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잊자니 피눈물 납디다 T T
▲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최근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 5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76.3%가 ‘회사 업무를 위해 개인비용을 지출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런 예상치 못한 지출 때문에 속병을 앓는 직장인들이 상당수다. 특히 주로 회사 밖에서 뛰는 영업파트는 월급 중 개인비용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은근히 높다.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관리부서에 근무하는 L 씨(31)는 지방 출장길마다 속이 상한다.
“가맹점이 전국에 있기 때문에 지방 출장이 잦은 편입니다. 간단한 기계 고장 같은 건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장비도 함께 챙겨가죠. 몇 개 안 되지만 은근히 무게가 나가요. 서울에선 택시를 타더라도 카드가 되니까 괜찮은데 지방 매장일 경우 난감합니다.
일단 카드 결제가 안 되는 택시가 대부분이고요. 간이영수증조차 갖추지 않은 택시가 많아요. 게다가 고속버스가 있는 지역은 KTX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 급할 때는 일단 KTX를 타지만 이용하면서도 내 돈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맥 빠집니다.”
L 씨는 어지간하면 몸이 불편하더라도 확실히 영수증 처리가 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편한 길을 택하게 된다고. 그는 “매번 이 부분에 대해서 건의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회사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라 이제는 포기 상태”라고 털어놨다. 의료기기 업체의 국내 영업을 맡고 있는 S 씨(36)도 같은 심정이다. 업무 특성상 접대 자리가 많은데 그때마다 개인 비용이 수월찮게 나간다고.
“거래처 사무실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비용은 제가 개인적으로 사가는 거라 회사에서 영수증 처리가 되지 않아요. 아깝긴 하지만 일단 영업 결과가 중요하니까 제가 지불합니다. 접대 자리에서도 그래요. 끝나고 보통 택시를 탑니다. 그때 거래처 직원이 탄 택시기사한테 택시비를 얼마 정도 주는데 영수증부터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고스란히 제 지갑에서 나가는 돈인데 영업을 위해서 감수합니다.”
S 씨는 “선물 사는 비용까지 한 달 30만~40만 원은 기본인데 많은 달은 50만 원을 훌쩍 넘어 안 그래도 대책을 마련하려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주로 내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도 할 말은 있다. 교육 서비스 기업에 근무하는 K 씨(41)는 거의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나름대로 개인 비용 지출 때문에 고민이 많단다.
“외부 강의를 나간 직원들이 빠지면 사무실에 4~5명이 남습니다. 저를 빼고 여직원만 3~4명인데, 점심때 곤란한 경우가 많아요. 다들 20대 중반 정도의 어린 직원들인데 일일이 밥 먹을 때마다 돈을 걷는 게 체면이 서지 않아서 제가 카드로 계산할 경우가 많지요. 굳이 나서지 않으면 더치페이로 할 텐데 그걸 못 참는 겁니다. 처음에 그렇게 했더니 점심때만 되면 으레 또 제가 내려니 하게 되죠. 요새는 개인적인 약속이 있다고 하고 먼저 사무실을 나옵니다. 진짜 약속이 있을 때도 있지만 사실 없는 날이 대부분이에요. 그냥 사무실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혼자 가서 밥 먹고 와요.”
K 씨는 한 달 밥값으로 쓰는 비용 때문에 아내와 몇 번의 입씨름까지 벌였다고. 그는 “식당에 혼자 들어가는 게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털어놨다. 문구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J 씨(여·27)도 업무 때문에 쓰는 개인 비용이 은근히 부담스럽단다.
“품질에 손상이 갈까봐 디자인 샘플을 거래 업체에 직접 갖다 줘야 할 때가 많아요. 내근 직원 중 제일 막내인 제가 주로 그 일을 하죠. 한여름이나 애매한 곳에 있는 거래처에 갈 때 땀 뻘뻘 흘리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당연히 택시 타죠. 영업팀은 외근이 많아서 아예 처음부터 교통비 지원이 되지만 저는 내근직이라 따로 책정된 비용이 없어서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비용처리를 해줍니다. 그래서 그냥 제 돈으로 편하게 택시 타고 가곤해요. 하지만 그것도 쌓이니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속상하네요.”
막내 입장이라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J 씨는 “빨리 막내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게 요즘 가장 큰 관심사”라고 털어놓는다. 너무 소액이라 비용 청구가 어려운 경우도 직장인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반복되면 무시할 수 없는 액수가 되기 때문. 소규모 여행사에 근무하는 C 씨(여·31)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개인비용이 지출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회사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까 개인비용 지출 부분을 꼼꼼히 따져 받아내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직원을 구할 때도 유료 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올리는데요, 가장 오래 일한 데다 편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사장님이 일단 저보고 결제하고 나중에 준다고 하시죠. 솔직히 그런 거 나중에 달라고 하기가 곤란하거든요. 외근 나갔다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서 뭐 좀 사오라고 할 때도 있는데 금액이 많아봤자 1만 원을 안 넘어요. 이런 것도 일일이 달라고 하기가 힘들고요. 이런 게 쌓이다 보니까 꽤 되네요. 사장님이 미리미리 챙겨주면 좋을 텐데 꼭 민망하게 제가 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시네요.”
홍보회사에 근무하는 H 씨(29)도 C 씨와 비슷한 경우다. 소액을 청구하기가 어려워서 회사를 위해 본인 지갑을 자꾸 열게 된다고.
“사보 제작팀에 있어서 외부 촬영팀 2~3명과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장시간 진행하다보면 보통 음료수를 대접하는데 이런 건 비용처리 하기가 애매합니다. 2000원이 안 되거나 많아봤자 3000원인데 총무팀에 영수증 제출하기가 민망하죠. 남자가 쩨쩨하다는 소리 들을까봐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한 달 통틀어 큰 비용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순전히 회사를 위한 지출이니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네요.”
컨설팅 업체 총무팀에서 5년 동안 일한 Y 씨(여·33)는 “회사를 위한 개인비용 지출은 소심해 보여도 꼼꼼하게 챙겨 받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사람이 잘아 보일 수 있지만 내 경우 단돈 500원이라도 꼭 청구한다”며 “회사 물품 구입시 할인비용을 제하지 않고 영수증 처리해 오히려 적은 액수라도 챙겨올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