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어 금감원,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칼끝 태세…초대형 IB 핵심 단기금융업 인가 물거품 위기
삼성증권이 오너 리스크로 인해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 사진=연합뉴스
2017년 11월 삼성증권은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이라는 조건을 갖춰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초대형 IB로 지정됐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초대형 IB의 핵심업무인 단기금융업 인가 심사가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유령주식 배당사고와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이 인가 심사의 걸림돌이 됐다.
당시 일감 몰아주기 문제로 함께 인가 심사가 연기됐던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조사를 끝낸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 고발을 포기하면서 멍에를 벗었다. 결국 삼성증권 혼자만 초대형 IB 업계의 ‘왕따’로 남게 되는 셈이다.
현재 초대형 IB 5곳 중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KB증권은 이미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아 발행어음 사업을 하고 있다. 발행어음 인가는 초대형 IB 사업의 핵심이다. 자기자본의 2배까지 자금을 모집할 수 있어 초대형 IB들은 단기어음을 통해 자본여력이 더욱 확대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기업대출·부동산금융 등에 투자할 수 있다. 결국 초대형 IB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업을 하려면 발행어음이 필수인 셈이어서 삼성증권은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인가를 받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을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기는 과정에서 공소장에 삼성증권을 수십 차례나 언급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공소장을 확보하고 삼성증권에 대한 제재 등 행정조치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공소장에 적시된 불법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 그리고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삼성증권 법인과 관련 임직원 등에 대한 제재가 필요한지 등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도록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며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고위 관계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합병 당시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 주가가 높게 형성되고, 반대로 삼성물산 주가는 하락하도록 한 과정에 각종 불법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주주명부에 담긴 개인정보를 삼성증권에 넘겼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사업자등록번호), 거주지 주소, 전자우편 주소, 보유 주식 종목·수량과 같은 개인정보들이다. 삼성증권은 넘겨받은 정보와 본인들의 고객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자신들의 고객 중 삼성물산의 주주인 개인투자자 명단을 추렸다. 그리고 전국 지점망을 통해 이들을 상대로 합병 찬성을 권유하도록 했다. 게다가 당시 삼성증권은 제일모직의 자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검찰은 또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이 통과된 후, 주식매수청구기간(2015년 7~8월)에 제일모직 주가 관리를 위해 삼성증권 등을 통해 시세조종 행위로 의심되는 ‘고가 매수 주문’ 등을 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검찰은 삼성증권 경영진 등에 대해선 별도의 법적 조처를 내리지는 않았다. 검찰은 공소장에 ‘개인정보 유용’이라고 표현했지만 불법이 아니라 ‘이해상충 행위’라고 적었다. 금융회사가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고객의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갖다 쓴 사실을 확인했지만 불법인지는 판단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시 삼성증권의 최고경영자(CEO)는 윤용암 전 사장이다. 그는 생명·화재·자산운용 등 삼성 금융계열사를 두루 거친 터라 그룹 내 금융통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그는 삼성 회장비서실(미래전략실의 전신) 출신으로 이번 사건으로 피소된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 김종중 미래전략실 사장 등과 한솥밥을 먹었다.
금융권은 이번 일로 삼성증권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금감원의 조사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검찰이 이미 공소를 제기해 재판이 시작되는 혐의에 대해 금감원이 따로 조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게다가 윤용암 전 사장이 검찰조사를 받고도 기소 대상에서 빠졌으니 아마 ‘재판 결과를 기다려본 뒤 결정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을 내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처분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 있는 만큼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금융당국이 추가로 인지조사를 해야 할 부분 있는지 들여다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금감원의 조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삼성증권이나 일부 임직원의 제재는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경우 공을 들인 단기금융업 인가는 한동안 물 건너간다는 것이 금융권의 예상이다. 금융권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입장이라는 게 있지 않겠느냐”면서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제재는커녕 오히려 단기금융업 인가를 내준다면 비판을 받을 것이 빤한데 금융당국이 그런 리스크를 무릅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