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던 금융사들 돌연 ‘백기투항’…금감원 ‘복합점포’ 조사로 지주사까지 압박
증권사에서 시작된 라임펀드 사태는 금감원이 주요 판매통로가 ‘복합점포(은행+증권사)’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금감원이 복합점포를 조사하면서 금융그룹들의 핵심 계열사인 은행과 지주사에까지 칼끝을 들이대자 금융사들은 서둘러 백기를 들었다.
라임펀드 사태가 금융사들의 ‘전액 배상’ 결정으로 일부 수습 될 전망이다. 사진=라임자산운용 홈페이지
라임펀드 사태로 금융권이 한창 시끄럽던 지난 7월, 사모펀드 전수조사에 나섰던 금감원은 돌연 “상품을 선정한 배경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투자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가 있었는지가 쟁점이었던 만큼 금감원의 방향 전환에 금융사들은 크게 당황했다.
불완전 판매는 해당 상품을 고객에게 추천한 증권사에서 투자위험 등을 제대로 설명했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상품 선정 배경을 들여다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라임펀드는 대부분 은행과 증권사가 한 점포에 입주해있는 ‘복합점포’를 통해 판매됐는데, 이 복합점포에서 판매하는 펀드는 은행이 골라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이를 금감원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투자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보상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증권사 차원이 아니라 금융그룹의 깊숙한 곳까지 치고 들어가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전수조사에서 금융당국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앞서 말한 상품 선정 과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사들이 사모펀드 상품을 선정한 과정을 비롯해 고객에게 상품을 추천한 배경들을 모두 살폈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금융그룹들이 운영 중인 복합점포가 타깃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금감원은 이미 라임펀드 분쟁조정 과정에서 복합점포의 비정상적인 영업행태를 일부 확보해둔 상태였다. 은행 지점장이 5년간 정기예금만 거래하던 한 장학재단에 복합점포의 PB(프라이빗뱅커)를 소개했고, 해당 PB가 라임 펀드를 추천해 투자원금의 76%가 부실화된 사례 등을 확보해두고 있었던 것.
금감원의 이런 움직임이 포착되자 “전액보상은 절대 못한다”고 버티던 금융사들의 태도는 갑자기 백팔십도 달라졌다. 우리은행은 라임펀드 관련 지급 대상 투자자들에게 판매금액 650억 원 중 99%인 648억 원을 돌려줬다. 연락두절 등의 이유로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액 배상을 완료한 셈이다. 남은 고객에 대해서도 최대한 신속하게 반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우리은행 측은 “금융소비자 보호와 신뢰 회복,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하나은행과 미래에셋대우가 가세했다. 이사회을 열고도 피해자 보상 관련 결정을 미루며 시간을 끌던 하나은행과 미래에셋대우는 8월 이사회에서 피해자들의 원금을 전액 반환하라는 금감원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전격 결정했다.
하나은행과 미래에셋대우 측도 “아직 검찰수사와 재판 등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신속한 투자자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권고안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디스커버리펀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에 대한 추가적 고객 보호 조치도 마련하겠다는 발표까지 내놨다.
백기투항이 잇따르자 가장 강경한 입장이던 신한금융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신한금융은 “고객에 대한 약속 이행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금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분쟁조정결정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신한금융 측은 “지난 5월 라임펀드 선보상 결정 당시 분쟁조정위원회 조정 결과를 반영해 보상금 차액을 정산하기로 한 고객과의 약속을 이행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수락했다”고 밝혔다.
금융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 것은 금감원이 10월 제재심의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금융회사의 제재 범위를 대폭 확대할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특히 복합점포에서 증권사에 라임 펀드를 소개한 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리고 최고경영자(CEO) 징계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긴장감이 커졌다. 만일 은행과 지주사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될 경우 영업 타격을 넘어 지배구조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감원은 현장검사 내용과 함께 ‘소개 영업’에 대한 대법원 판례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한 제재를 넘어 법적 조치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금감원이 주목하는 대법원 판결문은 “금융투자업자가 고객에게 다른 금융투자업자가 취급하는 금융투자상품 등을 소개한 것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9조 제4항에서 정한 투자 권유를 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 해당 금융투자업자가 고객에게 해당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적합성 원칙의 준수 및 설명의무를 부담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라임펀드 사태가 정치문제로 비화될 조짐이 커진 것도 한몫한 듯하다”면서 “금감원 입장에서는 빨리 이 문제를 털고 가지 않으면 곤혹스런 입장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