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원장 모두 내준 김종인 ‘맹탕국감’ 책임론도…차기주자들 ‘집단지도체제’ 구상 고개
10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김종인 비대위원장. 사진=이종현 기자
#일솜씨가 이래서야…
국민의힘 일솜씨는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곧장 탄로 났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 “국감만큼은 야당의 시간이 될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국감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과정 특혜 의혹을 비롯해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광화문 집회금지 등 정부와 여당을 궁지로 내몰 소재가 무궁무진했지만 국민의힘은 호통만 남발했을 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증인 채택을 가로막는 집권여당의 방패를 뚫어내지 못하면서 ‘맹탕 국감’ 현장이 속출했다. 의원들의 개인기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예년 수준의 국감자료 외에는 새로운 것이 없었다. 의원 개인 역량도 부족했지만, 의원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 당 지도부 책임론도 제기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6월 원구성 협상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 주도로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포기, 야당 몫으로 예정됐던 7개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여당에 내줬다. 하지만 실제로 국회 운영을 해보니 전략적 실패였다. 주요 증인 채택은 물론, 상임위 진행 과정에서 여당 상임위원장들이 일방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면서 국민의힘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증인 채택 등에서 여야 간사끼리 의견 충돌이 있으면 여당 상임위원장들이 눈치 안보고 여당 편을 들어버린다”며 “뻔히 눈뜨고 당했다. 당내에서 ‘상임위원장 몇 자리를 가져왔어야 했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전했다.
당 지도부에 대한 의원들 불만은 ‘기울어진 국회’를 방치한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국감 기간 중 벌어진 내년 보궐선거 관련 불협화음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기획단 구성 과정에서 유일호 카드 철회 파동이 일어났고, 김선동 사무총장도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에 뒀다가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는 등 자중지란이 벌어졌다. 국감에 임하는 의원들의 사기가 꺾인 것은 물론, 시선까지 분산됐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의 하소연이다.
“여당이 증인 채택을 봉쇄하니까 따로 증인을 불러 유튜브 중계를 통해 독자 국감도 해봤지만 주목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초선 의원이 많은 상황에서 첫 국감이 열렸고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싹쓸이하고 있는 판에 구조적으로 공룡 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어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의원들과 보좌진이 정말 노력을 많이 했지만 결과는 맹탕 국감을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싸움 솜씨도 낙제?
2018년 5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총회. 당시 김성태 원내대표는 “더 이상 민주당의 몽니와 뭉개기를 방치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정 70년사에서 (이처럼)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문재인 정권의 출장소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헌정 유린 상태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선언한 뒤, 국회 본관 앞에서 조건 없는 드루킹 특검 관철을 놓고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곤혹스러워했다.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인 김경수 당시 의원이 연루된 특검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의 단식 앞에 민주당은 결국 손을 들었고, 국회는 그해 5월 21일 드루킹 사건 특검 법안을 의결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훗날 여러 인터뷰에서 “내 업적 중 최고가 드루킹 특검 관철”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2년 5개월여가 지나 제1야당은 또다시 특검 카드를 꺼내들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수사 과정을 두고 대검찰청(윤석열 검찰총장)과 법무부(추미애 장관)이 또 다시 맞붙으면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오리무중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10월 19일 정부와 여당을 향해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대해 특검 도입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라임·옵티머스 특검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만큼은 아니더라도,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올 수 있는 전환점은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과연 특검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더 많다. 현재 당 지도부의 실력이나 면면을 볼 때 강단 있는 모습으로 여당의 특검 거부 입장을 뒤집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10월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의힘이 라임·옵티머스 의혹 관련 특별검사제를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특검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야당은 2중대 정당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드루킹 특검 때와는 다른 이 좋은 시기에 특검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야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10월 20일 김종인 위원장이 참석한 당 상임고문단과 회의 자리에서 “‘야당은 어디에 있느냐’는 제목의 신문 사설을 봤다. 야당이 야당 역할을 못 한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전반적인 생각이다. 야당은 여당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어야 하고 적극적, 공격적, 비판적이어야 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싸움 실력을 보면 도저히 야당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로 읽힌다.
10월 22일 국회 의안과에 ‘라임·옵티머스 펀드 금융사기 피해 및 권력형 비리 게이트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고 있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내일이 안 보이니 판갈이?
온갖 악재에도 민주당 지지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히려 약세를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향후 정국의 변곡점이 될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승리할 만한 후보조차 내세우기 힘든 상황에 2022년 정권 탈환은 꿈도 꾸기 어려운 ‘미래 없는’ 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다보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당 대표실에까지 들릴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5선의 조경태 의원은 10월 20일 SNS를 통해 “현재의 비대위로는 더 이상 대안세력, 대안정당을 기대할 수 없다. 비대위를 여기서 끝내자. 전당대회를 통해 대안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김종인 위원장을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4선 김기현 의원도 10월 21일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장·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김종인 위원장을 앞에 앉혀놓은 채 김 위원장이 “당에 후보가 제대로 없다”고 말한 것을 겨눈 듯 “우리 내부의 인재를 최대한 다듬어 부각시키고 중도 영역으로 우리의 외연을 넓혀 역량을 갖춘 인물을 적극 영입하는 등 승수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곱셈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전직 의원은 “김 위원장 체제에 대해 당내에서 조금씩은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김 위원장 외에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큰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많이 다르게 봐야 한다. 정부·여당의 하는 행태를 봤을 때 형편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국민의힘 지지율을 수긍할 수 있나. 우리 당원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지율이 안 나오면 김종인 아니라 도사님이 오더라도 현 체제를 버티기 힘들다.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한번 쳐보자는 목소리가 분출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당 내부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는 ‘김종인 단일체제’가 아닌 ‘집단지도체제’를 해보자는 구상이 고개를 들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0월 22일 김무성 전 의원이 주도하는 마포포럼 강연에서 자신을 비롯해 원희룡 제주지사,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무소속 홍준표 의원이 참여하는 원탁회의체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이들 5명의 주자가 가칭 ‘국가정상화 비상연대’를 만들어 정례 회동을 하고, 각자의 정책 참모들이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국가적 현안에 일치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나중에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지금은 당을 일으키기 위해 일단 힘을 합쳐야 한다는 ‘선 연대, 후 경쟁’이다.
오 전 시장은 불통의 리더십이 당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으며 ‘판갈이’를 제시했다. 김종인 위원장 개인기에 의존하는 상명하달식 혁신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