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외출하냐? 나도 한다!
▲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
“와이프가 비호감이라고?” 친구 A와의 대화 중 너무 깜짝 놀란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르는 꼴이 됐다. 비호감. 정치인이나 특정 연예인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내 스타일이 아닐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일 잘하고 똑똑한 데 예쁘기까지 한 직장 동료가 모두가 싫어하는 잡무를 맡겠다고 나섰을 때에도 우리는 가끔 “착해 보이려고 별 짓을 다해. 암튼, 괜히 비호감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와이프 혹은 남편을 두고 “비호감이야”라니? A는 “섹스는커녕 와이프가 가까이 오는 것도 싫고, 앙탈을 부리는 것도 싫어. 완전 비호감이야. 목소리는 또 얼마나 코맹맹이 소리인지. 아, 섹스리스도 지겹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지난 7년 동안 줄곧 코맹맹이 목소리였을 텐데, 왜 지금에서야 갑자기 듣기 싫다는 것인지, 원! A의 말을 들을 때마다 “야, 와이프가 비호감이라고 말하는 남자는 너밖에 없을 거다. 최소한 ‘권태기’ 정도로는 표현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맞받아쳤지만, 한편 ‘남자들이란! 나중에 내 남편도 나가서 저럴 거 아냐?’라는 걱정이 앞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A는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워댔다. 와이프한테서 만족하지 못하는 성생활을 다른 데서 해소하고 있었다. 그는 와이프와는 180도 다른, 이른바 ‘술집 여자 스타일’을 좋아했다. 조신하고 새침한 아내와 달리 화끈한 그녀들한테서 매력을 느낀다나? 나는 A의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A의 와이프가 남편 앞에서만 ‘얌전한 현모양처’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A가 그 정도의 바람을 피울 정도라면, A의 와이프 역시 그 이상의 바람을 피울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으니까. 무엇보다 여자가 5년간의 섹스리스를 참으면서 줄기차게 현모양처이긴 쉽지 않다. 매달 억대의 월급을 가져다준대도 말이다.
최근 학부모 모임에 다녀온 친구 B는 불륜의 현장을 목격한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요즘 불륜이 트렌드인가봐.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남자친구 있는 유부녀가 진짜 많더라. 학부모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몇몇 아줌마의 남자친구가 마중을 나왔더라니까. 대부분이 젊은 남자더라고. 얼마나 공공연한 사이면 아이의 학교까지 오냐고. 남부끄러운 건 고사하고, 나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들킬까봐 학교에는 못 데려올 것 같은데 말야”라고 부러움이 반 섞인 목소리로 얘기했다. B의 얘기를 들은 노처녀 C는 분노했다. “있는 것들이 더해. 유부녀가 하나 더 가지니까, 노처녀인 내가 가질 남자가 없는 거라고. 아니, 그렇게 남편이 싫으면 이혼을 하든가”라고 말했던 것. 순진한 노처녀 C의 얘기를 듣자마자 난 웃어버렸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충고를 건넸다. “아니, 바람난 유부녀가 이혼을 왜 해? 남편이 돈을 벌어다줘야 바람을 제대로 피울 수 있는 건데. 그리고 유부녀가 과감하게 바람을 피울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남편이 대놓고 바람을 피우면서 이혼은 하지 않을 때, 여자도 과감하게 바람을 피울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서로의 불륜을 모른 척하면서 즐기는 거지”라고 얘기했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가 ‘맞바람’이다. 남편에게, 혹은 남자친구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다른 데서 욕망을 채우는 것은 흔한 일. 그런데 위험한 것은 남자의 바람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여자의 바람은 대게 집을 나가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여자는 욕정으로 섹스를 시작했다가도, 섹스를 반복하면서 애정이 깊어지고, 급기야 불륜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하다. 게다가 불륜의 상대는 젊은 남자이거나 오래 굶은 이혼남, 아내와의 섹스에 시들한 유부남이니, 얼마나 짜릿하겠나. 남편과의 섹스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여자라면, “내가 왜 그동안 남편하고만 섹스를 했을까?” 하는 후회까지 생길 정도다.
그래서, 아내가 바람피우는 걸 어쩌라는 말이냐고? 여자에게는 바람피울 틈을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속으로 ‘나는 바람을 피우지만, 내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쑥맥이야’라고 자신감을 잃지 않은 남편에게 경고하고 싶다. 알고 보면 당신이 바람을 피웠던 그날, 여자 역시 바람을 피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남자가 집에 있지 않은 시간에 여자만이 집에서 남편을 기다릴 것이라는 착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고.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여자는 여전히 부재중일 수 있다고 말이다.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