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업체 전수조사 벌였지만 결과 공개 소극적…“혁신금융 행보와 연결될까 선긋기” 지적
P2P 대출이 급격히 부실화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금융권 의문이 커지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소액으로도 은행이자율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P2P 투자에 뛰어들었던 개인투자자들은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여 정보를 주고받느라 분주하다. 최근 대출업체가 대거 폐업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금융당국이 전수조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를 알 길이 없어서다.
온라인상에서는 주로 적정의견의 감사보고서를 낸 P2P 업체의 명단이 떠돌고 있다. 금융당국이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업체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자 불안감이 커진 투자자들이 직접 정보를 수집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직접 업체에 제출 여부를 문의하거나 업체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총 143개 업체들을 조사한 후 감사보고서를 낸 50여 개 업체를 걸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자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P2P 업체의 3곳 중 1곳이 폐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까지 나왔는데도 금융당국이 업체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7월 초부터 두 달 넘게 전체 P2P 업체 237개사를 대상으로 감사보고서를 제출받았다. 하지만 자료를 낸 곳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인 79개사에 불과했다. 회계법인 감사보고서마저 내지 못한 곳이 70%에 달한다는 얘기다.
당국에 따르면 자료를 제출한 곳 중 78개 사가 적정의견을 받았고, 1개사는 ‘의견거절’을 받았다. 감사보고서 미제출업체 중 26개사는 ‘영업실적이 없다’고 답했고, 12개사는 ‘비용문제 등으로 제출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7개사는 ‘제출기한 연장 요청’을 회신했다. 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은 곳이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113개사였다. 이들 중 105개사는 아예 응답하지 않았고, 8개사는 당국의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폐업신고를 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적정의견’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뒤 P2P업 등록요건을 갖춰 신청서를 내는 업체에 한해 등록 심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미제출·미회신 업체에 대해서는 자료제출을 재차 요구했고, 향후 현장검사 등을 통해 위법·부당행위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한정·의견거절’ 및 ‘미제출’ 업체는 영업 여부 등에 대한 확인 절차를 거쳐 P2P연계 대부업 등록 반납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필요 시 현장조사와 검사를 실시해 등록취소 처분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적정의견’을 제출한 78개 업체 중 실제 얼마나 많은 업체가 등록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P2P업으로 등록하려면 제출서류 등을 통한 심사와 함께 물적설비 등에 대한 현장심사를 받아야 하고,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P2P법)에 따른 등록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데, 이 까다로운 절차를 모두 통과할 업체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런 와중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금융혁신 사례”라며 치켜세웠던 ‘팝펀딩’이 폐업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팝펀딩은 지난 6월 금융감독원에 폐업신고를 했고, 곧바로 최종 폐업조치됐다. 폐업신고는 신고가 접수되면 곧바로 처리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금융혁신 사례”라며 치켜세웠던 ‘팝펀딩’이 폐업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사진=팝펀딩 홈페이지
팝펀딩은 자체 확보한 창고에 온라인쇼핑 판매업자의 재고를 보관하고, 그 가치를 평가해 운전자금을 대출해주는 ‘동산담보 대출’을 주로 취급했다. 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팝펀딩 파주 물류창고를 직접 방문, “팝펀딩을 시작으로 또 다른 동산금융 혁신사례가 은행권에서 탄생해 보다 많은 혁신·중소기업이 혁신의 과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며 혁신금융 띄우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금감원이 ‘팝펀딩’의 대출 취급 실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불법 혐의가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고, 이 때문에 팝펀딩에 투자한 사모펀드 일부도 운용 과정에서 손실이 나 투자 원리금을 돌려주지 못한 채 상환이 연기됐다. 환매 중단 금액은 총 355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P2P 업체의 부실은 팝펀딩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6월에만 팝펀딩을 포함해 4곳이 문을 닫았고, 7월 3곳, 8월 7곳 등 폐업하는 업체가 줄을 잇고 있다. 9월 들어서도 이미 클린대부금융과 엘엔비펀딩대부 등 2곳이 문을 닫았다. 금융권은 P2P 업체들이 제도권으로 진입되는 과정에서 폐업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P2P 업체들의 줄폐업으로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P2P금융 통계회사 미드레이트에 따르면 9월 초 기준으로 P2P 업체 135개사의 대출잔액은 2조 2953억 원에 이른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융당국은 정보를 공개할 의무는 없다며 “투자자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권은 금융당국이 은성수 위원장이 공들였던 혁신금융 행보와 연결될까 우려해 선을 긋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혁신금융이라며 칭찬한 것은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금융당국이 투자하라고 권고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면서 “최소한 투자자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에서 책임지고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