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지난해 졸업한 벽산건설의 매각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사진은 지난 95년 비자금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출두하는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 | ||
문제의 기업은 한때 건설업계 상위권을 지키던 벽산건설. 이 회사는 지난 98년 IMF가 터지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려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러다 이 회사는 지난해 경기회복을 틈타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채권단은 출자전환해주었던 자금을 되찾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현재 벽산건설의 최대주주는 우리은행(28.72%). 나머지는 (주)인희 등 김희철씨 일가와 특수관계인들이 18% 정도 갖고 있으며, 자산관리공사 18.18%, 하나은행 5.13%, 국민은행 5.25% 등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채권단측이 옛 오너인 김희철씨 일가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지분(채권단 총보유지분 58%)을 인수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하면서 불거졌다.
채권단이 이 같은 내용의 벽산건설 지분매각 계획을 공시한 것은 지난 2월11일. 당시 채권단은 출자금융기관협의회를 열어 전체 지분의 51%에 해당하는 1천9백32만6천5백 주를 김희철씨와 특수관계인에게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부실 경영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기업을 정상화시킨 뒤 다시 ‘부실 경영의 책임자인 옛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채권단이 김희철씨 일가에게 벽산건설의 주식 우선 매수권을 부여했다는 점도 논란의 도마위에 올랐다. 게다가 주당 5천원에 출자했던 채권단이 김희철씨쪽에 주당 4천원 남짓한 값으로 매각키로 해 특혜시비마저 불거졌다.
현재 김희철씨쪽에선 벽산건설을 되찾는데 필사적이다. 왜냐하면 벽산건설은 또다른 벽산 계열 상장기업인 (주)벽산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주)벽산은 아이베스트투자라는 회사가 35.2%의 지분으로 1대주주고, 벽산건설이 22.9%, 김희철씨가 8.8%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쳐 47.89%(벽산건설 지분 포함)의 지분을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만약 벽산건설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 (주)벽산의 최대주주는 아이베스트로 바뀌게 된다. 그럴 경우 (주)벽산의 경영권도 김씨 일가가 아닌 다른 쪽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때문에 벽산, 벽산건설, 동양물산, (주)인희 등으로 구성된 벽산그룹은 벽산건설의 지분 향방에 따라 주인이 바뀌게 된다.
이로 인해 김씨 일가의 입장에선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갖고 있는 벽산건설 지분을 되찾아와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벽산건설 소액주주들의 입장은 다르다.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옛 벽산그룹 오너에게 벽산건설 지분을 넘기는 것은 벽산의 기업가치를 무시하고 특혜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워크아웃 돌입 당시 옛 벽산건설 오너에게 주식 우선 매수권을 주기로 했다는 주장이 무리가 있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벽산건설은 지난 2월11일 공시에서 “‘2002년 7월31일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제2호의안’ ‘출자주식 매각 약정서’ ‘출자주식 매각 관련 특별약정서’ 등에 의하여 기존 대주주측에게 부여된 우선매수권이 행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벽산건설이 감자를 단행하고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결정할 당시 공시된 유가증권신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소액주주들의 반론이다.
실제로 벽산건설이 지난 2002년 10월23일 전자공시한 유가증권신고서와 2003년3월31일 전자공시한 사업보고서에도 이런 내용이 없었다. 채권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벽산건설은 허위공시를 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벽산건설은 지난해 2월 채권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출자전환 주식 물량이 보호예수에 묶여 있다고 공시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채권금융기관이 물량을 처분, 소액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같은 내용이 일부 언론에 의해 문제점으로 지적되자 벽산쪽에서 이런 내용을 보도한 신문을 회수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점점 확산되자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기업개선작업을 통해 회생시킨 벽산건설을 워크아웃 당시 계약서대로 옛 대주주에게 넘겨주는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문제가 있어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며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활동하고 있는 벽산건설 소액주주들은 “98년 말 워크아웃에 들어갈 때 부채 1조1천2백45억이었지만, 자본총액이 1백21억원에 불과했다.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결과 부채가 6천3백82억원으로 줄고, 자본총액도 2천9백67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경쟁력이 있는 업체로 탈바꿈되었다”며 “이런 우량 업체를 부실 경영을 한 옛 오너에게 돌려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벽산건설쪽에선 “매각작업은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알아서 하는 일”이라고만 밝혔다. 다만, 과거 벽산건설의 대표는 김희철 회장이 아닌 다른 형제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각에선 김희철가의 벽산건설 되찾기를 반대하고 있는 소액주주의 뒤에 (주)벽산의 단일 대주주인 아이베스트투자가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아이베스트쪽에선 “우리는 벽산이나 벽산개발의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투자목적으로서 벽산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 누가 벽산건설을 인수해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
그러나 아이베스트측은 최근 채권단의 지분매각 문제와 관련해 벽산건설 소액주주들과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아이베스트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소액주주들이 연락을 해온 적이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 일을 주도하는 것은 벽산건설 소액주주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이베스트측은 “채권단이 김희철 일가에 우선 매수권을 부여한 근거가 명확치 않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어쨌든 벽산건설의 지분 매각문제가 논란을 빚자 우리은행 등 6개 채권단은 이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조만간 이뤄질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