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입방아’ 단골손님
정·관계 유력 인사나 기업들의 해외 비자금은 여간해서 찾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사정당국은 몇몇 대형 수사 과정에서 일부 스위스 비자금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IMF의 주역’으로 불리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일가의 스위스 비자금이었다. 정 전 회장의 넷째 아들 정 씨는 1997년 11월 회사 임직원들과 짜고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을 위해 설립된 동아시아가스에서 회삿돈 3270만 달러를 스위스의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정 씨는 실제로는 동아시아가스가 갖고 있던 러시아 회사 ‘루시아 석유’ 주식을 같은 나라 회사인 ‘시단코’에 5790만 달러에 매각했으나 이 사실을 숨기고 페이퍼 컴퍼니에 2520만 달러에 판 것처럼 국내 당국에 허위 신고하고 3270만 달러를 스위스 비밀계좌에 빼돌렸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나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아직까지 해외 비자금과 관련한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가깝게는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 씨가 조세 피난처에 투자회사를 세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연 씨는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와 함께 500만 달러를 투자해 조세피난처 버진 아일랜드에 창업 투자 회사를 세운 바 있다. 설립자금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지원한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지난 2006년 현대자동차 그룹 비리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1999년 12월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페이퍼컴퍼니인 오데마치 펀드를 설립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스위스와 조세조약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양국의 정보교환 규정도 삽입된다고 한다. 올 하반기 중에는 타협점을 찾을 공산이 크다고 금융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개정안에 정보교환 규정이 삽입되면 지금까지 소문으로만 나돌던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나 기업들의 검은 돈의 실체는 서서히 그 베일을 벗게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