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계열사·부동산 팔아 3조 원 마련 계획…두산중공업 유상증자·사업구조 재편 추진
#두산그룹 3조 원 확보 특명
두산그룹과 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의 자구안을 지난 4월 27일 최종 확정했다. 채권단은 지난 4월 13일 자구안을 받았으나 1조 원대 긴급자금지원 및 외화채 6000억 원의 대출전환 등 대규모 자금 지원과 비교해 내용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두산그룹과 채권단은 2주에 걸쳐 자구안을 보완했다.
두산그룹과 채권단이 두산중공업 살리기를 골자로 한 자구안을 최종 확정했다. 사진=연합뉴스
두산그룹은 최종 자구안에 3조 원이라는 금액을 명시했다. 자산을 매각하고 제반비용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돈을 확보하고 빠르게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자산의 경우 팔 수 있는 건 모두 시장에 내놓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이 때문에 채권단 평가는 긍정적이다. “독자생존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개편 방향과 계열사 및 대주주 등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과 자구노력이 포함돼 있다”며 기존 1조 원이었던 한도대출 금액을 1조 8000억 원까지 늘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구안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두산의 발표자료와 채권단의 보도자료, 관계자들의 말을 모두 종합하면 이번 자구안의 큰 틀은 ‘두산중공업 살리기’에 맞춰져 있다. 앞서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선 두산중공업이 채권단의 ‘수술’을 거쳐 한국전력에 재매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현재 재무구조 상태로는 두산중공업뿐만 아니라 그룹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다, 과거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전력이 이 관측의 배경이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앞으로도 두산중공업을 핵심 계열사로 둘 계획이다. 채권단도 두산중공업이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살려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세계 경제 상황과 업황 등 외부요인 때문에 다소 지연되더라도 두산중공업이 최고 수준의 재무건전성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 어떻게 살리나
올해 갚아야 할 두산 중공업의 부채 규모는 4조 2000억 원에 달한다. 회사채 1조 2500억 원, 국책은행 대출 1조 1000억 원, 시중은행 7800억 원, 외국계 은행 3600억 원, 기업어음(CP)·전자단기사채 등 7000억 원 등이다. 채권단의 지원 등으로 부채는 1조 원 중후반대까지 낮아졌고, 최근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알짜 계열사’ 두산솔루스 지분을 ‘성공적’으로 매각하면 약 8000억~1조 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완전한 정상화까지 이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자구안에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사업부 매각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우선 두산솔루스처럼 두산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사업 부문이 거론된다. 구체적으로 화학공업장치 제조 계열사 두산메카텍, 지주사 두산의 유압기기 사업부, 지게차 등 산업차량 사업부, 두산중공업의 수처리 플랜트 사업부문 등이 꼽힌다. 증권가에선 메카텍과 유압기기 사업부의 성장성과 안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게차 사업은 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
계열사 부동산도 매각된다. 지주사 두산이 가지고 있는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가 대표적이다. 채권단은 최근 실사 끝에 매각하면 최대 8000억 원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골프장 라데나CC, 두산중공업이 소유한 홍천의 클럽모우CC도 매각 후보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 유상증자도 추진한다. 자산 매각에 외부 자금도 끌어와 두산중공업에 수혈한다는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특히 지주사 두산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주)두산은 두산중공업의 지분 34.36%를 갖고 있다. 두산솔루스 매각 대금을 고스란히 두산중공업에 투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뒷말이 많았던 박정원 회장 등 대주주들의 사재 출연도 이뤄진다. 이를 통해 두산중공업에 출자를 하고, 배당 및 상여금을 받지 않는 한편 급여도 반납할 계획을 세웠다. 박 회장과 특수관계인 등은 지난 3월 말 채권단에 긴급자금을 요청하면서 보유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앞서 두산 계열사 매각과 관련해 최대 관심사였던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은 당장은 시장에 매물로 나오진 않는다. 다만 두산밥캣의 경우 정상화 작업이 여의치 않을 경우 최후의 매각 대상이 될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은 그룹 내 캐시카우로, 현재 상황에서도 버틸만 한 여력이 있다. 그만큼 반대로 매각할 경우 대규모 현금을 조달할 수 있다. 두산과 채권단은 두산밥캣 매각 가능성은 열어두고 일단 추이를 지켜보는 쪽으로 협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 대신 두산중공업의 부실이 이들 계열사로 전이되지 않도록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방안이 추진될 수도 있다.
#‘빠르게’ ‘제값 받고’ 매각해야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 자금 수혈과 동시에 체질 개선 작업에 착수한다. 두산그룹은 앞서의 자산 매각을 통한 ‘3조 원’ 현금 확보와 함께 사업구조 재편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산소호흡기를 떼고 곧바로 홀로 걸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앞서의 두산그룹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가스터빈 발전사업,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 두 분야를 재편의 큰 축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두산중공업 사업은 원자력, 석탄, 천연가스 순으로 비중이 컸다. 세계적으로 탈원전, 친환경에너지 사업이 급부상하는 과정에서도 두산중공업은 사업재편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담수, 수처리 사업과 인프라 공사 등에 힘을 실으면서 재무부담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고 천연가스와 수력발전, 태양광EPC사업, 수소산업 등 친환경에너지 사업을 두산중공업의 핵심 사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두산그룹은 원자력과 석탄 사업부문 매각 등 몸집 줄이기 방안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자구안이 확정되면서 두산중공업 정상화의 발판이 만들어졌다. 채권단은 현재 진행 중인 절차를 마무리하고 오는 5월 중에 두산중공업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종 목표 달성까지 변수가 적지 않다. 계획한 3조 원 마련 방안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이 얼어붙어 두산그룹이 원하는 가격을 받아내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빨리 매각을 해야 하는 두산그룹의 입장도 부담이다. 파는 쪽이 급할수록 몸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값을 받아도 문제는 또 있다. 매각 대상이 된 두산타워 등 지주사 두산이 가진 자산 대부분은 이미 담보로 잡혀있다. 대출금을 내고 나면 매각 대금은 반토막이 된다. 현금 확보가 지연되거나 계획과 다를 경우 최근 채권단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향후 부채로서 발목을 잡게 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구안을 얼마나 빠르게, 또 계획한 대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정상화 성패가 갈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