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교통시설 등 인프라 부족으로 불편 호소…“총리나 장관도 없다” 행정 비효율성도 숙제
정부세종청사. 사진=연합뉴스
대외적으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1만 3117명이던 세종시 인구는 2020년 7월 기준 34만 6217명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세종시는 2030년 인구 목표를 80만 명으로 잡고 있다. 여기다 세종시 출산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수치로만 접근을 했을 때 세종은 ‘행복도시’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 이야기는 달랐다. 이들은 세종시의 인프라 부족에 불만을 토로했다.
세종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거주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교통이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중소기업 직원 김 아무개 씨는 “세종시에선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제대로 된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김 씨는 “시내버스 노선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지하철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교통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인구가 폭증하다보니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불편이 상당하다”고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가장 큰 인구 비중을 차지하는 직군은 공무원이다. 일부 공기업 및 중소기업 직원들도 있다. 자차를 소유하지 않은 공무원 및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 ‘어울링’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어울링은 서울시 ‘따릉이’처럼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다. 그러나 요즘 같은 장마철엔 어울림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세종시 거주 공무원 및 직장인들의 걱정이다.
세종 시외고속버스터미널 앞. 대기 중인 택시는 단 한 대뿐이다. 사진=이동섭 기자
세종시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이 아무개 씨는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이상한 것이 하나 있을 것”이라면서 “세종시에서는 택시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이 씨는 “택시 숫자만 보면 아마 시골 오지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한 택시 운전사는 “세종시 내 택시 숫자는 상당히 적은 편”이라고 했다. 택시 운전사는 “세종시 소재 택시 숫자는 300대”라면서 “내년까지 60대가 증가해 360대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인구 1000명 당 택시 한 대가 있는 꼴인데, 인구 규모가 비슷한 충남 아산시의 경우엔 택시가 1000대가 넘는다”고 했다.
세종시 근무 공무원 중엔 수도권에서 출퇴근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출퇴근 시간이면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마련된 주차장에 모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관광버스들의 행선지는 다양하다. 공무원들이 이용하는 출퇴근 버스 노선은 이곳이 서울이나 수도권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촘촘하다. 서울 각지를 비롯해 수원, 인천, 분당, 부천, 안산, 안양 등 안 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노선이 다양하다.
정부세종청사 공무원 통근버스 노선도. 사진=이동섭 기자
반면 공무원이 아닌 직장인들은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세종 시외·고속버스 터미널은 행정수도의 교통을 책임지기엔 다소 규모가 작아보였다. 내부도 한산했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노선도 지방 중소도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대기하는 장소엔 버스뿐 아니라 일반 승용차들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터미널 앞에도 택시는 많지 않았다. 8월 6일 오후 5시 세종 시외·고속버스 터미널 앞에 대기 중인 택시는 단 한 대였다. KTX 등 열차를 이용하려면 자차나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걸리는 오송역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자차를 보유하지 않은 이들이 오송역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 것도 쉽지 않다.
행정수도 후보지의 시외고속버스터미널. 버스와 승용차가 한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이동섭 기자
공공 교통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차로 출퇴근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이 현지 시민들의 말이다. 세종시에서 자차를 이용하는 한 공무원은 “교통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도로가 좁아 차량이 정체되는 경우가 잦다”면서 “여기다 도로 대부분이 시속 30~50km 이하로 차량을 운행하도록 돼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도로가 좁은데 신호는 많고 속도 규제는 빡빡하니 자차를 이용하더라도 교통 사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종시 아름동에서 정부세종청사 인근까지 4.5km 거리를 자차로 출퇴근하는 한 직장인은 “출근할 때 보통 30~45분이 걸린다”면서 “4.5km 거리를 가는 데 45분이 걸리면 100m 가는 데 1분이 걸리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세종시 중심부 도로는 ‘계획 신도시’의 주도로라 하기엔 상당히 좁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대동맥이라 불리는 한누리대로는 가변차로를 포함해 왕복 6차선 규모였다. 세종특별자치시청 앞은 골목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좁았다. 시청 앞 도로는 왕복 2차선이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정부세종청사 인근 도로 규모도 왕복 2~4차선 규모였다. 청사 옥외주차장에는 차가 가득했고, 주차 구역이 아닌 일반 도로변에 승용차들이 세워져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주마다 1회 이상 세종시로 출장을 온다는 건설업계 관계자는 “도시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2030년까지 세종시 인구가 80만 명으로 늘어난다는데 현재 세종시 교통 인프라로는 현재의 곱절 이상인 인구를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 계속된다.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주도로인 한누리대로. 사진=이동섭 기자
“도로는 처음부터 ‘최대 임계치’를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도로를 넓게 설계해서 도시에 나쁠 것이 없다. 그런데 세종시는 도로를 지나치게 좁게 설치해 놨다. 1970년대 계획도시인 옛 창원은 계획 초기부터 왕복 10차선짜리 ‘중앙대로’를 깔아놨다. 일산 신도시나 안산 신도시도 굵직한 대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그에 비해 행정수도를 목적으로 건설한 세종시의 도로 인프라는 열악한 편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진 상황에서 세종시 중심부 도로를 확충하려면 고가도로나 지하차도를 파는 수밖에 없다. 추후 국회나 청와대까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들어왔을 때 교통 수요를 세종시와 정부가 어떻게 감당할지 궁금하다.”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내엔 없는 게 또 있다. 바로 숙박업소다. 도시 안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호텔·모텔 등 숙박업소를 볼 수 없었다. 세종으로 출장 온 공무원 혹은 대관 관계자들이 머무를 만한 숙소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벗어난 면 소재지에나 가야 찾을 수 있었다. 정부세종청사 인근엔 호텔 건설 현장이 두 곳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세종시로 잦은 출장을 오는 한 공기업 관계자는 “호텔 건설 작업 멈춘 지가 꽤 됐다”면서 “세종으로 출장을 오면 행정중심복합도시 밖으로 멀리 나가거나, 대전 유성지구로 가는 편”이라고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내에선 ‘나 혼자 산다’도 쉽지 않다. 원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시 원룸에 거주하는 한 20대 공무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주도로인 한누리로를 끼고 원룸·오피스텔 건물이 일부 있다”면서 “해당 원룸과 오피스텔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아파트”라고 했다.
이 공무원은 “서울에서 출퇴근을 해보다 녹록지 않아 세종으로 이사를 왔다”면서 “세종에서 원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엔 월세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20만~30만 원 하던 월세가 40만 원을 웃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이 박봉인데 월세가 오르기 시작하면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면서 “세종시 물가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싸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세종특별자치시청 앞 도로. 왕복 2차선인 도로에 승용차들이 복잡하게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동섭 기자
정부부처 소속 공무원들은 “세종시엔 총리나 장관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청사는 세종시에 있는데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은 서울에 있는 경우가 잦다”면서 “장관이나 총리는 거의 세종에 없다고 보면 되고, 국장급 고위 공무원들은 일주일에 1~2회 세종에서 목격할 수 있다”고 했다. 세종시에서 공무원들과 협업을 담당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세종청사가 만들어진 뒤 전반적으로 공무원 조직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라고 귀띔했다.
최근 들어 폭등한 부동산 가격은 세종시 부동산 실수요자들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세종시 현지 주민 박 아무개 씨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강 유람선을 타고 부동산 가격을 설명하는 가이드를 언급하며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언급했는데 세종은 상황이 더하다”고 했다. 박 씨는 “세종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금강 물줄기를 따라가면서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강변 인근 아파트 가격을 이야기하면 더욱 경악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박 씨는 “다만 서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세종을 가로지르는 강엔 배가 지나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얼마 전만해도 이 지역구 국회의원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였다”면서 웃었다.
세종=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