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만 10조 추정, 연부연납 활용할 듯…생명 지분 20% 처리 과정 물산 ‘강제 지주사행’ 가능성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삼성생명을 비롯해 이 회장이 보유 중이던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 처리 방향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에 대대적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 6월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 하는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10조 상속세 ‘부담’…지배구조 유지 방안은?
고 이건희 회장은 약 18조 원 규모의 삼성그룹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비롯, 삼성전자(4.18%)와 삼성물산(2.86%), 삼성전자 우선주(0.08%), 삼성SDS(0.01%) 등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 보유 주식을 모두 상속받으려면 이 부회장 등 삼성 오너 일가는 약 10조 원 내외의 상속세를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상속 시 할증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상속세법령에 따르면 증여액이 30억 원을 넘으면 최고세율 50%가 적용되고, 고인이 최대주주 또는 그 특수관계인이라면 주식 평가액에 20% 할증이 붙는다.
이 회장의 법정상속인은 배우자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다. 법정상속분은 배우자가 4.5분의 1.5, 자녀가 4.5분의 1씩이다. 하지만 별도의 유언장이 있다면 이에 따라 상속된다.
상속세가 막대한 만큼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먼저 전체 상속세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납부하고, 그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5년간 나눠 분할납부하는 방식이다. 앞서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고 구본무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에 대한 상속세 9215억 원을 연부연납 방식으로 내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 오너 일가는 자산 대부분이 주식으로 묶여있는 만큼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는 일부 계열사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9월 1일 삼성전자의 배당정책 강화를 전망하며 “삼성전자의 지속적 주가 상승에 따라 상속세 부담이 증가했으며 이제는 어떻게든 상속세를 당장 마련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며 “기본적으로 보유 지분과 상속 지분을 처분해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은 최대 4조 1000억 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특히 재계의 귀추가 주목되는 지점은 이건희 회장이 보유 중이던 삼성생명 지분 처리 방향이다.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율은 0.06%에 불과하다. 지난 상반기 기준 삼성생명의 주요주주 및 특수관계인 구성을 살펴보면 최대주주는 이 회장(20.76%), 2대 주주는 삼성물산(19.34%)이고, 이 밖에 이 부회장(0.06%)과 삼성문화재단(4.68%), 삼성생명공익재단(2.18%), 자기주식(10.21%) 등으로 구성됐다.
삼성생명 지분율이 미미한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 보유 지분을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방법은 있다.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이 이 회장 지분 일부를 인수해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는 것. 이 경우 삼성물산이 이 부회장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활용됐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유지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삼성물산 ‘강제 지주사행’ 가능할까
다만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보험업법개정안(삼성생명법)은 큰 변수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실현될 경우 삼성생명은 현재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8.51% 가운데 3%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5년 이내로 처분해야 한다.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 지배구조를 유지할지라도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끊기는 셈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삼성생명(8.51%)이고, 2대 주주는 지분 5.01%를 보유한 삼성물산이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각각 삼성전자 지분 4.18%, 0.7%를 보유 중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삼성물산이 현재 보유 중인 23조 원 규모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43.44%)을 팔아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직스 지분을 사들이고,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실탄으로 삼성생명으로부터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3자간 거래로 대대적인 지분 정리가 가능한 것. 다만 3사가 이처럼 지분 매입‧매각으로 교통정리를 하려면 법인세 등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야 할 전망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3자간 거래가 마무리되더라도 삼성물산에는 또 다른 과제가 남는다. 삼성전자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삼성물산의 지주사 전환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최대주주가 될 경우 삼성전자 지분을 자회사 장부가액에 포함해야 하므로 삼성물산의 지주비율은 74.2%까지 상승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비율(자회사의 장부가액 합계를 총자산으로 나눈 수치)이 50%를 넘으면 지주회사로 분류된다.
지주회사가 될 경우 삼성물산은 추후 삼성전자 주식을 추가 확보해 지분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더욱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를 통해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의무 지분율을 현행 상장 20%(비상장 40%)에서 30%(비상장 50%)로 10%포인트씩 상향토록 했다.
다만 아직까지 삼성그룹은 승계와 지배구조 등에 대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 타계가) 갑작스러운 상황”이라며 “그룹이 아직 승계나 지배구조 등을 언급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