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술’ 집요하지만 원칙 분명
“17대 총선을 몇 주 앞두고 박 전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박 전 대표가 자신의 당 대표 선거운동을 위해 내게 ‘자리’를 먼저 제안하는 줄 알았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고맙다. 열심히 하시라. 꼭 당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당 대표로 선출된 뒤 전화가 와서 다시 ‘사무총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그 오퍼를 가볍게 생각했는데 박 전 대표로부터 당선되고 바로 전화가 오니 ‘그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거절을 했다. ‘내 지역구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알지 않느냐. 당 선거를 맡았다가 내가 먼저 떨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재차 내게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거절을 했고 박 전 대표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음 날 전화가 또 왔다. 박 전 대표는 ‘지역구 어려운 줄 아는데 사무총장 맡는 게 지역구 선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총장 밑에 국장들도 있으니까 전적으로 중앙당 선거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니 거절할 명분이 없어 할 수 없이 ‘해보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박 전 대표도 참 집요한 데가 있었다. 내가 순간적으로 둘러댈 말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꼼꼼하게 주변을 체크한 뒤 집요하게 자신의 인사를 관철시켰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대표님 진지함에 감동도 좀 먹었고 해서 받아들인다. 능력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날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비서에게 라디오를 켜 보라고 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내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득 총장이 유임됐다는 것이다. 무척 황당했다. 그런데 공동선대본부장에 이상득 김형오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나는 속으로 ‘(처음 대표에 선출됐을 때라) 박근혜도 (주변의 견제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했구나’ 생각했다. 할 수 없이 발대식에 참석했는데, 박 전 대표가 그 바쁜 와중에 나를 꼭 보자며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내가 (총장을) 좀 바꾸려고 했는데 이상득 총장이 며칠 좀 더 했으면 하는 눈치가 있고 주변에서도 잘하는데 뭘 바꾸려고 하느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못 바꿨는데, 이 총장이 정리할 게 있다고 하니까 며칠 후에는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발령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이 총장이 비례대표 인선 파동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에야 비로소 사무총장직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느꼈던 박 전 대표에 대한 생각은 원칙이 분명하고 트릭을 쓸 줄 모르는 정치인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