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적 동의 없었는데 ‘거부 안 했다’며 불법촬영 여전히 무죄…최종범, 네티즌 상대 손배 청구도
연인이었던 고(故) 구하라를 상대로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 및 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 씨에게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사진=이오이미지
15일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상해, 협박, 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최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고인의 친오빠인 구호인 씨가 이날 변호인과 함께 대법원 판결 선고를 직접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구하라와 연인 관계였던 최 씨는 2018년 9월 구하라와 다투는 과정에서 그의 팔과 다리에 타박상을 입히고 집안의 물건 등을 손괴한 혐의를 받았다. 또 이 과정에서 구하라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보내 협박하고, 언론에 제보하겠다며 접촉하려 한 사실도 알려졌다.
최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재판부는 “연인이던 피해자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폭행해 상해를 입혔고, 성관계 동영상을 제보해 연예인으로서 생명을 끊겠다고 협박했다”며 “여성 연예인인 피해자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면서도 협박이 우발적인 범행이었던 점, 문제의 동영상이 촬영된 상황을 고려하고 최 씨가 이를 실제로 유출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을 참작해 불법촬영에 무죄판결을 내렸다.
2심 역시 불법촬영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나머지 혐의에 대한 1심의 형량이 가볍다고 판단해 실형을 선고했다.
불법촬영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구하라가 명시적으로 동의를 했다는 증거는 없더라도 촬영을 적극 제지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것을 기반으로 했다. 성관계 동영상 외에도 최 씨가 구하라와 함께 여행을 갔다가 그의 뒷모습 사진을 몰래 6차례 촬영한 혐의가 공소사실에 적시됐으나 무죄가 내려진 것도 그 이유였다. 카메라 촬영음을 듣고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최 씨의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발견했지만 삭제하지 않았으므로 촬영 자체가 구하라의 의사에 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구하라는 끝내 지난해 11월 세상을 등졌다. 반면 최종범은 최근 자신과 관련한 기사에 비판 댓글을 단 네티즌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모욕죄 형사고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임준선 기자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은 성인지감수성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에 부딪쳤다. 촬영에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은 재판부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연인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 만으로 묵시적 동의를 인정한 점이 대중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당시 1심을 담당한 판사의 이름과 이전까지 맡아 온 사건 판결이 SNS 등지에서 빠르게 유포되며 비난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한편 이 사건은 구하라와 최 씨의 쌍방 폭행 사건으로 처음 알려졌으나, 이후 최 씨의 ‘리벤지 포르노’ 유포와 협박 정황이 드러나면서 대중들에게 연인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촬영 등 성폭력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최 씨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상해, 협박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고, 쌍방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은 구하라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구하라는 최 씨의 1심 선고 이후 3개월만인 지난해 11월 24일 향년 28세 나이로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 수감 중인 최 씨는 최근 자신과 관련한 기사에 댓글을 작성한 이들을 상대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200만~500만 원의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소송과 모욕죄 형사 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