 사적인 질문을 과도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이 시인의 폭로를 시작으로 기성 문인들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받았거나 술자리에 나올 것을 강요받았다는 폭로들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다. 김민서 시인은 “고 시인이 올해 3월 저를 단양으로 내려오라고 종용하여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 시인은 “이 사건으로 고 시인이 자필 사과문까지 작성하였으나 그 이후로도 ‘네가 여성적 매력이 있다는 뜻이니 내가 그렇게 한 게 기분이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 ‘너에게 연애감정이었다’ 등의 말을 했다”고도 밝혔다.
논란이 일자 기존 시인들도 하나둘 입장을 밝혔다. 장은정 평론가는 자신 역시 ‘시인동네’에서 게스트 기획자로 일하면서 조동범 시인으로부터 불쾌한 언사를 들었다고 했고 조해주, 김승일 시인 등은 ‘시인동네’에 싣기로 예정한 원고 청탁을 거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고 시인은 7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신인문학상 본선 진출자와의 사전 통화, 인정합니다”라면서 “최종심에 오른 분들에 대한 사전 검증은 잡지 편집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업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간단한 신상 정보를 물었습니다. 오랜 관행이자 관례라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저의 방식이 ‘권력에 의한 위계 및 위력’으로 느껴 상처를 받으신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피해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빠른 시간 내에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도 했다.
이어 “이제 저의 방식은 폐기될 것입니다. 2020년 9월호를 끝으로 ‘시인동네‘는 폐간하게 됩니다. 이것 또한 저의 방식입니다”라며 폐간 결정을 알렸다. 이 같은 결정에 ‘시인동네’ 편집위원들은 “폐간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방식이다. 폐간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이는 편집위원회의 뜻과는 다른 것이었다”며 “8월호를 마지막으로 ‘시인동네’는 폐간함을 알린다”고 밝혔다. 고 시인의 일방적 결정에 반발한 편집위원들이 모두 사퇴하면서 예정보다 한 달 앞서 폐간하게 된 셈이다.
8월 7일 기준 트위터에서는 ‘#고영시인은규탄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트위터 캡처
#조동범 시인, 수강생 성추행 의혹도 터져
‘시인동네’ 폐간에도 문단 내 폭로 운동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조동범 시인이 강사의 지위를 이용해 수강생들을 성희롱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과거 조 시인의 수업을 들은 한 수강생은 최근 “지난해 정독도서관에서 만든 시 프로그램을 참여해 듣던 중 수강생과 조 시인이 함께한 중간 뒤풀이에 참여했다. 술에 취한 나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택시를 같이 탔고 내게 키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 시인에게 “‘당신은 시인이 아닌 장사꾼 같다. 유부남 아니냐?’고 물었으나 ‘나와 자고 싶다’는 말만 반복해 도망쳤다”며 “그 후 계속 연락이 왔으나 차단했다”고 밝혔다. 현재 조 시인은 해당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직위를 내려놓겠다고 밝힌 상태다. 조 시인은 2일 자신의 SNS를 통해 “현재 나가고 있는 강의를 모두 그만두었다. 학교에도 사직 처리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반성하고 자숙하겠다”며 공개사과했다.
그러나 조 시인의 사과에도 일부 시인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 시인의 성추행 의혹이 처음이 아닌 까닭에서다. 취재 결과, 조 시인을 향해 제기된 성추행 의혹은 2000년대 후반, 2015년, 2016년, 2019년 등 최소 4건으로 대부분 사제 관계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요신문이 접촉한 피해자 및 지인들은 “조 시인은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편지 등의 방법을 통해 사과해왔다”고 밝혔다. 한 피해자 지인은 “사과문이 더 이상 말뿐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6일 일요신문과 만난 복수의 시인들은 기성 문인들의 성희롱이 일상에 가까웠다고 토로했다. 등단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A 작가는 “최영미 시인의 미투 이후 문단 내 성희롱 및 성폭력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자행되고 있다. 이제 막 등단을 하거나 아직 등단을 하지 못한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고 있다. 문단 내에 지지기반이 없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약자 계층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B 작가는 “성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고 해도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는 계속해서 문제의 작가들을 강사로 채용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사회 구조가 이들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조동범 시인 “2차 가해 일어날까 조심” 문단 내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조동범 시인이 최근 “제기된 문제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시인은 2000년대 후반 습작생으로 추정되는 독자, 2015년 한겨레문화센터 수강생, 2016년 서울예대 제자, 2019년 정독도서관 시 프로그램 수강생 등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 시인은 6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개 사건 모두 법적으로 간 적은 없다. 실제로 잘못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였고,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다른 사실도 있으나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무리가 된 상태다. 또한 나의 잘못으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일어날까 조심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로 인해 다른 분들이 또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까 걱정되었다. 이번 사태에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리며, 자숙하는 기간에 저의 인터뷰가 또 다른 잘못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