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 추진 공정거래법‧상법 등 제‧개정안 통과 유력…경제단체 시민단체 모두 삼성 현안 근거로 찬반논쟁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재수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이번엔?
공정경제 3법 제‧개정안(공정경제 3법)은 새로운 법안이 아니다. 관련 개정안에 대한 논의와 발의가 20대 국회에서도 이뤄졌으나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공정경제 3법과 패키지로 묶여 언급되는 보험업법 개정안 또한 이미 19대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는 176석 거대 여당이 이들 법안 통과를 적극 추진하는 만큼 법안 처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번에 입법 예고된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다. 앞서 법무부는 2013년 현 개정안 주요 내용에 집중투표제 의무화까지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으나 의견 청취에만 그치고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이사 선출 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와 분리해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특수관계인 등 합산)와 일반주주가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임무 해태 등으로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또한 공정거래위원회가 두 번째 추진을 시도하는 법안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경성담합 등 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수사‧기소할 수 있게 한 전속고발권을 폐지해 검찰의 수사가 가능토록 했다. 또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강화를 위해 규제대상 총수일가 지분 기준을 20% 이상(현행 상장회사 30%, 비상장회사 20%)으로 일원화하고, 이들이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신규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자회사의 경우 현행 20%에서 30%로 상향)도 강화한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금융자산 5조 원 이상의 복합금융그룹 가운데 금융지주와 국책은행을 제외한 금융그룹을 감독 대상으로 지정해 자본적정성을 점검‧평가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삼성과 한화, 미래에셋, 교보, 현대차, DB 등 6곳이 감독 대상으로 지정됐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에 대해 금융지주회사법을 통해 감독을 시행하고 있지만 비지주 금융그룹의 경우 금융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이 상당함에도 규제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찬반 논의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이름
재계가 앞서의 법안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재계 1위 ‘삼성’의 사례가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삼성의 타격이 가장 클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는 지난 9월 16일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성명을 내고 “상법‧공정거래법 통과 시 기업의 경영권 위협이 증대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여야 할 자금이 불필요한 지분 매입에 소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공정거래법이 통과될 경우 현재 비 지주회사 체제인 대기업 16곳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총 30조 1274억 원, 이 가운데 삼성그룹은 25조 원으로 가장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삼성은 지난 7월 20일 상법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 의견에서도 두 차례나 언급됐다. 경제단체는 투기자본의 악용 가능성을 들어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를 반대하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했던 엘리엇의 사례를 들었다. 외국계 증권사를 통한 총수입스왑거래(TRS)로 공시 없이 지분을 매집해 경영위협을 가할 경우 방어책이 없다는 것. 금융당국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했던 엘리엇이 TRS를 통해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공시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지만 검찰은 지난 6월 엘리엇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제단체는 다중대표소송제도에 대한 반대 의견에서도 삼성전자를 예시로 들었다. 지난 4월 1일 종가 기준 311억 1000만 원 어치의 삼성전자 주식만 보유하면 다중대표소송을 통해 삼성전자 외 자회사 7개에 대한 제소가 가능해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 경제단체는 “경영권 침탈 또는 단기차익 실현 목적의 투기자본 등에 의해 기업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삼성전자가 관리해야 할 소송리스크는 7배 급증하는 반면 개미투자자의 제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참여연대와 기업거버넌스포럼도 삼성의 사례를 들어 반박 논리를 펼치고 있다. 참여연대는 법무부에 상법 개정안에 대해 찬성 의견을 밝히며 “삼성물산 부당합병, 많은 재벌총수의 횡령·배임에 대한 방조 등 대다수의 기업 이사회가 총수일가의 불법지시에 거수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기업거버넌스포럼도 의견서를 통해 삼성물산 합병 사례를 언급하며 ‘이사의 충실의무’를 개정하는 추가 개선 의견을 제시했다. 이사의 행위로 인해 회사나 지배주주뿐만 아니라 ‘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도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현행법에서의 이사의 충실의무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부당한 비율로 합병됐음에도 어떤 의사결정도 위법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게 된 근거가 됐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금융그룹감독 제정안의 자본적정성 평가체계가 삼성그룹에 혜택이 될 수 있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삼성생명 건물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정경제 3법을 두고 일부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논의에서도 삼성이 중심에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금융그룹감독 제정안의 자본적정성 평가체계가 삼성그룹에 혜택이 될 수 있다며 수정‧보완 의견을 제출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참여연대가 규정 추가 의견을 제출했다. 입법 예고안에서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규정은 법 개정 이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통지받는 경우에 한해 적용되지만, 현재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일부 재벌이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총수가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교수)은 “(현재 정부가 입법예고한) 공정경제 3법 제‧개정안은 지난 총선 이전에 나왔던 법안”이라며 “당시 여당이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 상태에서 통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최저 수준으로 만들었으나, 여당이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음에도 별다른 수정작업 없이 총선 전과 같은 안을 들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개혁연대가 여러 분석보고서를 냈듯, 공정거래법 등 현재 법안이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조만간 국회에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자료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