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패 종목’ 제 발로 걷어차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엔 바둑이 없다던데.”
“잉, 아니, 누가 그래요?”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로기사한테 들었어.”
“그럴 리가 있나요? 잘못 들으신 건 아닙니까? 올해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엔 바둑이 들어가 있는데, 우리 인천에서 바둑을 안 할 리가 있나요?”
“그러게 말이야. 근데 사실이래.”
“뭔가 와전된 거겠죠. 아직 결정이 안 됐다는 거 아닌가요? 처음 들어가는 거니까 지금 검토 중이라는 얘기겠죠.”
“그런가?”
“행정적인 절차상 검토를 거쳐 결정한다,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글쎄. 그러면 다행이고.”
14일은 일본 도쿄에서 제23회 후지쓰배 8강전이 열렸다. 아시안게임은 잠시 머릿속을 떠났다. 이세돌 9단이 중국 구리 9단을 만나 대마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시원하게 불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라갔다. 구리 9단이 이 9단의 대마를 잡으러가다가 역습에 휘말린 것. 이 9단은 복귀 후 19연승을 기록했다.
일본이 전부 탈락한 가운데 한국 넷, 중국 넷, 4 대 4의 대결로 펼쳐진 8강전에서 기대했던 다른 세 사람, 박영훈 9단은 재중동포 박문요 5단에게 자신의 능기인 끝내기에서 거꾸로 밀려 분패했고, 강동윤 9단은 이창호 9단을 꺾고 올라온 치우쥔 9단에게 반집을 졌고, 김지석 7단은 콩지에 9단과 초반부터 치열한 난타전을 벌였는데, 도중에 착각으로 무너졌다. 섭섭한 전적이었으나 이세돌이 위로가 되었다.
4월 15일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확인해 보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바둑은 없었다. 회식 자리에서 오고간 얘기는 사실이었다. 전화를 걸어 보았다. “검토 중입니다. 들어가게 되겠죠”라는 대답이 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그러나 아니었다. 바둑은 있다가 빠진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중국에선 하는데….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더구나 당연히 하는 걸로 알고 있었고, 바둑 관련 단체들도 언필칭 광저우 아시안게임, 인천 아시안게임 하면서 그렇게 홍보를 했는데…. 바둑은 우리가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최고로 유력한 종목인데…. 그렇다면 그건 바둑계가 광저우를 보면서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는 얘긴가.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2018년 인도 아시안게임, 거기부터도 계속해서 바둑이 아시안게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보자, 그러면 바둑이 극동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큰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들을 했었다.
조직위원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바둑은 한·중·일에서는 성행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 또 아시안게임도 여러 종류, 예컨대 당구 댄스 에어로빅 볼링 같은 ‘인도어(indoor) 아시안게임’, 발리볼 제트스키 패러글라이딩 세일링 읜드서핑 같은 ‘비치(beach) 아시안게임’ 같은 것들이 있어 종목이 너무 많고, 중복되는 것도 있어 가능하면 종목 수를 줄이려 한다는 것, 바둑이 아시안게임에 들어간다면 장기 체스 등과 함께 ‘인도어 아시안게임’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것, 이게 바둑이 처음부터 빠지게 된 이유였다. 인도어 아시안게임은 2년마다 열리고, 지난해 11월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3회 대회가 열렸는데, 거기 바둑은 없었다.
그렇다면 인천에선 실내아시안게임을 개최할 계획은 없을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좀 작은 도시에서 개최한다면 모를까, 대도시에선 보통 주종목에 치중하게 된다는 것. 바둑은 주종목이 아니구나. 바둑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도 인천 같은 대도시에는 어울리는 주몽목이 아니구나.
대한체육회나 인천시 체육회는 왜 바둑을 뺐을까. 바둑이 체육으로 인정받은 지가 너무 일천하기 때문일까. 아니, 아시안게임 준비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는 마당인데, 처음 계획에는 빠져 있지만,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바둑계 쪽에서 어필해 오거나, 사정해 온다면 끼워 주려고 하는 것일까.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 특히 바둑 체육화를 이끌고 있는 대한바둑협회는 이걸 알고 있을까. 아직 모르고 있는 걸까. 알고는 있지만, 아직 시간이 4년이나 남았는데, 뭘 그리 서두르나, 천천히 ‘진입’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어차피 들어갈 생각이고 들어가고 싶다면 이제라도 고쳐야 한다. 한국기원이 됐든 대한바둑협회가 됐든 그 일에 나서야 한다.
바둑이 아시안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나 당연하고, 올림픽에 들어갈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하기 시작한 때가 벌써 언제인가. 솔직히 바둑이 올림픽에 들어가는 것은 요원하고 지난한 일이다. 그에 비한다면 아시안게임은 가까운 일이고,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바둑 세계화는 일본에, 아시안게임은 중국에 편승하는 모양새가 좀 그렇긴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고, 올림픽은 바둑의 목적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다. 바둑이 정녕 체육의 옷을 입고 싶다면 말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