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월북 사건 때 전방부대 간부들 처벌 후 긴장 고조…김정은 이례적 ‘공식 사과’ 눈길
서해 NNL 인근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피격돼 사망한 공무원 사건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 시민들. 사진=최준필 기자
야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북한에 맹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9월 24일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 모여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 북한에 대해 강력한 규탄과 함께 명확한 경위를 밝혀내고 응당한 책임을 물으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군의 민간인 살해 인지 시점과 청와대에 보고돼 대통령이 인지한 시점, 자국민 총격사건을 보고받은 후 대통령이 취한 조치는 무엇인지 국민께 소상히 밝히라”며 “국민이 북한의 손에 잔인하게 죽어간 만행에 대해 청와대가 인지하고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발표하기 위해 민간인 총격 사건 공개를 늦춘 것이라면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을 방기한 것이어서 이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북자 출신 태영호 의원 역시 “북한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며 “우리 정부는 조속히 이번 사안과 과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사건을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해야 한다. 사건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자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북한군의 행위는 국제규범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동”이라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서주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9월 24일 NSC 결과 브리핑에서 “북한군은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한편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아울러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이러한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한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역시 “이번 사건은 남북 정상 간 합의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9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외교안보특위위원 긴급간담회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북한의 실종 공무원 사살 사건에 대해 성명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북한 측이 우리 공무원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워 훼손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극도의 긴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7월 월북한 개성 출신 탈북민이 코로나19 확진자로 의심된다며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전방 군부대 간부들을 처벌한 일이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뒤를 잇는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월 26일 직접 당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 해당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특급 경보를 발령했으며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관련 부대 지휘관과 군인에 대한 처벌을 언급하며 대응책을 토의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접경지역을 지키는 군부대의 긴장도가 높아졌고, 북한 군인들이 사건으로 벌어질 후폭풍을 인식하지 못한 채 코로나19 유입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무모한 행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우리 군 역시 사건이 북한 측 해역에서 발생해 진상 파악에 시간이 걸렸고, 북한이 그러한 만행을 저지를지 예상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나 군이 북한에 대한 사전 정보나 대응 파악에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사정을 아는 관계자는 “북한은 현재 코로나19 유입 확산을 막기 위해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과 맞닿는 접경지역에서도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북한군은 이번 사건도 지침에 따른 당연한 행동일 수 있다”며 “그렇다면 청와대나 군은 이러한 북한의 절차나 상황 정보를 몰랐는지 의문이다. 알았다면 예상을 하고 더 빠른 대응에 나섰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 실종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살해되고 시신이 훼손됐다는 정부 발표가 있은 지 하루 만인 9월 25일 우리 측에 공식 사과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 측에 보낸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에서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코로나19)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상경계감시 근무를 강화하며, 단속 과정의 사소한 실수나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일이 없도록 해상에서 단속 취급 전 과정을 수록하는 체계를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측은 북남 사이에 분명 재미없게 작용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 데 대해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며 “이런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북남 사이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더 긴장하고 각성하며 필요한 안전대책을 강구하는 것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