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격리 해제’ 요청 한화 대표 여론 뭇매 맞고 퇴진…‘방역수칙 위반 음주 고기회식’ 보도는 왜곡
한화 이글스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왔다.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 사례다. 사진=연합뉴스
한화 구단과 KBO에 따르면, A 선수는 지난 8월 23일부터 2군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육성군에 머물렀다. 팔꿈치 통증으로 공을 던지기 어려워서다. 치료에 힘쓰던 29일 근육통과 두통 증세가 시작됐고, 30일 늦은 오후 경미한 발열 증상이 나타났다. 곧바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격리됐다.
A 선수의 코로나19 감염이 확인된 31일에는 서산시가 한화 2군 구장과 선수단 숙소를 방역 소독했다. 이어 1차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한화 동료 선수와 코칭스태프, 프런트 4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이들은 다음날 오전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육성군 확진자 발생에 1군까지 영향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9월 1일에도 관련 인원이 대거 코로나19 검사를 거쳤다. 8월 25일과 26일 서산에서 경기한 LG 트윈스 2군 선수단과 프런트까지 전원 검사 대상으로 분류됐다. 서산 숙소 외부에 거주하는 한화 2군 선수와 임직원, 협력사 직원 52명 역시 거주지 선별진료소로 향했다. 이날 예정됐던 퓨처스리그 서산 한화-두산 베어스전, 이천 LG-키움 히어로즈전은 열리지 못했다.
파장은 1군까지 번졌다. 한화 1군 선수 4명은 A 선수의 확진 판정 직후인 9월 1일 새벽, KBO가 긴급 지정한 협력병원으로 달려가 급히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았다. 8월 25일 이후 2군에서 뛰다 최근 1군에 올라온 선수 2명, 이들과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또 다른 선수 2명이 포함됐다. 결과는 4명 다 음성.
1일 잠실구장에서 예정됐던 두산과 한화의 1군 경기는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방역 당국 허가에 따라 정상적으로 열렸다. KBO는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음성 판정과 별개로, 역학조사관의 판단 전까지는 해당 선수 4명을 선제적 예방 차원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한화는 1군 엔트리 4명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고난의 시작이었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난 직후라 야구계는 비상이 걸렸다. A 선수는 프로야구뿐 아니라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첫 감염 사례였다. 남자 프로배구 KB손해보험 새 외국인 선수 노우모리 케이타(19·말리)가 7월 2일 입국 직후 받은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 한국배구연맹에 정식 등록되지는 않았다.
최근 지역사회 감염자가 다시 급증한 탓에 A 선수는 확진 초기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격리 생활을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다행히 9월 1일 저녁 어렵게 병상을 확보했고, 천안 소재 치료센터로 이송돼 입원했다. 집에 함께 머물던 아내와 아기, 서산 숙소에서 한 방을 쓰던 후배 투수는 검진 결과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한화 관계자는 “A 선수는 증상이 심한 편은 아니다. 당국 지침에 따라 격리돼 치료와 회복에 힘쓰고 있다. 향후 모든 선수단과 직원이 당국 지시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KBO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10개 구단 선수단의 개별 모임을 금지하고 타 구단 선수와 악수, 식사, 동일 이동수단 사용, 버스 탑승 등도 일절 금지하기로 했다. 위반 시 강력한 제재가 따를 것”이라며 방역 지침을 재차 강조했다.
이 같은 지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확진자가 나왔다. A 선수와 육성군에서 한솥밥을 먹은 투수 B였다. KBO는 1군 경기가 끝나가던 9월 1일 늦은 밤,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은 육성군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해당 선수는 검사 이후 숙소에서 격리 상태로 대기했고, 구단이 상세 접촉자 및 감염 경로 등을 자체 확인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선수뿐 아니라 이날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선수 전원이 숙소에서 개별적으로 격리된 채 결과를 기다렸다. 아직 감염 유무를 듣지 못한 한화 선수 50명과 LG 2군 선수단은 더욱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2군 선수 50명이 격리 조치된 한화는 대표가 나서 격리 해제를 요청해 비난을 샀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감염자는 죄인이 아니다
다행히 바이러스는 더 멀리 퍼지지 않았다. 야구계가 숨을 죽이던 9월 2일, A와 B를 제외한 추가 검사자 전원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화와 관련된 검사 인원 97명, LG와 관련된 검사 인원 61명 가운데 확진자는 이미 확인된 둘이 전부였다. 1군 경기까지 중단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그러나 육성군에서 코로나19 발생은 경계를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KBO는 “코로나19 검사 결과와 별개로 보건당국의 역학조사에 따라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59명(한화 선수 50명, 코칭스태프 7명, 프런트 1명, LG 선수 1명)은 자가 격리 조처했다. 최근까지 2군에 머물다 1군에 합류한 한화 선수 2명도 2주간 자가 격리 대상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또 “확진자들과의 접촉 시점에 따라 9월 11~13일 순차적으로 자가 격리가 해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와 LG가 속한 2군 북부리그 경기도 안전한 운영을 위해 9월 6일까지 전면 취소됐다. 선수 50명이 자가 격리 대상에 포함된 한화 2군은 일주일을 더 늘린 9월 13일까지 일정을 없앴다.
문제는 확진 판정을 받은 선수들이 뜻하지 않은 2차 피해에 시달렸다는 거다. 코로나19 감염자를 ‘방역수칙 위반자’로 몰아가는 일부 시선 때문이다. 처음엔 A 선수가 술집에 갔다가 감염된 게 아니냐는 억측이 나왔다. 최근 유흥주점에 출입해 구단에 벌금을 낸 타 구단 선수들과 동일선상에 놓았다. 그러나 역학조사 결과 A 선수의 동선에 술집은 포함되지 않았고, 동료들은 A가 평소 술을 잘 먹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지레짐작이 사람 잡을 뻔했다.
일부 언론에선 “확진 선수들이 숙소에서 술을 곁들인 고기 회식을 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됐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한화 선수들의 설명은 이랬다. 지난 8월 28일 폭염 속에 힘든 일과를 마친 한 선수가 “날이 너무 더워 지친다. 고기라도 먹고 힘을 내고 싶다”고 푸념했다. 옆에 있던 코치는 “요즘 코로나19가 다시 심해졌다.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말렸다. 대신 “정 먹고 싶다면, 고깃집 말고 내가 묵는 숙소 옥상으로 가자. 우리 외에 다른 사람이 없고, 야외라 덜 위험할 것 같다”고 했다.
코치를 포함해 7명이 야구장 인근 숙소 옥상에 자리를 폈다. 늘 같은 공간에서 훈련하고, 함께 식사하던 사이. 사실상 식구다. 그저 평소와 조금 다른 방식의 저녁 식사로 여겼다. 고기를 먹으면서 맥주 두 캔을 조금씩 나눠 마셨다. 한 시간가량 식사를 마친 뒤 각자 방으로 돌아가 휴식했다. 그게 그날 저녁 벌어진 일의 전부다. 방역 지침을 어긴 게 아니라 오히려 권장 사항을 이행한 것에 가깝다.
다만 사흘 뒤 불행히도 그들 안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그러자 이 저녁 식사는 ‘고기파티’라는 단어로 둔갑해 세상에 알려졌다. 둘 다 코로나19 관련 증상을 전혀 느끼지 못한 시점이라 도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데도 그랬다. 억울하게 매도당한 두 선수는 물론, 한화 구단도 자칫 ‘제 식구 감싸기’로 비칠까 적극 해명하지도 못한 채 속앓이를 해야 했다.
#한화 사장, 일부 선수 격리 해제 요청했다 철퇴
정작 더 심각한 상황은 그 후에 벌어졌다. 한화 박정규 대표이사가 방역당국에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선수 일부의 자가 격리 해제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박 대표는 지난 2일 서산 2군 구장을 방문한 양승조 충남도지사와 맹정호 서산시장, 송기력 서산시 보건소장에게 뜻밖의 청탁을 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선수가 격리돼 2군이 마비됐다. 1군 선수가 다치거나 아파도 엔트리를 교체할 수가 없다. 2군과 육성군을 분리해 운영해왔으니 일부 2군 선수의 자가 격리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코로나19 확산은 특수 재난 사태다. 전 국민이 방역 지침을 따르느라 크고 작은 고통과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행여 방역당국이 한화에 예외를 둬 그 요청을 들어줬다면, 더 큰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 상황에 가장 책임을 통감해야 할 한화 대표가 팀 내 방역 강화에 앞장서기는커녕, 스스로 코로나19 방역과 자가 격리 방침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낸 셈이다.
보건소장은 즉각 거절했다. “2군과 육성군이 따로 훈련했다고 해도, 체력단련실과 물리치료실 등을 공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엄격하게 분류된 밀접 접촉자라 어느 선수도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2군 선수 50인의 자가 격리는 한화 입장에서 충분히 당혹스러운 일이다. 선수 50명의 자가 격리가 해제된다 해도, 이들이 정상 컨디션을 찾으려면 1~2주일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2군 운영이 어려운 것은 둘째로 쳐도, 격리 기간까지 포함해 3~4주일 동안 1군 엔트리도 변동할 수 없다는 의미다. 더블헤더와 서스펜디드게임을 소화해야 하는 시기에 추후 발생할 변수들을 상상하면, 눈앞이 깜깜한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국가적 재난 상황에 예외란 있을 수 없다. 한화 선수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 확진자 1명 없는 2군 북부리그 다른 구단들까지 일주일 동안 경기를 할 수 없다. 그들과 잠깐이라도 스친 수십, 수백 명이 줄지어 검사를 받고 격리되는 과정도 뒤따른다. 덜 조심하다 곤욕을 치르는 것보다 더 조심해서 감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게 사회 분위기다.
따라서 지금은 프로야구에 또 다시 확진자가 나올 가능성을 없애는 게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 한화가 운이 없어 첫 번째 사례가 됐지만, 다른 구단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그 팀 역시 똑같은 일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화는 힘든 2020년을 보내고 있다. KBO리그 역대 최다 18연패를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한용덕 전 감독이 중도 퇴진했다. 역대 최초 한 시즌 100패 위기에 놓여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프로야구 최초로 코로나19 확진자까지 발생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꼬였고, 유독 운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한화의 민낯을 보여준 건, 이번 사건의 사후 대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 대표가 할 일은 “우리 구단 사정 좀 봐 달라”는 하소연이 아니다. 죄인처럼 비난받고 있는 확진 선수들을 내부에서 다독이고, 선수단에 더 철저한 방역 지침 준수를 당부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개를 숙여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게 우선이었다.
논란이 커지고 비난이 쏟아지자 박 대표는 결국 지난 3일 사의를 표명했다. 한화는 “박 대표가 부진한 팀 성적과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대처하는 과정에서의 여러 논란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사회에서 후임 대표이사가 결정되기 전까지 구단 정관에 따라 당분간 차선임자인 사내이사 이동원 본부장이 대표직무대행을 맡는다”고 밝혔다. 이미 현장을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한화가 프런트 컨트롤타워마저 대행 체제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한화는 홈페이지에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임직원 및 선수단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코로나19 감염이 엄중한 상황에서 구단의 안일한 판단으로 인해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야구팬과 국민 여러분 그리고 KBO 및 프로야구 관계자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밤낮 없이 수고하고 계신 방역당국 관계자 분들과 이에 동참하고 계신 충청도민 및 대전시민 여러분께도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선수단 내 유증상자 발생시 KBO에 즉시 보고를 해야 함에도 미숙한 업무처리로 인해 겨우 재개한 프로야구를 다시 중단시킬 수 있는 큰 실수를 했다. 현재는 확진 선수들과 음성 판정을 받은 선수들 모두 방역 당국의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속 선수 관리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만전을 기하겠다. 선수단은 물론 구단 내 모든 임직원들이 한층 더 강화된 방역 기준으로 코로나에 대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