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피터 소버린자산운용 대표이사 얼굴과 무당 이미지 합성. | ||
삼성, SK, 금호, 대림 등 국내 대재벌들에 비상이 걸렸다. 외국계 펀드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간간이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 외국계 자본의 한국 우량기업에 대한 경영권 장악시도가 올 들어 본격화되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량 기업에 투자해 주가 상승에 따른 투자 차익만 염두에 뒀던 외국인들이 최근에는 배당이나 경영 투명화 등 투자가치 상승 요인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주총 등에서 ‘발언권’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외국인들이 사들이면 주가가 치솟아 시장에선 환영받지만 해당기업 오너들에겐 비상이 걸리는 것.
SK그룹은 올해 주총에서 소버린의 대공세에 맞서 천신만고 끝에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15%의 지분으로 경영진 교체를 시도한 소버린의 공격에 혼쭐이 났다. SK측은 주총이 끝나자마자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일했던 펀드전문가를 끌어들여 벌써부터 내년도 주총 준비에 들어간 상황이다.
SK(주) 경영권 분쟁에 눈여겨 볼 대목은 소버린쪽에 선 우호지분들의 면면이다. 헤르메스나 웰링턴 등 비교적 덜 알려진 펀드는 물론 템플턴자산운용 같은 유명 펀드들도 소버린쪽에 선 걸로 알려지자 파장은 커졌다.
템플턴은 그동안 국내에선 경영권에는 관심없이 장기 투자로 투자수익만 거둬가는 무색무취한 투자자로 알려졌기 때문. 대주주들에게 비교적 우호적이었고, 특별히 지분을 통한 발언권을 공개적으로 행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SK(주)의 경영권 싸움에서 템플턴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때문에 당장 삼성그룹에서 난리가 났다. 템플턴은 올 들어 삼성중공업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 보유지분이 10.03%까지 높아졌다. 이는 삼성전자 17.6%에 이어 2대주주의 위치다. 물론 삼성그룹은 관계사 지분을 포함해 25%대의 삼성중공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쪽에선 “템플턴의 주식 매집이 투자목적으로 평가된다”며 증시 일각의 적대적 M&A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삼성그룹 계열사의 외국인 지분이 많게는 50% 이상, 적게는 10% 안팎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라 삼성그룹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특히 헤르메스의 최근 움직임은 재벌들에겐 ‘준 경계경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K와 소버린의 경영권 싸움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영국의 연기금펀드 운영사 헤르메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는 3월 들어 삼성물산의 지분 5%를 사들이고 난 뒤 주목할 만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들은 3월 초 삼성물산의 지분을 사들인 뒤 삼성물산쪽에 전화를 걸어 ‘삼성전자 지분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3.4%) 매각, 삼성카드 증자 불참, 삼성물산 우선주 소각 매입 등을 제안했다. 이중 삼성전자 지분과 삼성카드 증자 문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관련된 핵심 고리를 건드리는 것이다.
▲ 외국인 지분이 많은 회사 건물들. | ||
때문에 시장에선 헤르메스의 문제제기가 외국계 투자자들이 삼성그룹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연 게 아니냐는 섣부른 추측까지 나오게 하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대표주라는 프리미엄에 시티뱅크라는 정치변수까지 고려하는 미국계 자본이 10.4%의 지분으로 최대주주이기에 외국계 펀드 한두 군데가 공격한다고 해서 전체 흐름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커지고 있는 외국계 펀드의 목소리가 삼성그룹 계열사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외국계 지분이 50%가 넘고, 삼성물산도 30%가 넘는다. 외국인의 동향에 따라 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핫이슈가 될 가능성이 큰 것.
게다가 삼성그룹은 그룹의 양대 축인 삼성생명의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 보유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 재편 구도가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삼성그룹은 최근 그룹의 핵심 간부였던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 우리금융 회장으로 가는 한편, 삼성생명이 우리은행에 지분 3% 확보를 추진하고 있는 등 은행업 진출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듣고 있다.
템플턴은 ‘투자 목적’으로 현대산업개발의 지분 19.59%를 보유해 현대산업개발의 오너인 정몽규 회장쪽 지분(17.02%)을 제친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템플턴은 3월 들어 국내 최대 식품업체인 CJ의 주식 22만9천7백90주(1.02%)를 추가로 사들여 지분을 9.23%로 확대하는 등 국내 알짜 대기업의 숨은 실력자로 부상하고 있다.
SK그룹 못지않게 외국계 자본의 주식 매집 대상이 된 곳으로 대림그룹과 아시아나그룹을 들 수 있다. 대림그룹의 간판 계열사인 대림산업은 올 초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육박하면서 외국인들이 이번 주총에서 실력행사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풍문에 시달렸다.
힘겨운 구조조정 작업을 일단락한 금호아시아나그룹도 3월 들어 외국인 지분이 크게 늘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간판 계열사인 금호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3월 들어 9.38%에서 13%대로 크게 늘었다. 또 금호산업의 1대주주(48%)인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외국인 지분도 3월 들어 2.37%에서 3.73%로 급증했다.
금호석유의 경우 지난해 7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시가총액은 1천7백억원 규모로 주당 가격은 5천원 정도. 금호그룹의 또다른 간판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금호산업(29.8%)과 금호석유화학(15.1%)이 1, 2대 주주로 이론상 1천억원만 있으면 금호석유화학을 인수하고, 이를 통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인 것.
금호그룹 지배구조의 핵인 금호석유화학에서 오너인 박성용 명예회장 일가 명의의 지분은 23%선이고, 자사주가 40%에 달한다. 의결권도 없는 자사주가 오너의 유일한 방어막이 되고 있는 셈.
외국인 주주들의 경우 이번 SK(주) 주총에서 보듯 대부분 투자수익 극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화를 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 국내 재벌지배구조의 핵심인 계열사 지분 보유는 무수익 자산 처분과 투자유가증권 처분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외국인 주주들의 이익과 정면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