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줄 았았던 ‘사안’ 뒤늦게 왜?
▲ MBC 일산제작센터 전경. SK건설이 공사 수주하는 과정에서 특혜 의혹을 받기도 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여러 가지 정황상 이번 검찰 수사는 그 종착역이 어디가 될 것인지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SK 수사의 진짜 노림수는 SK가 아닌 MBC라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오륙도 SK 뷰 사건과 함께 SK건설이 2001년 경기도 고양시 MBC일산제작센터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MBC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은밀히 내사를 진행했다. 현재 검찰은 MBC 이 보도한 ‘스폰서 검사’ 의혹으로 내부 분위기가 ‘쑥대밭’이 된 상황이다. SK건설에 대한 검찰 수사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SK그룹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SK건설 비자금 수사에 다시금 시동을 건 검찰의 움직임을 쫓아가봤다.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권오성 부장검사)는 SK건설이 부산 용호동에 오륙도 SK 뷰 아파트를 지으면서 시행사인 무송엔지니어링(무송)과 이면계약을 한 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4일 무송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SK건설은 2004년 무송과 미래 수익 배분을 포함해 분양시기와 분양가 등 아파트 사업의 전권을 넘겨받는다는 내용의 이면계약을 하고서 공사비나 수익금을 회계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면계약 내용에는 ‘무송은 시행사로서의 실질적인 지위를 SK건설에 양도하고, SK건설은 무송에게 사업비용을 지급한다’ ‘무송은 대외적으로는 시행자의 지위를 사업 종료 시까지 보유하나, SK건설로부터 파견된 대표이사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응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마디로 SK건설이 아파트 분양 전에 확정이익을 선지급 하는 조건으로 무송을 일종의 ‘바지 시행사’로 내세웠다는 얘기다.
SK건설은 지난 2008년 당시 계약해지 소송을 벌이던 일부 오륙도 SK 뷰 입주예정자들에 의해 이 같은 이면계약 의혹이 제기돼, 실제 사업의 전권을 확보한 시공사가 시행사와 분양대행사를 내세워 아파트를 분양한 뒤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받는 등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면계약이 사실일 경우 SK건설은 시공·시행단계의 개발이익을 모두 챙겼으면서도 회계장부에는 시공 이익만 기재하는 수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와 관련해 정작 언론의 주목을 끄는 것은 SK건설이 2001년 경기도 고양시 MBC 일산제작센터(드림센터)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특혜 의혹을 받았다는 점이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산제작센터 건설은 SK건설이 MBC가 소유한 땅에 1100억 원 상당의 방송센터를 지어주고 나머지 땅에 오피스텔과 상가 등을 지어 분양해 대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MBC가 일산제작센터를 발주할 당시 SK가 1차 심사에서 부적격자로 탈락했음에도 2차 심사에서 사업자로 선정된 배경이 석연치 않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제로 MBC 내부에서조차 SK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것을 두고 적지 않은 잡음이 나돌았다. MBC 선임자 노조인 공정방송노조는 지난해 9월 “오피스텔 인·허가 과정에서 MBC 인사들이 SK건설 법인카드를 사용한 정황이 있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보수성향의 미디어 시민단체인 방송개혁시민연대 역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었다.
하지만 당시 MBC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오히려 MBC는 의혹을 제기한 공정노 간부들에 대해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 조치를 취했고, 방송개혁시민연대 인사들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에 피소된 시민연대 관계자들에게 최근 1심 선고 공판에서 각각 300만~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상태다.
방송계 주변에서는 SK건설이 연관된 사건에 검찰이 갑작스럽게 강한 사정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MBC가 연관된 사건은 지난해 9월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물론 국세청도 동원되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인 바 있다. 당시만 해도 MBC 사장 교체와 관련해 설왕설래가 이어지던 때였고 검찰 수사가 MBC 사장 교체를 우회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엄기영 전 사장이 물러나고 김재철 사장이 영입된 이후 답보 상태를 보여 왔다.
그러나 검찰이 몇 개월 만에 다시 이 사건을 끄집어낸 데는 최근 이 보도한 ‘스폰서 검사’ 건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스폰서 검사’ 의혹으로 일격을 얻어 맞은 검찰이 SK건설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면서 MBC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려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검찰 수뇌부는 이번 건과 관련해 MBC 측에 상당한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 박기준 부산지검장이 취재에 과민하게 대응했던 부분을 여과없이 그대로 방영한 것이 검찰을 상당히 자극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명숙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 이후 다음 수사를 고민하던 특수2부가 이 ‘스폰서 검사’ 의혹을 폭로하자 SK건설 비자금 수사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검찰과 MBC 일각에서는 당시 MBC 경영진 및 노조가 SK건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말이 나돈 바 있다. 결국 검찰 수사 과정에서 SK건설과 MBC 간의 수상한 자금 흐름이 포착될 경우 수사의 불똥이 자연스럽게 MBC 쪽으로 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SK그룹 오너 일가를 직접 겨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명숙 뇌물수수 사건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코너에 몰린 중앙지검 특수2부가 독기를 품고 이번 수사를 통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에서는 지난해 9월 내사가 시작된 이후 또 다른 SK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SK그룹 오너 일가가 종로구 서린동 땅 일부를 E 사의 이 아무개 대표 이름으로 증여한 의혹에 대해서 확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이처럼 SK건설에 대한 수사에 나서자 SK 측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큰 홍역을 치렀던 SK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지만 그룹 정보팀을 동원해 검찰 수사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번 수사에 대해 SK 측은 “비자금 의혹은 지난 1년여간 계좌추적 등 검찰 수사를 통해 상당 부분 규명됐으며, 국세청 세무조사에서도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고 해명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