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보험업법 통과 땐 SK·삼성·현대차 전략 수정해야…롯데 IPO와 대림산업 승계도 차질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신호탄 ‘자사주 매입’
지난 8월 28일 SK텔레콤은 주주가치 제고와 주가 안정화를 위해 5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공시했다. SK텔레콤의 자사주 보유 비중은 전체 발행 주식의 9.4%에서 12%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자사주 매입 배경으로 SK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늘릴수록 최대주주 의결권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SK(주)가 합병을 추진할 때는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에도 효과적이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가 상승하면 유리한 합병비율을 산정할 수도 있다. 앞서 지난 10월 SK그룹 지주사인 SK(주)도 7200억 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올해 2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는 전체 발행 주식 25.7%에 달하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SK그룹의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SK(주)→SK텔레콤→SK하이닉스’로 이어진다. 현 지배구조 상 그룹 내 핵심 기업이자 캐시카우인 SK하이닉스를 활용하기 어렵다. SK하이닉스는 SK(주)의 손자회사라 공정거래법상 인수합병(M&A)에 나서려면 그 회사의 주식 100%를 소유해야 한다. SK하이닉스가 사업 확장을 위해서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증권업계에서는 SK텔레콤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방안을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SK텔레콤 투자회사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후 SK(주)와 합병하게 되면 SK하이닉스를 SK(주)의 자회사로 두게 된다. SK하이닉스의 지배력이 SK텔레콤에서 SK(주)로 넘어간다. 특히 SK(주)와 SK텔레콤 투자회사가 합병할 때 SK(주)가 들고 있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들고 있는 SK(주)의 지분율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SK(주)의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올라서게 될 뿐만 아니라 SK(주) 주주들의 희석률이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또 SK하이닉스 배당수익 증가로 SK(주)가 배당을 확대할 가능성도 높아져 SK(주)가 최대 수혜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같은 개편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신규로 지주회사를 전환하거나 기존 지주회사가 자회사, 손자회사를 신규로 편입할 때 보유해야 할 의무 지분 비율을 높이는 것이 개정안 골자다. 현행 ‘상장회사 20%·비상장회사 40% 이상’에서 ‘상장회사 30%·비상장회사 50% 이상’으로 늘어난다. 개정안을 적용하면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주식 10%를 추가 매입해야 한다. 지난 9월 21일 기준 6조 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월 30일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현대글로비스’ 정의선 부회장 승계 핵심인데...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감 몰아주기 대상 총수일가 지분 기준이 ‘상장사 30%·비상장사 20%’에서 일괄 20%로 변경된다. 현재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26개사 중에 삼성물산 다음으로 현대글로비스가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21.6%가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각각 6.71%, 23.29%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에서 현대글로비스가 갖는 위치는 남다르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모비스(0.3%), 현대차(2.6%), 기아차(1.8%) 등의 지분율이 낮다.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해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올라서야 한다. 어떤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도 현대글로비스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현대글로비스는 비계열사 일감을 대량 수주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하면서 기업 가치 끌어올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태국 재계 1위 CP그룹과 사업 제휴를 맺고 현지 물류 시장에 진출하고, 중국 칭다오 한국농수산식품 물류센터 운영 사업권을 따냈다. 지난 7월엔 폴크스바겐, 아우디, 포르셰, 벤틀리 등이 유럽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의 운송 계약을 따냈다. 국내에서는 현대백화점 새벽배송 물량까지 도맡았다. 최근엔 중고차 시장 진출까지 가시화되고 있다(관련기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중고차’로 가속페달 밟나).
지난 6월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 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삼성생명법’ 이재용 부회장 그룹 지배 방법
‘삼성생명법’이라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 보유주식 평가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보험사의 단일종목 주식 보유 한도를 취득원가 기준 총자산의 3%로 제한하고 있다.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과도하게 보유하면 기업 리스크가 보험사에도 영향을 끼쳐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금과 자산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보험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개정안 적용 대상이다. 지난 3월 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총자산은 각각 309조 원, 86조 원이다. 두 회사는 각각 삼성전자 지분을 8.51%, 1.49% 보유했다. 취득원가 기준으로 각각 5000억 원대, 1000억 원대로 추정된다. 각 회사 총자산 대비 0.1% 수준이다. 하지만 시가 기준으로 하면 각각 29조 4368억 원, 5조 2393억 원에 달한다. 총자산 대비 각각 9.5%, 6.2%로 상승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유예기간으로 상정한 5년 내(금융위 승인 시 2년 연장) 현재 가치 기준으로 23조 원 안팎의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만 약 5조 원으로 추산된다.
삼성그룹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분 매각과 동시에 인수에 나서야 한다. 외부에서 지분을 인수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이 각각 5.01%, 8.51%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활용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문제는 지분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거액의 세금을 내고서 삼성전자에 파는 방법뿐이 없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3%’ 규제로 인해 삼성물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과 삼성생명·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맞교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물산이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 지분을 인수해도 문제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삼성전자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최근 보험업법과 함께 논의되는 공정거래법이 통과되면 지주회사 자회사 의무 지분율이 30%로 높아진다. 현재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5%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향후 삼성물산이 최대 삼성전자 지분 25%를 추가로 매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할 방안이 현재까진 전무하다.
#IPO 차질 빚는 롯데…승계 막바지인 대림산업
롯데그룹의 숙제는 하나다.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한국과 일본 롯데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그런데 상장을 위한 신동빈 회장의 행보가 본격화되기 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호텔롯데의 올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대비 48.3% 줄어든 1조 7964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은 3420억 원에 달한다. 창사 후 처음으로 장기 기업어음(CP)을 발행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발행된 회사채가 약 1조 원에 달했다.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호텔롯데는 롯데지주, 롯데물산, 롯데건설 등 다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가 지분 19.07%를 보유한 일본롯데홀딩스라는 점이다. 나머지 77%가량의 지분도 일본롯데 계열사가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텔롯데를 상장해 구주 지분을 희석시켜 일본 꼬리표를 떼겠다는 것이 신 회장의 계획이다.
지난 9월 10일 대림산업은 인적·물적 분할을 통해 지주사·건설·석유화학 부문으로 나눈다고 밝혔다. 지주회사 디엘, 건설사업 디엘이앤씨, 석유화학 디엘케미칼로 분할하는 게 골자다. 이번 인적·물적 분할은 이해욱 회장의 대림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대림코퍼레이션 혹은 분할된 석유화학 계열사 대림피앤피와 대림산업의 석유화학 부문의 합병 등을 통해 이해욱 회장의 그룹 지배력 확대를 도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해욱 회장은 대림산업의 지주회사격인 대림코퍼레이션을 통해 대림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대림산업의 낮은 지분율이다. 이 회장을 비롯한 최대주주 특수관계인은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62.3%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림코퍼레이션의 대림산업 지분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다 합쳐도 23.12%에 불과하다. 외국인과 국민연금공단의 지분율이 각각 40%, 13.5%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언제든지 경영권 위협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