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월북 발표에 유가족 “경계 실패 책임 떠넘기나”…동료들 “빚 때문에 파산 고려, 가압류 심적부담” 증언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9월 21일 목포 소재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8급) 이 아무개 씨(47)가 499t 어업지도선을 타고 임무를 수행하다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신발(슬리퍼)은 배에 벗어둔 상태였다. 서해어업단은 불법 중국어선 등의 단속업무를 수행하는데, 관할 구역은 전남 진도 해역에서 연평도 해역까지다.
이날 1시쯤 해양경찰에 실종사실 신고가 접수됐고, 즉시 해경과 해군 해수부가 주변과 해안선 수색에 나섰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 씨가 실종지점에서 38km 떨어진 북측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최초 발견된 시점은 다음 날인 9월 22일 오후 3시 30분쯤이다. 실종신고가 해경에 접수된 지 약 28시간 만이다. 이 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소형 부유물’에 탑승해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군은 1시간 뒤인 오후 4시 40분쯤 북측이 이 씨에 표류 경위를 확인하고 ‘월북 진술’을 들은 정황을 입수했다. 이를 통해 북한군 선박이 발견한 사람이 이 씨임을 특정하고, 이 씨가 월북할 목적이 있었음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총살된 건 ‘월북 진술’이 이뤄진 지 5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쯤으로 파악된다. 고속정에 탄 북한군이 이 씨를 향해 총격을 가한 것. 이후 10시 10분 연평부대 감시장비로 불꽃이 감지됐다.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북측 인원이 해상에서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운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지역에서 북한군이 남측 민간인을 총격으로 사살한 것은 이명박 정부인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을 갔던 박왕자 씨 사건 이후 두 번째다.
#이 씨의 목적 월북 단정한 이유
이번 사건을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당초 이 씨가 월북을 목적으로 자진해서 북한으로 넘어간 것이 맞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국방부 등 발표에서 처음부터 ‘월북’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국방부에서는 이 씨가 신발을 벗어놓은 채 어업관리선에서 이탈했고,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소형 부유물을 탔고, 직접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는 점 등을 들어 자진 월북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사건이 알려진 이후 해양수산부 측은 이 씨에 대해 “결혼을 해서 자녀 2명을 두고 있으며 평소 근태 등 특이사항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경에서 조사를 하면 이 씨의 신변정보 등에 대해 최대한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직장 주변 동료들은 “월북 등 이상 징후는 감지하지 못했다. 모두 당황스러워하고 있다”면서도 이 씨가 “빚 때문에 파산 신청을 고려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동료직원 다수에게 돈을 빌렸는데, 그 액수가 한 직원에 수백만 원씩, 2600만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이 씨가 인터넷 도박에 빠져 사채빚도 1억 원가량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일부 동료들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이 씨를 상대로 법원에 급여 가압류 신청을 했고, 이 씨는 법원의 통보를 전달받아 심적 부담을 겪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 씨는 4개월 전 이혼을 한 뒤 목포에 있는 직원 숙소에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씨 가족은 월북 정부 발표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씨의 친형이라고 밝힌 이래진 씨는 9월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월북이라는 단어와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 왜 콕 집어 특정하는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실종되고 해상 표류시간이 30시간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헤엄쳐서 갔다는 것이냐”며 “사고 당시 (물때가) 11물이었으며 이 해역은 다른 지역보다 조류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동생은 완전하게 이혼되지 않고 숙려기간이다. 인터넷도박은 금시초문”이라며 “(동생이 자진 월북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한 “북측에서 발견된 그 이전을 군은 말해주지 않았다. 동생이 NLL을 날아가서 갔다는 거밖에 안 되지 않느냐”며 “구명조끼나 부유물을 잡고 움직였을 때 21일 6시 그 이후 약 20시간 정도 남측 해역을 떠다녔을 때 군은 왜 관측을 못했을까”라고 말했다. 경계 실패 책임 때문에 군이 이 씨의 월북을 부각시킨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정보당국에서는 이 씨의 월북 시도가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 통신신호 감청 첩보 등을 통한 A 씨와 북측의 대화내용, 북한 군의 대처상황 등을 상당부분 파악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는 것이다.
9월 25일 경기도 이천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제72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 유엔총회서 종전선언 지지 선언
이번 이 씨 피격 사건이 더 논란이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종전선언 지지 촉구와 시점이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3일 오전 1시 26분쯤(한국시각)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 되는 해다. 한반도에 남아있는 비극적 상황을 끝낼 때가 됐다”며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아가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우리 국민에 대한 무자비한 인권 유린 행위를 감행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동떨어진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유엔 연설은 9월 15일 녹화해, 18일에 유엔으로 발송했다. 연설을 전면 취소하지 않는 이상 수정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이번 사건과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연계하지 말아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하고 있다.
또한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총격 피살 첩보를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안보실장으로부터 처음 대면보고 받은 시점은 유엔총회 기조연설 7시간 후인 9월 23일 오전 8시 30분이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이 9월 22일 오후 6시 36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서면보고를 받았지만, 당시는 북측이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첩보 관련이었고 피살이나 시신훼손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총격 피살 보고를 받고 문 대통령은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 만약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며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