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26일 LG화학의 오창테크노파크 준공식에 참석한 허창수 LG건설 회장(왼쪽)과 구본무 LG그룹 회장(오른쪽). 가운데는 이희범 산자부 장관. | ||
실제로 업계에선 LG정유소가 상호 변경을 위해 ‘넘버 원 에너지 회사’를 뜻하는 이름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LG그룹 분할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상속이 아닌 그룹 분할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기도 하거니와 국내 재벌역사에서 성공적인 동업관계를 LG를 제외하곤 57년이나 끌어온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LG그룹에서도 이번 그룹 분할이 ‘유종의 미’라고 강조하고 있다. ‘57년간 3대에 걸친 화합 신뢰의 동업관계’였다는 것. 실제로 LG그룹의 이번 분할은 지난 3년 동안 진행돼 왔지만 적어도 오너간 잡음이 외부로 흘러나온 경우는 없었다.
재계에선 반세기가 넘는 동업 성공의 비결을 화합으로 꼽고 있다. LG의 사시도 한때 ‘인화(人和)’였을 정도로 두 가문은 화합을 중시했다. 따라서 그룹의 분리는 두 가문의 결합, 3대를 거치는 동안에 불어난 오너그룹의 참여확대를 거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구-허씨 가문 동업의 뿌리는 지난 1947년 LG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의 창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에 살던 구인회 LG 창업회장은 지난 1920년 같은 마을에 살던 천석꾼 집안인 허만식씨의 딸 을수씨와 결혼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서 허만식씨와 6촌간인 만석꾼 허만정씨가 구인회 회장의 사업 솜씨를 보고 구 회장에게 사업자금을 대고 그의 셋째 아들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의 경영수업을 의뢰하면서 구씨와 허씨의 동업은 시작됐다. 1947년의 일이다.
LG화학 창립 직후 구인회 회장은 허준구씨를 영업담당 이사로 배치했고, 이어 허준구 회장의 형제들인 고 허학구씨, 허신구씨 등이 LG 경영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구씨-허씨 공동경영의 시대가 열렸다.
이런 인척 관계로 복잡하게 얽힌 LG를 지탱하는 룰은 위계질서였다. 구인회 회장의 2세이자 구씨 가문의 대표격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씨 가문의 대표격인 고 허준구 명예회장은 서로 깍듯이 예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예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던 경우는 LG그룹의 3대 회장인 구본무 회장의 취임 때였다. 3세 그룹인 구본무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고 구자경 회장이 물러나자,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LG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이 모두 명예회장이라는 직함을 택하고 일제히 일선에서 물러나는 진풍경이 연출됐던 것.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이들 중 몇몇은 한창 경영활동을 펼 수 있는 나이였음에도 ‘세대교체’라는 양가의 합의를 중시해 일사불란하게 행동한 것이다.
또 두 가문 간에는 역할 분담이 있었다. 애초부터 사업자금을 대며 동업을 시작한 허씨 가문은 재무나 영업 등 내치에 주력했고, 구씨 가문은 사업확장 등 대외 업무에 주력했다는 게 LG그룹쪽의 설명이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이 회장으로 등극하고, 3대째 내려오면서 계열사 수가 크게 불어나면서 그룹 지배 구조가 문제가 되자 일부 오너 그룹들이 분리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됐다.
LG화재나 LG전선그룹, 아워홈 등이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LG그룹은 창업자 구인회 회장의 장손가문과 허준구 명예회장 직계가족그룹만 참여하는 형태로 정리됐다.
하지만 LG그룹을 지주회사화하는 과정에서 구씨와 허씨가 갈라설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LG가 지주회사를 추진하면서 주요 계열사이자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LG건설을 지주회사에 포함시키지 않고 허씨 계열로 놔두자 구씨-허씨의 동업관계 청산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끊이지 않았다.
LG가 여의도에 본사건물인 트윈타워를 세운 뒤 동관과 서관을 각각 구씨와 허씨 계열사들이 나눠서 입주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실제로 LG정유와 LG전자는 동관 서관으로 나눠서 입주해 있었다. 때문에 한쪽은 허씨 타워, 다른 쪽은 구씨 타워란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었다.
결국 LG정유는 강남에 LG강남타워가 서자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GS홀딩스도 본사를 LG강남타워에 두게 된다. 두 가문이 결국은 갈라설 것이란 세간의 예측이 틀리지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