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일선 물러난 후 보유 부동산 매각…금호 관계자 “그룹 내에서도 들리는 소식 없다”
아시아나 공시에 따르면 지난 11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 회장은 그가 보유한 금호고속 주식 3만 2400주를 아시아나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했다. 이는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받기 위한 것으로, 박 전 회장과 금호고속이 채권단에 제공한 담보금액은 1조 6000억 원에서 3조 3000억 원으로 늘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 인수가 무산되고 이어 박삼구 전 회장이 채권단에 담보를 제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새삼스레 박 전 회장의 근황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박 전 회장은 현재 별다른 대회활동 없이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상태”라며 “그룹 내에서도 박 전 회장과 관련해 들리는 소식이 없다”고 전했다.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이 사실상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2018년 7월 당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박삼구 전 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박삼구 전 회장이 현재 금호그룹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맡고 있는 직책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뿐이며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것도 아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은 비상근 이사장으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출근하지 않는다”며 “이사회에 참석한 것 외에는 올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관련해 특별한 활동을 한 건 없다”고 전했다.
박삼구 전 회장은 과거 활발한 대외활동을 해온 기업인이다. 그러나 2018년 한국메세나협회 회장과 한국방문위원회 위원장에서 퇴임한 이후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6월에는 임기 만료로 2008년부터 맡아오던 연세대학교 총동문회장에서 물러났고, 재단법인 연세동문장학회 이사장직도 이때 사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동문장학회 이사장 임기는 1년가량 남은 상태였다. 연세동문장학회 관계자는 “그간 연세대 총동문회장이 장학회 이사장도 맡아온 경우가 많았는데 박 전 회장이 동문회장에서 퇴임하면서 이사장직도 사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삼구 전 회장 자녀들은 금호그룹 계열사에서 근무 중이다. 장남 박세창 씨는 아시아나 자회사인 아시아나IDT와 아시아나세이버 사장을 맡고 있고, 장녀 박세진 씨는 아시아나 손자회사인 금호리조트에서 상무로 재직 중이다. 아시아나가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면서 박세창 사장과 박세진 상무의 인사이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시아나 임원 인사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전했다.
박삼구 전 회장이 올해 들어 보유 부동산을 매각한 것도 눈에 띈다. 지난 1월 박 전 회장은 그가 소유한 한남동 J 빌라 1층을 18억 5000만 원에 매각했다. J 빌라 1층에는 박세진 상무가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월에는 그의 한남동 자택을 소노호텔앤리조트에 250억 원에 매각했다. 소노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매입 이유에 대해 “대내외 VIP 미팅 등 보안이 필요한 비즈니스 라운지 개념으로 운영하려 한다”며 “계열사 사장단 비즈니스 미팅도 이곳에서 할 예정이며 아직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건 아니고 준비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법인등기부에는 박 전 회장의 주소지가 여전히 한남동 자택으로 나와 있다.
박삼구 전 회장이 소유했던 서울 한남동 주택(사진)이 지난 2월 소노호텔앤리조트에 250억 원에 매각됐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 같은 은둔생활에도 박삼구 전 회장의 존재감은 회사 내에 여전하다. 아시아나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박 전 회장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지분 100%를 가진 아시아나 하청업체 케이오는 지난 2월 경영난을 이유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이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 8명이 지난 5월 해고됐고, 이 중 6명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 지난 7월 인용됐다. 사측은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공노동자 고용안정 투쟁본부는 입장문을 통해 “코로나19를 빌미로 아시아나는 고용유지 노력 없이 하청 노동자들을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로 내몰았다”며 “수천억 원의 재산을 가진 박삼구 전 회장은 하청 노동자들의 실직을 막기 위해 단 한푼도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의 돈을 끌어다 쓰면서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등 최근 아시아나의 어려운 상황과 관련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면서도 “아직 노조 차원에서 박 전 회장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지난 8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금호산업, 아시아나 법인 등과 함께 박 전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아시아나는 게이트그룹에 30년 기내식 독점 공급권을 주고, 게이트그룹은 그 대가로 금호고속이 발행한 1600억 원 상당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했다. 즉 금호고속의 1600억 원 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 아시아나가 다른 기내식 업체와 더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것으로 공정위는 보고 있다.
공정위 고발에 대해 금호그룹 측은 “기내식 거래와 BW 거래의 각 거래조건 협상은 독립적·개별적으로 진행됐고, 서로 연계되거나 대가 관계에 있지 않다”며 “게이트그룹과 계약을 통해 기내식 비용 절감, 고객 만족도 향상 등 경제상 이익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기내식 공급가의 투명성 확보 및 기내식 합작투자법인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도 이룰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