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웅 피의자 입건, 기존 감찰팀 물갈이…원칙주의 조상철 신임 고검장 ‘다른 결론’ 낼 가능성도
하지만 8월 말에 이뤄진 인사 전후로 서울고검이 역대급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바로 검찰 내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27기)과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사법연수원 29기·현 광주지검 차장검사)의 몸싸움 사건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검찰청이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의 몸싸움 사건을 맡으면서 역대급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 왼쪽이 서울고검이며 오른쪽이 서울중앙지검이다. 사진=연합뉴스
벌써부터 시끄러워질 조짐이 가득하다. 8월 초에 취임한 조상철 신임 서울고검장은 바로 정진웅 차장검사를 ‘피의자’로 전환했고, 추미애 장관은 8월 말 시행한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고검 감찰부 소속 검사 대부분을 ‘지방 고검’으로 발령을 냈다. 이에 서울고검 감찰부장이었던 정진기 감찰부장은 의미심장한 글과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정 감찰부장은 8월 31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사직인사라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검찰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모든 현상의 실상을 정확히 봐야 바른 견해가 나온다’는 옛 경전 구절을 인용하며 “검찰이 어떠한 사안이라도 치밀한 증거 수집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한 후 올바른 법리를 적용해 사안에 맞는 결론을 내려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것이고 피해를 입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내에선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사건과 관련해 독직 폭행 및 증거수집 위법성 논란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서울고검 감찰부는 정 부장검사의 ‘몸싸움 압수수색’에 대해 “한 검사장이 오히려 방해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과 마찰을 겪기도 했다. 8월 말 서울고검 감찰부의 감찰이 시작되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전임인 김영대 당시 서울고검장을 찾아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기소 전까지는 수사팀에 대한 소환 통보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김 전 고검장이 “원칙대로 하겠다”고 거절해 서로 불편한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고성’이 오갔다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조상철 신임 고검장은 법무·검찰의 핵심 보직을 모두 거친 인물로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분류된다. 다만 원칙주의자인 까닭에 ‘추미애 장관이 원치 않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인사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검찰 내에서 조 고검장은 ‘추미애 장관이 원치 않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인사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조 고검장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법조인은 “오래 고민하지만 한 번 결론을 내리면 절대 뒤집지 않고, 또 그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원칙론에 입각해 접근하는 스타일”이라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위에서 뭐라고 해도 무조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이를 관철시키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원칙론에 입각해서 결정하기 때문에 ‘에이스’라는 평가와 함께 승승장구했다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조 고검장 역시 서울고검장 취임사에서 “요즘 주변을 보면 타인에게 무례하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며 자기 책임에는 눈 감은 채 다른 사람만 마구 힐책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성숙한 인간의 자세가 아니고 공동체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법무부와 검찰을 둘러싼 각종 내홍 및 한동훈 검사장 독직 폭행 혐의로 감찰을 받고 있는 정진웅 부장검사를 겨냥한 얘기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법조인은 “조 고검장의 취임사를 보면서 ‘감찰을 원칙대로 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혔다”며 “조 검사장은 사법연수원 23기로 윤석열 총장과 동기이자 고검장까지 승진해 이제 ‘마지막 자리’라고 주변에 얘기하더라. 취임사에서 예의 부분 발언까지 고려하면, 정진웅 검사를 제대로 감찰하고 검찰 내 흔들리는 조직 문화를 다잡겠다는 의지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고검은 8월 30일 정진웅 부장검사를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정 부장검사가 피의자로 입건됐기 때문에 이제 법원에 체포 영장이나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가능하다. 정 부장검사가 현재까지 서울고검 감찰부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긴급체포 등의 강제 소환 가능성도 거론된다. 또 서울고검 감찰부가 몸싸움 사건이 벌어질 당시 이성윤 지검장 등 지휘부와 주고받은 통신 기록 등을 확보할 경우 사안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법원 관계자는 “독직폭행은 검찰이나 경찰이 사람을 체포하거나 감금할 때 직권을 남용해 폭행을 한 혐의로 일반 폭행보다 형이 무겁다. 벌금으로는 처벌이 불가하고 유죄가 인정될 경우 5년 이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며 “검사 사이의 독직폭행이라 다소 예외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법조인들 대다수가 납득하지 못하는 몸싸움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온 상황을 고려할 때 정 부장검사가 불리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충분히 알고 있는 법무부는 인사를 통해 ‘메시지’를 확실하게 보냈다. 이번 중간 간부 인사 때 정진기 감찰부장 등 6명 가운데 5명을 교체했다. 기존 감찰 인원들을 완전히 물갈이한 것인데 대부분 지방 고검 검사 등 좌천성 인사 조치를 받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이들에게 사실상 ‘감찰 불가’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검사는 ‘인사’로 평가와 메시지를 함께 받는 조직인데 이번 인사에서 감찰부는 좌천, 정진웅 부장검사는 차장으로 승진했다. 이런 메시지를 원칙주의자인 조상철 고검장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가 변수”라며 “문제는 서울고검에 온 인사들이 ‘좌천’으로 생각하고 왔을 것이기 때문에 서울고검장과 감찰부가 기존 감찰에 대해 어떻게 사안을 정리하느냐에 따라 추석 전후로 움직임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