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참담하고 포수 궁합도 매끄럽지 않아…김인식 전 감독 “현진아, 옛날 생각나지?”
류현진은 소속팀 토론토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며 과거 별명인 ‘소년가장’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은 9월 3일(한국시간) 말린스파크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5안타 2볼넷 8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류현진의 역투에 토론토는 2-1 승리를 거뒀고, 류현진은 시즌 3승을 거뒀지만 토론토 야수들의 거듭된 수비 실책으로 요즘 한국 팬들은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향해 ‘토론토 블루 이글스(블루제이스+한화 이글스)’라고 부른다.
류현진은 한화 이글스 시절 ‘소년 가장’으로 불렸다. 당시 한화의 공격력과 수비력은 물론 불펜까지 약했던 터라 승수를 챙기는 건 류현진의 몫이었다. 한화의 암울했던 시기에 홀로 꿋꿋이 승을 쌓아가는 고독한 에이스의 모습이 ‘소년 가장’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냈다.
3일 마이애미전에서 2회 말 첫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한 류현진은 다음 타자에게 병살 코스의 땅볼을 유도했지만 2루수 조나단 비야르의 송구 실책으로 인해 무사 1, 2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평범한 3루 땅볼을 유도했다가 3루수 트래비스 쇼의 송구 실책으로 2점(1자책점)을 내준 지난 볼티모어전에서의 상황이 재연되는 듯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다음 타자를 2루 땅볼로 처리한 다음 남은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수비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류현진은 탈삼진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주무기 체인지업과 커터, 커브 등을 섞어가며 헛스윙을 이끌어내면서 혼자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수비뿐만이 아니었다. 1회초 2사 이후 좌전 안타를 기록한 조나단 비야르는 무리하게 2루로 진루하려다 허무하게 아웃이 됐고 2회초 안타로 1루에 진루한 구리엘 주니어는 투수의 볼이 포수 옆으로 빠질 때 2루까지 내달리다 1루로 귀루하는 과정에서 아웃을 당했다. 어이없는 본헤드플레이에 류현진의 멘탈이 심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 후 토론토의 찰리 몬토요 감독은 “류현진 덕분에 이긴 경기”라면서 “잡을 수 있는 타구를 수비가 안타로 만들고 주루에서 실수가 나왔지만 우리 팀 에이스는 여전히 자신의 공을 던졌다”고 극찬했다. MLB닷컴에서는 ‘류현진은 손에 대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뒤에 어지럽혀진 모든 것을 치우며 길을 개척해나갔다’라고 평했으며, 현지 취재진은 ‘류현진은 이기러 왔는데 동료들은 지러 온 것 같다. 팀 선수 절반은 류현진한테 저녁을 사야 한다’며 토론토 수비진을 맹비난했다.
지난 시즌까지 내셔널리그 최강 팀으로 손꼽힌 LA 다저스와 비교했을 때 올 시즌 토론토 야수들의 주루플레이와 수비는 참담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현진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총체적인 공수 불안에 분명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
김인식 전 감독은 류현진의 팀 동료들에 대해 “종종 KBO 선수들보다 못한 플레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류현진의 경기를 빠짐없이 지켜보는 스승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토론토 야수들을 향해 “메이저리거라고 다 같은 메이저리거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플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애미 경기 후 현진이가 전화를 했는데 내가 한마디 해줬다. ‘현진아, 옛날 생각나지?’라고 말이다. 야구에서는 투수 못지않게 야수들의 수비가 중요하다. 그런데 토론토 선수들은 종종 KBO리그 선수들보다 못한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토론토의 3루수 트래비스 쇼와 1루를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는 발이 느려 민첩성이 떨어진다. 몬토요 감독이 류현진이 등판할 때는 땅볼 유도가 많은 특징을 고려해 수비 범위가 넓은 에스피날을 유격수로 활용하겠다고 밝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 전 감독은 메이저리그 트레이드 마감일 직전에 토론토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꼽히는 안드렐톤 시몬스(LA 에인절스) 영입을 노리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잠시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시몬스가 토론토로 트레이드된다면 류현진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진이가 승수를 챙길 때마다 전화하는데 이번에 3승 올린 후 전화해서는 ‘너무 늦게 전화드려 죄송하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네가 뭐가 죄송하냐. 속 터져 죽을 듯한데’라고 말해줬다. 현진이는 원래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선수다. 한화 시절, 공격이나 수비가 뒷받침해주지 못할 때 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마운드에 선 투수는 수비 실책이 나와도 표정이 변하면 안 된다. 감정을 삭여야 한다’라고 말이다. 이후 웬만해서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는데 토론토 입단 후 최근 한두 경기에서 표정이 달라지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류현진도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운 극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수비도 문제지만 아직까지 류현진과 토론토 포수들과의 궁합도 매끄럽지 않은 편이다. 8월 23일 탬파베이를 상대로 94개의 공을 던졌던 류현진은 이날 올 시즌 처음 배터리를 이루는 포수 리즈 맥과이어와 경기를 풀어갔다. 그러나 맥과이어는 프레이밍(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능력)이 아쉬운 것은 물론 투수에게 여러 차례 사인을 내며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탬파베이 현지 중계방송 캐스터가 류현진과 맥과이어의 호흡 문제를 지적했을 정도다.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포수 야디어 몰리나와 배터리를 이룰 때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젓지 않고 바로 공 던질 준비를 하는 모습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부분의 경기에는 주전 포수 대니 잰슨이 마스크를 쓰고 앉지만 류현진과 잰슨과의 호흡도 아직까지 완벽하지 않다.
류현진은 포털사이트에 연재 중인 ‘류현진의 MLB일기’에서 포수와의 호흡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나타냈다. 구단에서 최근 류현진에게 어느 포수와 배터리를 이루고 싶은지를 물었는데 자신이 포수를 선택하기보다 구단이 선택해준 포수와 호흡을 맞추는 게 투수의 몫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유독 사인이 많은 편이다. 내가 던지는 구종이 직구, 커브, 커터, 체인지업인데 직구와 커터도 사인이 네 가지 코스로 나뉜다. 한 구종에 몸쪽, 바깥쪽은 물론 높게, 낮게 던지는 사인을 내는 터라 포수로선 타자를 상대할 때마다 여러 사인을 내며 의견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걸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하고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류현진은 투수와 포수가 서로에 대해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식 전 감독도 “다저스에 있을 때와 달리 토론토에서는 포수와의 호흡이 아직까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좀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운드의 류현진은 고독하다. 메이저리그에서까지 ‘소년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를 줄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안고 가야 할 숙제이고, 풀어야 할 과제다. 김인식 전 감독은 내년 시즌에라도 토론토가 실력 있는 수비수 영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