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부동산 매각 속도내 자구안 이행까지 성큼…‘알짜’ 인프라코어 매각 서두를 이유 없어
두산그룹이 3조 원 확보 자구안 목표 달성에 가까이 다가섰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7일 월요일, 두산 그룹주들이 일제히 상승했다. (주)두산은 전 거래일과 비교해 26.85% 올랐고, 두산퓨얼셀은 상한가를 기록했다. 두산 밥캣은 5.95%, 두산인프라코어도 3.02% 상승했다. 주가는 다음날부터 곧바로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시장 평가는 긍정적이다. 두산의 ‘미래’가 의미있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두산그룹은 전 거래일인 지난 9월 4일 계열사를 팔아 조 단위의 현금을 확보한 사실을 공개했다. 두산솔루스와 유압기기 사업을 맡고 있는 두산모트롤사업부 매각 계약 체결이 골자다. 두산솔루스는 사모펀드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가 7000억 원에, 두산모트롤은 소시어스-웰투시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453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두산솔루스와 모트롤사업부 외에도 두산타워와 두산건설, 골프장 클럽모우CC, 네오플럭스 등의 거래가 최근 마무리되거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 두산그룹은 지난 7월과 8월 사이 연초 매물로 내놨던 계열사와 부동산 등의 자산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왔는데, 최근 대부분 거래를 마쳤거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두산그룹은 대규모 현금 확보 소식을 알리면서 두산중공업이 1조 3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계열사와 자산 매각으로 유입되는 자금 일부가 여기에 투입된다. 박정원 회장 등 대주주 일가도 보유 중인 두산퓨얼셀 지분 23%(5740억 원)를 두산중공업에 무상 증여하기로 했다.
자산 매각과 유상증자 작업이 모두 마무리되면 두산은 3조 원 확보 목표 달성 9부 능선까지 넘어선다. 일단 유상증자와 박 회장 등 오너일가의 두산퓨얼셀 지분 무상 증여로 약 1조 9000억 원이 마련된다. 여기에 계열사와 자산 매각 등을 모두 더하면 목표 달성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된다. 물론 두산솔루스와 모트롤사업부 등 매각 대금 일부(약 5600억 원)는 유상증자에 투입되고, 두산건설(2000억 원)과 두산타워(8000억 원) 지분 일부 또는 절반이 각각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어 두 회사 매각으로 두산이 손에 쥘 현금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IB(투자은행)업계 일각에선 이를 모두 고려하더라도 유의미한 수준의 현금 확보가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두산이 시장에 내놓은 마지막 매물 두산인프라코어에 관심이 쏠린다. 두산그룹이 당초 계획했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인프라코어의 매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른 계열사와 달리 인프라코어 매각 흥행 가능성은 낮게 점쳐지고 있다.
앞서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주관사 크리디트스위스(CS)가 국내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 등 잠재 인수후보들을 대상으로 티저레터와 기업설명서를 배포하고 사전 조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인프라코어가 매물로 나올 당시 현대중공업지주와 한화그룹 등이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됐는데, 각각 초기 단계에서 인수 계획을 철회하거나 인수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CS는 최근 대형 사모펀드들을 중심으로 잠재 인수자들에게 오는 9월 22일 예비입찰 등 매각 일정이 담긴 안내문을 보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2019년 12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열린 베트남 국제기계산업대전에 참가했을 당시 부스 모습. 사진=두산인프라코어 홈페이지
두산그룹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 있지만, 그룹 관계자와 IB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두산은 반대로 여유로운 모습이다. 인프라코어 매각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두산그룹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는 “최근까지 진행된 매각 작업이 가격, 속도 등에서 그룹이 원하는 수준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맡은 KDB산업은행 역시 인프라코어 매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압박은커녕 별다른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며 “전반적으로 인프라코어를 급하게 팔아야 할 상황은 아니고, 일단 다른 매물들의 매각 결과 등과 함께 상황을 종합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입장에선 인프라코어는 매물로 내놓기 아까운 계열사다. 과거 두산은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기업이었지만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주)두산의 자산 30조 2000억 원 가운데 두산인프라코어가 12조 3350억 원(약 41%)를 차지할 정도로 그룹 내에서 위치가 남다르다. 두산이 앞으로 친환경에너지 사업 중심으로 재편될 예정이지만 인프라코어는 신사업이 자리 잡은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그룹을 뒷받침해줄 계열사로 꼽힌다. 그룹 입장에선 다른 매물 매각만으로도 3조 원 목표 달성에 가까워졌다면, 굳이 인프라코어 매각을 서둘러서 진행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업계 일각에선 두산이 최종적으로 인프라코어를 매각하지 않을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실제 그동안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이 가진 인프라코어 지분 36.27%만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고수해왔다. 인프라코어를 사업회사와 두산밥캣을 거느린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하고, 사업회사만 매각한다는 내용이다. 두산밥캣은 인프라코어의 알짜 계열사다. 이 회사를 제외하면 인프라코어는 매물로서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두산은 인수 후보들의 관심이 낮은 지금까지도 밥캣 매각 카드는 꺼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인프라코어의 몸값을 사실상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두산은 매각 주관사 CS를 통해, 잠재 인수 후보자들이 현재 인프라코어가 진행 중인 1조 원대 소송까지 부담할 수 있다는 내용도 전달했다. 인프라코어는 현재 자회사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의 재무적 투자자(FI)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하나금융투자, IMM프라이빗에쿼티 등과 소송을 하고 있다. 과거 인프라코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 때문에 투자 원금에 이자까지 돌려받아야 한다고 FI들은 주장한다. 소송가액은 7000억 원대지만, 지연이자 등을 더하면 1조 원까지 치솟는다.
앞서 1심 법원은 인프라코어의 손을 들어줬고, 항소심에선 FI들이 승소했다. 현재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앞서 두산그룹은 인프라코어의 몸값을 1조 원가량으로 못박아 두고 있었다. 만약 인프라코어가 최종 패소할 경우 인수자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2조 원 이상으로 뛴다. 그동안 시장에선 밥캣을 제외한 인프라코어의 몸값만 해도 지나치게 비싸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자칫 거래가 더 어려워질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두산 내부에선 자신들이 내세운 조건을 받아들일 인수 후보를 원하고 있고 나타나지 않더라도 매각을 서둘러서 진행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인 것 외에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