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19일 청와대에서 만난 정몽구(왼쪽) 이건희 회장. | ||
특히 총수의 소환을 비롯,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거론됐던 몇몇 대기업 관계자들은 ‘탄핵정국’을 맞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지난 8일 검찰의 불법대선자금에 대한 중간수사발표에서 ‘계속수사 대상기업’에 올랐던 삼성과 현대차, 동부, 부영 등 4개 기업의 관계자들은 탄핵정국을 내심 반기는 모습이다.
삼성의 경우 검찰의 중간수사발표 직전, 안희정씨에게 30억원의 채권을 전달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α’ 존재 가능성에 대한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잔뜩 긴장했으나, 때마침 정치권에서 탄핵정국이 몰아치면서 한동안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사태 배후에 삼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삼성이 일차적인 여론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기는 했지만, 검찰이 중간수사발표에서 ‘계속 수사 대상 기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검찰에서 중간 수사 발표 직전 이학수 부회장 등 주요 관계자들에 대해 집중 소환조사를 벌였다는 점에서 총선과 탄핵정국 이후 불법대선자금과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언제든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체류중인 이건희 회장이 귀국을 늦추고 있고, 귀국 직후 검찰의 집중 조사를 받았던 이학수 부회장이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은 탄핵정국에도 불구, 삼성이 검찰의 추가 수사에 대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계속 수사 대상 기업에 오른 현대차그룹 관계자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에 1백억원을 차떼기로 전달한 사실이 밝혀져 한 차례 곤욕을 치른 후 한동안 뉴스 초점에서 사라졌던 현대차그룹이 느닷없이 검찰의 중간수사발표에서 계속 수사 대상 기업으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들에게도 ‘탄핵정국’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수사 재개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한동안 검찰의 날카로운 예봉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동안 두문불출해오던 정몽구 회장이 지난 16일 가벼운 마음으로 해외 출장길에 오른 것도 따지고 보면 탄핵정국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계속 수사 대상 기업에 오른 동부그룹 역시 탄핵정국을 맞아 잠시 한숨 돌렸다. 검찰의 중간수사발표 직전, 신병치료를 이유로 열흘간 해외로 출국했던 김준기 회장은 탄핵정국을 틈타 예정보다 3일 늦은 22일 귀국했다.
더욱이 지난 16일 강원 영월-평창-태백-정선 열린우리당 후보 경선에서는 동부 김준기 회장의 동생 김택기 의원이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에게 패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같은 경선 결과를 두고, 경선 당시 유권자들의 표심이 ‘자타가 공인하는 실세’에 쏠렸다는 분석이 우세한 가운데, ‘검찰 수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김준기 동부 회장)을 살리기 위해 동생(김택기 의원)이 희생한 것 아니냐’는 억측도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동부의 경우도 탄핵정국을 틈타 잠시 검찰의 예봉을 피한 셈이다.
▲ 김준기 동부 회장과 이중근 부영 회장 | ||
검찰의 대선자금 중간 수사발표 직후, 2백억원대의 비자금이 추가로 발견돼, 총선 직전 정치권을 뒤흔들 또다른 변수로 등장했지만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요동치면서 수면아래로 깊숙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부영 비자금의 경우, 검찰이 이미 상당부분 비자금의 용처까지 수사를 마친 것으로 전해져 언제든 수면위로 부상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헌법재판소의 평의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검찰이 무리하게 정치권에 제공된 비자금 내역을 공개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총선과 탄핵정국 이후까지 부영 비자금에 대한 수사는 유보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이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계속수사대상 기업으로 밝힌 이들 4개 기업들이 한시적으로 한숨을 돌리고 있다면, ‘사실상 수사 종결’ 판결을 받은 LG SK 롯데 한화 등은 오랜만에 두발을 뻗고 자는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다.
LG의 경우 LG카드 사태 등으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는 별도로, 그룹이 위기에 몰렸었지만, 이헌재 부총리 체제가 들어서고, 검찰의 수사가 사실상 종결되면서 평정을 되찾고 있다.
LG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는 그룹 분할작업에 매진하고 있어, 올 연말쯤이면 대주주간 그룹 분할이 사실상 종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찌감치 ‘분식회계’와 ‘대선자금’ 등으로 호된 검찰 수사를 경험한 바 있는 SK는 올 들어 각종 인사를 통해 확실한 최태원 회장 직할체제를 구축했는가 하면, 지분 확보 등을 통해 안정적인 기업활동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내내 버티기로 일관해 오다 지난해 3월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 여택수 행정관에게 3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진 롯데그룹도 탄핵정국과 함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안도하고 있다.
검찰의 소환 통보 직전, 미국으로 출국해 ‘도피성 출국 의혹’을 받았던 한화 김승연 회장의 경우도 탄핵정국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케이스다.
당초 스탠퍼드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기 위해 출국했다는 궁색한 변명에도 불구, 행방이 묘연했던 김 회장은 탄핵정국을 맞아 완전히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들 역시 탄핵정국을 맞아 한숨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탄핵 사태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지만,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재계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달콤한 휴식시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휴식이 언제까지나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총선이 끝나고,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이후 검찰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정국이 재계에 일시적인 휴식을 제공했지만 불안정한 휴식이 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