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컨설기계와 컨소시엄 구성해 출사표…모회사인 산은이 매도자, 양쪽 관여와 이해충돌 가능성
두산그룹 구조조정 작업의 마지막 퍼즐로 통하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전 양상이 추석 연휴 전후로 급변했다. 현대중공업지주가 계열사 현대건설기계를 앞세워 출사표를 던졌다. 앞서 막대한 자금력으로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타이틀을 쥐고 있는 MBK파트너스와 지난해부터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다크호스로 꼽히는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의 2파전으로 좁혀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현대건설기계의 등판으로 인수전 판도가 흔들렸다.
현대건설기계는 그동안 유력한 인프라코어 인수후보로 꼽혀왔지만 정작 회사는 인수설을 줄곧 부인해왔다. 올해 초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인프라코어 매각을 현대중공업에 제안했지만 인수를 거절했고, 지난 8월 인수 추진설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 답변을 통해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존 입장을 백팔십도 바꾼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시장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곳이 있다. 현대건설기계와 함께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한 KDB인베다.
두산그룹 경영정상화의 마지막 퍼즐로 통하는 인프라코어 인수전에 현대중공업과 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깜짝 등판했다. 사진=연합뉴스
KDB인베는 지난해 7월 산업은행이 8500억 원을 출자해 출범한 100% 자회사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구조조정 기업을 국책은행이 오랫동안 떠안고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위해 설립했다. 산은은 정책금융과 미래 성장 분야 지원 역할을 맡고 KDB인베가 구조조정 기업 정상화와 가치제고, 매각까지 담당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설립 1년이 넘은 지금 KDB인베의 자산은 산은으로부터 넘겨받은 대우건설뿐이다. 모회사가 10년 넘게 가지고 있던 구조조정 기업을 1호 자산으로 이관 받은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셈이다. 대우건설 매각 작업마저 미뤄지고 있다. 산은이 이익을 내려면 보유 지분 50.75%의 가치가 3조 원을 넘어야 하지만, 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다. 현재 지분 가치는 1조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2호 자산 매입 작업은 초반 구상과 현재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올해 초만 해도 산은이 가진 한진중공업과 STX조선해양, 대한조선 등 조선사를 이관 받은 뒤 통합 조선사를 설립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채권단 일부의 반대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됐다. 이 계획의 핵심이었던 한진중공업의 건설과 조선 사업부를 분리해 매각하는 구상을 두고 해외 채권은행이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은 물론 사업부 분할 등은 주주 7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반대 의견이 나오면 추진이 어렵다. 결국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을 ‘통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9월 28일 매각 공고를 냈다. 오는 10월 26일 예비입찰을 마감할 예정이다.
설립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던 KDB인베에 대한 업계 시선은 냉랭해졌다. 1호 자산은 제자리걸음이고, 추가 자산도 확보하지 못해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각에선 올해 구조조정 최전선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산은의 구조조정본부와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투자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물론 산은과 KDB인베를 똑같은 눈높이로 보고 비교할 순 없다. 그러나 야심차게 출발했던 설립 초기와 지금의 분위기가 크게 다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KDB인베 안팎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진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이 ‘존재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인수에 성공하면 조선사는 구조조정과 밸류업 작업에서, 인프라코어는 자산 및 영역 확장 측면에서 탄탄히 보강해 줄 수 있다는 취지다. 투자은행업계 다른 관계자는 “두 개의 대규모 자산을 매입하고, 이후 가치를 끌어올려 매각까지 성공하면 시장 주도 구조조정이라는 KDB인베 설립 취지가 재평가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은 있다. 특히 인프라코어 인수전의 경우, 다른 인수후보자들과는 다른 잣대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현재 인프라코어를 계열사로 둔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을 총괄하는 곳이 산은이기 때문이다. KDB인베가 산은 자회사인데다, 설립 당시 산은의 일부 핵심 인력이 투입된 만큼 이번 거래에서 산은이 매도자와 인수자 양쪽 모두에 관여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실제 업계 일각에선 시장 전문가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KDB인베와 인수를 부인하던 현대중공업의 깜짝 등판은 인프라코어를 빠르게 매각해 정상화 작업을 해야 하는 산은과의 사전 교감으로 이뤄졌고, 이 때문에 다른 인수후보들이 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의 시선도 나온다.
이해관계가 부딪힌다는 지적도 있다. 채권단인 산은은 인프라코어가 비싼 가격에 팔리길 기대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KDB인베는 싸게 살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인프라코어는 두산그룹 경영정상화와 채권단의 안정적인 채권 회수와 연결돼 있는 매물이라 현대건설기계-KDB인베 컨소시엄이 인수에 성공할 경우 비싸게 사든 싸게 사든 논란이 불거질 여지가 있다.
산업은행과의 자회사인 KDB인베의 인프라코어 인수 참여를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결은 다르지만 한진중공업 인수전도 잡음이 예상된다. 투자은행업계에선 KDB인베가 인수에 성공할 경우 한진중공업이 보유한 부산 영도조선소 연면적 26만㎡ 규모의 부지를 활용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 부지가 상업지로 용도변경이 이뤄지면 개발이익을 낼 수 있고, KDB인베의 1호 자산인 대우건설이 개발사업에 뛰어드는 시나리오다. 영도 건너편에선 부산시의 북항 프로젝트까지 진행 중이라, 상업용도로 활용될 경우 가치가 1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인수자 결정 뒤에 용도변경이 이뤄지면 특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 한진중공업이 이 부지에서 배를 만들고 있어 상업용도로 변경할 경우 사실상 조선업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뜻인 만큼 고용 축소 등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까지 고려해야 한다.
산은과 KDB인베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최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인프라코어 인수전에 대해 “산은은 구조조정 목표만 정하고 나머지는 두산그룹에 자율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KDB인베에 대해서도 “회사가 독립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KDB인베 관계자 역시 “자체 시장 조사 등을 거쳐 인수 참여를 결정했다”며 “인프라코어는 두산그룹 정상화 작업과 완전히 별개로 보기 어려운 매물이다. 인수 자금도 공적자금이 아닌 펀딩을 통해 외부 자금으로 만들 방침이다. 시장 중심 구조조정이라는 회사 설립 취지에 걸맞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인수에 대해선 “최근 인수자문사를 선정하고 검토 중”이라고 보탰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