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재계약 걸려 참고 기다렸는데…” 고소 3개월째 분리·징계 조치 없이 교장직 유지, 2차 피해까지
8월 14일 수원지방검찰청이 C 중학교 교장 A 씨를 교내 축구부 코치 B 씨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B 씨가 제출한 고소장. 사진=박지훈 변호사 제공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8년 11월 8일 C 중학교 교장 A 씨를 포함해 축구부 감독과 코치 및 체육교사 등 총 7명은 저녁 7시부터 1차로 회식자리를 가진 뒤 노래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밤 10시께 같은 건물 당구장에 잠시 들렀다.
당구를 못 치는 3명은 구경을 하고 교장 A 씨를 포함해 축구부 코치 B 씨 등 4명이 두 명씩 편을 나눠 1시간 정도 당구를 쳤다. 같은 편이었던 교장 A 씨와 코치 B 씨가 게임에서 이겼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갑자기 교장 A 씨가 코치 B 씨를 껴안고 본인의 입술을 B 씨의 입술과 볼에 여러 차례 부빈 후 B 씨의 엉덩이까지 수차례 만졌다. 당연히 이 상황을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교직원 및 축구부 코치 등이 그대로 목격했다.
성추행을 당한 B 코치는 만 28세로 “평소 교장과의 어떤 개인적 친분도 없었으며 교장이 부임한 지 2년이 넘었던 때였지만 교장과 축구부 코치들 간의 첫 회식이었다”고 밝혔다.
B 씨는 “술과 담배 냄새가 진동하고, 거친 수염과 함께 교장의 침 분비물이 제 얼굴에 닿는 느낌이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성적인 수치심이 매우 컸다”며 “성추행을 당한 뒤 3차 회식 자리인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선배 코치에게 불쾌함과 부당함을 토로하고 자리를 뜨려 했으나 선배들이 만류하는 데다 교장과의 첫 회식자리 분위기를 망칠 수 없고 향후 교장과 축구부 코치들과의 관계를 위해 당시엔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교장의 임기가 4년 더 연장되고, 3월 학교에는 돌연 2023년까지 축구부를 단계적으로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B 씨는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5월 17일 경찰에 교장 A 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B 코치는 “그 사건 이후 수치심과 자괴감에 괴로운 날들을 보냈지만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이라 학교와 학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바로 고소하지 못했다. 그런데 교장 A 씨의 임기가 4년 더 연장되면서 그동안 참았던 시간들이 무용지물 됐다는 생각에 고소를 마음먹었다. 축구부까지 해체 수순을 밟게 되면서 고용 유지도 어렵게 됐다. 응원해주는 아내, 그리고 두 아이를 위해 이제야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학교와 검찰의 한정 없는 처분만을 기다릴 수 없었던 B 코치는 성희롱 사건 이후 2차 피해를 막고자 7월 24일 직접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서를 냈다. B 씨는 “왜 피해자만 숨죽여야 하고, 혼자 속앓이를 해야 하는지 고 최숙현 선수와 박원순 시장 성추행 보도 내용을 보면서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호소할 곳이 없다. 교육청도 인권위도 검찰도 미온적이다. 언론에라도 알리지 않으면 내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B 코치는 C 중학교 축구부 출신이기도 하다. 현재 C 중학교에 있는 교직원의 상당수가 B 코치의 은사이기도 하며 성추행 현장에도 B 코치의 은사가 2명이나 있었다. 한번 학교 교직원이 되면 줄곧 자리를 지키는 사립학교의 특성상 교직원 사이의 위계는 일반학교에 비해 더 엄격하다. B 코치는 “심지어 당시 현장에 있던 교장 측 고위 교직원이 다른 목격자들에게 진술 번복을 회유하는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도 갖고 있다”며 씁쓸함을 전했다.
#도교육청 “사립학교라 직권에 한계 있어”
5월 17일 B 코치의 성추행 신고가 이뤄지고 검찰 기소까지 3개월이 지났지만 A 씨는 교장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가해자인 교장 A 씨와 피해자인 코치 B 씨가 분리조치 없이 여전히 해당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5월 29일에 예정되어 있던 전교직원 대상 성 관련 연수는 당일 돌연 취소됐다.
C 중학교 학교법인 정관에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교원에 대하여는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특히 학교장이 가해자인 경우 시·도 교육청이나 지역 교육지원청을 통해 상급기관의 지시에 따라 조사 및 징계 결정 등을 처리하도록 돼 있다. 또 C 중학교의 학교법인 정관에도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교원에 대하여는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피해자 B 씨의 소송대리인인 박지훈 법무법인(유) 현 변호사는 “단순 벌금형의 약식명령청구가 아닌 징역형도 가능한 공판 절차에 회부된 사건임에도 아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교육청의 행보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통해 기소한 사건이므로 이를 통보받은 교육청과 해당학교는 바로 교장 A 씨를 직위해제했어야 하는 사건”이라며 “특히 성범죄의 경우 교육감이 단독 관할청이 되고 교육감이 법인 이사장에게 교장에 대한 징계의결 요구를 하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해당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이 사립학교법과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경찰 통보 30일 이내 교장 A 씨의 직위해제 조치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교육청에 직접 내방하는 등 강하게 항의 중”이라고 전했다.
경찰이 교육공무원에 대해 수사를 개시하거나 검찰에 송치하면 경찰은 무조건 이를 해당 교육청에 통보하도록 돼 있지만 경찰의 실수로 교육청으로의 통보가 누락되기까지 했다. 변호사는 이를 고의라고 의심하고 있다. 때문에 교장 A 씨에 대한 징계 회부가 더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교육청 감사팀은 “사립학교는 교직원 징계여부와 인사결정권 등 처분권과 임명권이 해당 학원법인에 있는 만큼 검찰로부터 기소를 통보 받은(8월 20일) 다음 날인 8월 21일 C 중학교에 교장 A 씨의 징계의결을 요구하는 서류를 보내 놓은 상태”라며 “검찰 기소가 된 사건인 만큼 국‧공립 학교였다면 교육청에서 바로 조사 후 징계를 내렸겠지만 해당학교가 사립학교라 학교 측에 징계의결과 결과보고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해당 학교에 8월 24일쯤 등기우편이 도착했을 것으로 보고 현재 학교 측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 답변을 기다리고 있으며 징계수위가 적절치 않을 시 징계위의 재심의를 요구하겠다”고 답했다.
#경찰, 신문고, 인권위까지 두드렸지만…
하지만 피해자 B 씨의 교육청에 대한 불신은 커져 가는 상황이다. B 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3개월이 지났다. 경찰 조사가 이루어지고 그 사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이 넘어간 지도 두 달이 다 됐는데 학교 측이나 교육청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다”며 “성고충처리위원회에 상담도 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서를 냈지만 아직 상황은 그대로”라고 했다.
그는 또 “사립학교 교원도 공무원과 동일하게 경찰 조사가 시작되면 피의사건을 관계기관에 통보하게 돼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두 달 넘도록 그 어떠한 대책이나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매우 큰 실망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비밀유지와 피해자 보호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교육청은 “성추행 사건 관련 통보를 받은 뒤 즉시 장학사를 학교에 보내 현장컨설팅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피해자 측은 “한 번도 교육청의 제대로 된 조사를 받지 못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애초에 피해자가 교육청에 신고했더라면 좀 더 빠른 결과를 냈을 수도 있지만 경찰에 먼저 신고되어 검찰에 기소까지 된 만큼 교육청의 직접 조사보다는 검찰의 조사와 재판 결과를 지켜보고 후속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피해자 B 씨는 “이 사건과 별개로 학교 내 교직원 가운데 성추행 및 욕설과 폭행에 대한 추가 피해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전체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해 달라고 관할 교육청에 요청했지만 이 역시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가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에 해당 교육청은 “성추행을 당한 본인이 신고를 해야 조사가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B 씨는 “가해자가 교장이므로 고용불안과 향후 처우에 대한 걱정 때문에 교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인데 교육청은 형식적으로만 접근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교장 A 씨는 2016년 4월에도 음주폭행 사건으로 입건된 바 있지만 당시에도 교내 및 교육청의 징계조치는 전혀 없었다.
B 코치는 “피해자인 나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일개 비정규직 축구부 코치이고, 교장은 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교내외 인맥 등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교육청이 피해자에게 힘이 되어주려 하기보다 오히려 가해자인 교장 입장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털어놨다. 또 “학교와 교육청, 검찰만 믿고 있을 수 없어 국민신문고와 인권위 등 다양한 기관에 문을 두드렸지만 현실적으로 당장의 조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전했다.
프로배구선수였던 고 고유민 선수 유족의 담당 변호사이기도 한 B 코치의 법률대리인 박지훈 변호사는 “교장 측은 피해자의 거부감과 목격자의 진술이 명확한 이번 성추행 사건을 남자들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며 오히려 B 코치를 몰아세우고 있다”며 “교장은 ‘할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기소가 됐어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다. 사학을 건드릴 수 없다면 사립학교법도 있을 필요가 없다”며 직위해제 등의 행정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또한 이 사건을 “교장 A 씨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계약직 운동부 코치인 B 씨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은 사건”이라 규정하며 “교장 A 씨에 대한 적절한 형사처벌은 물론 어떤 이유에서인지 본 사안을 축소·은폐하려는 정황을 보이는 관할 교육청과 시교육지원청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C 중학교에서는 8월 19일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성고충심의위원회가 열렸고 인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도 열렸다. C 중학교 행정실에 징계 결과를 문의하자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으며 있다고 해도 아직은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C 중학교 교장 A 씨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 중인 상황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출장 중이다.
일요신문은 A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개인 휴대전화로 문자와 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교장 A 씨는 2016년 3월 C 중학교에 부임했으며 지난 2월 연임돼 4년의 임기를 더 보장받은 상태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