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투쟁 계획 접고 원내에서 ‘인내투쟁’…단톡방으로 결속 다지고 당명 바꿔 재도약 노려
이어 김 위원장은 “통합당이 야당으로서 무력하게 보일지라도 의회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의원 개개인이 토의를 통해 실상을 제대로 지적해 국민이 알 수 있게 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대응 방법이 없었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른바 ‘나는 임차인입니다’ 발언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면서 통합당 존재감을 알린 윤희숙 의원의 사례를 든 것으로 읽힌다.
7월 30일 본회의장에서 임대차 3법에 반대하는 5분 연설을 하는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 이 연설로 윤 의원은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 초선’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어라? 말로도 통하네
통합당은 7월 말 상임위 법안 심사 자체를 무력화시킨 민주당의 ‘압박 정치’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장외투쟁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부동산 민심이 흉흉해지고 징벌적 과세에 대한 국민적 원성까지 커지자, 이제 밖으로 나가 바람몰이를 할 수 있다는 당내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 사이에선 “나라가 니꺼냐”는 구호까지 터져 나왔다.
통합당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조건이 따라붙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투쟁을 할 때 필요한 대규모 물적·인적 자원이 부족했던 것이다. 계획서를 이리 꾸미고 저리 꾸며 봐도 장외투쟁은 불가능한 시도였다.
그러던 중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사건’이 터졌다.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된 윤희숙 의원의 5분 발언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 눈높이를 맞춘 연설로 호평을 받았다. 고성을 지르지 않고도, 막말을 하지 않아도,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피켓을 들지 않아도, 짧은 연설로도 먹힌다는 것이 확인됐다.
통합당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까지 나서 윤 의원 발언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보수가 저런 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가 한걸음 더 진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의원 사례로 통합당은 ‘장외투쟁 불사’ 전략에서 선회했다. 원내 온건투쟁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월 4일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총에서 백팔십도 바뀐 통합당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결국 당 지도부가 결정했던 필리버스터도 취소됐다. 당 지도부는 필리버스터에 나설 의원들 명단까지 확정해놨지만 거둬들였다.
대신 의원들이 본회의에서 여당이 낸 법안에 대한 반대 토론에 나섰다. 비록 윤희숙 의원의 ‘파괴력’에는 못 미쳤지만 ‘달라진 통합당’을 국민들에게 새롭게 선보인 계기로 평가 받았다.
김종인 위원장은 8월 4일 의원총회에서 “나름대로 논리를 전개해 국회 발언을 통해 알리게 되면 현명한 국민이 납득할 것”이라고 변화에 거들었다.
통합당의 ‘인내 투쟁’이 먹히면서 8월 6일 나온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의 격차가 처음으로 소수점까지 좁혀졌다. TBS 의뢰로 진행된 리얼미터의 정당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공급 정책 등으로 혼란 국면을 나타냈던 민주당의 지지도는 전주보다 2.7%포인트(p) 하락한 35.6%, 통합당 지지도는 3.1%p 오른 34.8%로 두 당의 지지도 차이는 불과 0.8%p였다. 통합당 지지도는 창당 직후 기록(2월 3주차·33.7%)을 웃도는 역대 최고치다.
특히 서울에서는 통합당 지지율(37.1%)이 민주당(34.9%)을 넘어섰다. 8월 3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서울의 통합당 지지율(35.6%)이 민주당 지지율(33.8%)을 역전하는 등 민심 추이의 큰 변동이 감지된 바 있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당 지지율 반등도 수확이지만 통합당은 이번 ‘인내 국회’를 통해 ‘똘똘한’ 서울시장 후보도 발굴해냈다. 윤희숙 의원이 단번에 언론에 의해 서울시장 후보군에 안착한 것이다. 특히 윤 의원은 경제를 알고, 참신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인선 기준’에 부합한다. 또한 정치 신인임에도 ‘레전드 연설’ 인기를 타고 전국적 지명도를 확보해, 민주당의 어느 후보와도 겨뤄볼 만하다고 평가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전통적으로 통합당 의원들의 결속력은 약하다는 평이 많았다. 이를 두고 개인 자존감이 강한 판·검사 및 중앙정부 고위 관료 출신 의원들이 많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왔다. 몇몇이 모이는 활동은 있었지만 ‘모두 다 함께하는 활동’은 적었다. 모든 의원이 참여하는 단톡방 운영이 쉽지 않았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됐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에 밀리는 상황을 겪으면서 통합당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4·15 총선이 끝나자마자 통합당에서 지역별, 선수별 단톡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모든 의원의 참여를 목표로 하는 단톡방 개설도 이뤄졌다.
통합당 의원들의 단톡방은 전원 참석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거의 모든 의원들이 참여해 활발하게 의견 개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의원 103명 가운데 참여 인원은 100명이다. 빠진 의원은 김희국 김태흠 홍문표 의원 3명이다. 이들이 단체 행동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각자 나름의 사연으로 단톡방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홍문표 의원의 경우 자신의 2G 휴대폰에 카카오톡이 설치되지 않아 단톡방에 참여하지 못했다. 홍 의원은 카카오톡이 설치된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지만, 2G 휴대폰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흠 의원은 카카오톡을 아예 쓰지 않아 단톡방에 초대받지 못했다. 김희국 의원은 현재 참여하고 있는 단톡방이 너무 많아 통합당 단톡방을 스스로 빠져나왔다.
통합당 전체 의원 단톡방에서 활동이 단연 돋보이는 의원은 언론인 출신 조수진 의원이다. 가장 활발히 활동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내고 다른 의원들의 입장을 물었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의 김예지 의원도 직접 글을 올리면서 단톡방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등 단톡방이 꽤 활성화돼있다는 것이 의원들의 전언이다.
단톡방 내 당 지도부의 일방적 훈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자신의 의견보단 올라온 글들을 주로 살피는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은 언론 기사 등을 공유하며 정치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지만, 이따금 “같이 식사하실 분 구한다”며 ‘번개모임’도 제안,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관료 출신 통합당 한 초선의원은 “초선은 힘을 못 쓰고, 재선·3선 이상만 힘을 가진다는 과거 통념이 요즘 통합당에서는 자취를 감춘 것 같다. 민주당이 너무 세게 힘자랑을 하면서 당 내부에 ‘이대로는 안 된다. 힘 합쳐 잘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가고 있다. 밖에서 오래 전에 봤던 통합당과 요즘 안에서 겪는 통합당은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8월 4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왼쪽)과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간판까지 바꾸면 이미지 쇄신 완료?
통합당은 ‘인내 투쟁’으로 얻어낸 점수를 잘 활용해가면서, 곧 새 당사 이사에 새 당명 간판까지 부착한다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있다. 때문에 요즘 당 내부는 몹시 분주한 모습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당명으로 인해 미래통합당이 공격받는 상황부터 없애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정당법상 공식 약칭인 ‘통합당’ 대신 ‘미통당’으로 불리거나 안티세력으로부터 ‘미통닭’ 등으로 희화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미래통합당’에는 담겨있지 않아 이를 개선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점에서 부르기 쉬운 짧은 세 글자 정도의 당명을 김 위원장은 원하고 있다.
통합당이 당명 개정을 위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보수·희망·한국·자유·민주·국민·미래 등의 단어가 많이 언급됐다. 가장 많이 제안된 단어를 중심으로 김 위원장이 당명을 단순화해서 세 글자로 짓자고 제안한 만큼, 이 같은 두 글자가 들어간 ‘○○당’이 새 당명으로 유력시된다. 이렇게 되면 당색은 과거 빨간색 단색에서 프랑스 국기처럼 3색으로, 당명은 단순화해서 세 글자로 정해질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당명 변경과 당사 최종 입주는 최근 수해 피해를 고려해 다소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이어 통합당은 정강·정책에 같은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3선까지만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규정을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인사수석실을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 방안도 논의 중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통합당 10대 정책은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 10대 정책은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와 202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쓰일 공약의 밑바탕이 될 전망이다. TK(대구·경북)지역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헛발질 속에서 통합당이 반사 이익을 본 측면이 있다. 우리 당의 본실력으로 국면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하지만 통합당이 과거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더 중요한 것은 통합당의 변화를 국민들이 읽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대안 세력이 없다고 국민들이 판단했다면 이제 통합당 정도면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여론조사 지지율의 반등이다. 통합당이 기업인들의 애로도 해소하지만 서민들과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에도 더 전향적 자세를 취한다면 지지율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