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 금지 조치 연장 목소리 높여…경실련‧정치권도 가세, 추가 연장 가능성 무게
2019년 4월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전수조사 및 근절촉구 기자회견에서 경실련, 희망나눔 주주연대 등 참석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매도 폐지론 등장한 까닭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와서 매도를 한 후 추후 주식을 사서 빌린 주식을 갚는 투자방법이다. 공매도는 증시 거래량을 늘리고 과열장에서 주가 폭등을 막아 거품을 방지하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급락장에서 공매도가 증가하면 투매 등으로 가격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폭락장이 이어지며 증권 시장이 흔들리자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금융위에 따르면 코스피에서 지난해 3180억 원 규모이던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이 지난 3월 11일 6633억 원, 3월 12일 8722억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프랑스와 그리스, 이탈리아 등 EU 6개국과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도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시행했다. 다만 EU 6개국의 경우 두 달 가까이 시행한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제외하고 모두 한 달 동안만 금지했다. 한국처럼 아직까지 공매도 금지 조치를 풀지 않은 국가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뿐이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는 공매도 금지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증시는 코로나19 이후 V자 곡선을 그리며 반등했다. 때문에 공매도 금지 조치 여부와 증시 반등의 직접적 연관성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문가들은 6개월 공매도 금지 조치의 영향으로 국내 증시 상승률이 다른 나라를 웃돌았다고 분석한다. 코스피는 지난 8월 13일 2458.17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기록했다. 지난 3월 19일 기록한 연저점(1439.43)과 비교하면 70.7% 상승했다. 미국 나스닥 지수는 8월 20일 연고점(11257.42)과 3월 23일 연저점(6631.42)을 비교하면 69.7% 상승했다. 일본 니케이225 지수는 42.6%, 프랑스 CAC40 지수와 대만 가권 지수는 각각 43.5%, 52.8%의 상승률을 보였다.
국내 증시 상승세와 더불어 공매도 금지 연장 혹은 폐지론은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다. 공매도 제도가 외국인과 기관의 전유물로 여겨진다는 것.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거래대금은 103조 5000억 원, 이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 거래 대금은 65조 원으로 62.8%를 차지했고 기관투자자는 36.1%(37조 3000억 원), 개인투자자는 1.1%(1조 1000억 원)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 유럽은 전체 공매도의 25%가량이 개인투자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공매도 제도에 대해 개인투자자의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도 신용거래대주를 통해 공매도를 할 수 있지만 증권사들이 보유한 대주 종목과 물량, 대여 기간이 제한적인데다 이자율도 높다. 개인이 증권사 외 주식 차입자에게 직접 대여하는 대차거래를 하려면 투자금액 5000만 원, 순자산 5억 원 이상 요건을 충족하고 전문투자자로 등록해야 한다. 투자자가 실제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매수‧매도 금액의 차액만 결제해 공매도 효과를 낼 수 있는 차액결제거래(CFD)도 전문투자자 등록이 필요하다.
#찬반논쟁에 눈치 보는 금융당국
공매도를 둘러싼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지난 2018년 4월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배당사고 이후 공매도에 대한 일반투자자들의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자 금융당국은 같은 해 5월 주식 매매제도(공매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에는 개인 대여가능 주식 종목 및 수량을 확대하고 주식대여 서비스에 참여하는 증권사 확대를 유도해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접근성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의 불법 공매도를 방지하기 위한 주식잔고‧매매 수량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도 포함됐다. 그러나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은 실현되지 않았고, 개인의 접근성 개선 효과도 미미했다.
이처럼 제도 개선이 요원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이후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린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열풍까지 겹치며 최근 공매도를 둘러싼 논의는 한층 격화되는 모습이다. 경제정의실천연대(경실련)에 따르면 국민여론 조사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6명(63.6%)이 공매도를 폐지하거나 금지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경실련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 제도가 개인투자자에게 불공정하게 설계·운용돼 왔다”고 지적하며 금융당국에 공매도 금지조치 최소 6개월 이상 연장과 제도의 재설계 혹은 폐지를 촉구했다.
공매도 금지 연장 및 제도 개편 논의에 정치권도 가세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매도 재개는 충분한 시장 여건이 갖춰진 다음에 시행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하며 “공매도 금지를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추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매도 제도 개선 관련 법안 발의도 한창이다. 지난 8월 10일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법 공매도의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업보고서 제출을 앞둔 시점에 공매도를 금지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금융위는 여론수렴 등을 산하 실무기관에 맡긴 채 장고에 들어간 모양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6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증시 반등이) 공매도 금지에 의한 것인지 전 세계적 반등 흐름에 따른 것인지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것 같다”면서도 “연장을 요구하는 분들의 생각도 알고 있다. 남은 기간 잘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공매도 금지 연장과 관련해 “아직 결정된 바 없어 언급할 것이 없다”면서도 “의견 수렴을 위해 앞서 공청회(토론회)가 있었고 오는 9월초에도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공매도 제도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확인하기 위한 외부 연구용역도 진행하고 있다. 오는 9월 8일 예정된 공청회는 한국증권학회 주최로 열린다. 한국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금융위가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최종 결정은 금융위에서 내리겠지만 거래소가 시장을 관리하는 실무기관인 만큼 금융위의 요청에 의해 (토론회 주최와 연구용역 등) 의견 수렴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 결정에 여론이 고려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경제원칙을 잃고 여론만 따라가서도 안 되기 때문에 금융위가 토론회 등으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이라며 “(공매도 금지 연장과 관련) 코스닥은 금지를 유지하고 코스피만 공매도를 재개하는 등 절충안을 마련해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황 연구위원은 이어 “국내에서는 공매도 설계가 어려운 탓에 개인투자자에 대한 불평등 문제가 발생했다”며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비중이 높은 일본의 경우 증권금융회사가 증권사에 재원을 공급하고, 증권사는 이를 기반으로 개인투자자에게 신용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공매도 금지 연장 쪽으로 가닥이 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과거 금감원이 물량이 큰 종목 위주로만 (대형주에 한해) 공매도를 허용하는 홍콩식 공매도 규제를 건의해 금융위와 이야기를 나눴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공매도와 관련해 별다른 건의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현재 홍콩식 규제나 공매도 폐지 등을 논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금융위에서는 6개월 연장 쪽으로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