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TF 정치 가동 ‘이재명 상승세’ 차단 나서…정세균 ‘총리와의 대화’ 등 대권 몸풀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 측의 물밑 기류가 심상치 않다. 이들은 여권 미래권력 쌍두마차다. 지지도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세력에선 친문(친문재인) 적자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각각 앞서지만 중량감 측면에선 ‘이낙연·정세균’이 단연 돋보인다. 다만 이들은 시소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는 대체재 관계다. 여권 미래권력 중 가장 먼저 승부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대선 경선 링에도 둘 중 한 명은 끝내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 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호남·국무총리·정치 1번지·행정 경험·적은 안티세력….’ 빼닮았다. 지역부터 정치 이력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엇비슷하다. 전남지사 출신인 이 대표와 전북의 맹주였던 정 총리는 1987년 체제 이후에도 계속된 ‘영남 대통령 독식’을 끊을 호남 대권 주자다. 실제 1987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2017년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까지, 총 7번의 대선에서 영남 주자는 6번이나 승리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우리 당에 대권에 근접한 호남 인사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오는 2022년 대선은 호남 필패론을 끊을 절호의 기회”라고 밝혔다.
순서만 뒤바뀌었을 뿐, 이들은 정부 출범 후 문 대통령 신임 아래 ‘국무총리와 정치 1번지’를 배턴터치 했다. 이 대표는 초대 국무총리에 오른 뒤 2020년 4·15 총선 직전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 지역으로 옮겼다. 20대 총선 때 종로에 터를 잡았던 정 총리는 문재인 정부 두 번째 국무총리로 구원 등판했다. 자신이 추천했던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끝내 낙마하자, 국회의장(2위)보다 국가 의전서열 순위가 낮은 국무총리(5위)직을 받아들였다. 앞서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뒤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직을 수용했던 ‘선당후사의 데자뷔’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거의 제왕’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이들은 정치 입문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본선 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이 대표는 16∼19대 총선과 2014년 6·4 지방선거, 21대 총선 등 총 6차례의 본선에서 이겼다. 정 총리는 15∼20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여의도 한 전략가는 “이들이 종로에서도 50% 이상 득표율로 이겼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4·15 총선 때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와 맞붙어 58.4%를 기록했다. 4년 전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대결했던 정 총리는 52.6%로 이겼다. 이들의 최다 득표율이 78%(이낙연 전남지사 선거 78.0%·정세균 17대 총선 78.1%)인 점도 흥미롭다.
이들은 최근 나란히 조기 대선 행보에 불씨를 댕겼다. 밑바탕에는 위기감에서 나온 조급증이 깔려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대표는 태스크포스(TF) 정치를 본격 가동하면서 존재감 키우기에 나섰다. 10월 21일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경제 부처 장관을 불러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현장을 더 챙겨라”고 질타했다. 이 대표 취임 후 신설한 TF만 두 자릿수다. 상설(22개)과 비상설(6개) 특별위원회까지 합치면 약 40여 개의 크고 작은 조직을 만들었다. 당 최고위원 8명은 물론, 친문 전해철 의원과 운동권 그룹 송영길 의원에게도 사회적 TF와 한반도 TF를 각각 맡겼다.
이 대표 측은 TF 구성에 대해 “책임 정치의 일환”이라고 평가했지만, 당 안팎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상승세에 놀란 이 대표가 당의 그립(장악력) 키우기에 나섰다고 분석한다. ‘이재명·김경수’ 등과는 달리 ‘코어 지지층’이 없는 약점을 보완하려는 포석의 일환으로 정책성과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얘기다. 이 대표가 민주당의 최종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당내 TF 등이 ‘이낙연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뉴딜위원회에는 원내 지도부와 정책위원회를 포함, 의원 100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2018년 5월 15일 이낙연 당시 총리가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에 참석,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과 악수를 하는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이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이해관계도 들어맞았다. 한 당직자는 “복수 TF를 구성한 것은 이 대표의 의지도 있지만, 일부 의원들의 요청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향후 NY(이낙연)계의 세력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 최고위원회가 소확행위원회 구성안까지 의결하자, “TF가 우후죽순 꾸려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도 “당이 사전 상의 없이 정책을 만지고 있다”고 새로운 군기반장 출현에 불만을 드러냈다. 당 일부 의원들은 “경제부처 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총리실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에 대한 견제구도 늘고 있다. 앞서 이 대표가 5·18 진상규명 특별법 및 역사왜곡 처벌법 당론 추진 과정에서 당권파 친문인 김태년 원내대표가 한때 제동을 걸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민주당은 10월 27일 의원총회를 열고 관련 법안의 당론 추진을 확정했지만, 당권파 친문계에서 ‘이낙연 관리’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이 대표는 김 원내대표와 상의 없이 10월 24일 광주 5·18민주묘지를 참배 때 관련 법의 당론 추진을 불쑥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한 보좌관은 “이 대표의 리스크 중 하나는 ‘만기친람형 리더십’”이라고 귀띔했다.
난데없이 서울시장 차출설에 휩싸였던 정 총리 측(관련기사 어쩌다 정세균 구원등판론까지…여권 서울시장 사수 초비상 내막)은 대선 전진기지인 ‘광화문포럼’을 조기에 가동했다. 광화문포럼에는 민주당 현역 의원 50명이 참여한다. 이는 민주당 전체 의원(174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회장은 SK(정세균)계 핵심인 4선의 김영주 의원이, 운영위원장은 3선의 이원욱 의원이, 간사는 재선의 안호영 의원이 각각 맡는다. 이들은 10월 26일 서울 여의도에서 스터디 모임을 시작으로, 광화문포럼의 돛을 올렸다.
총리실 측은 “정 총리 의중과 관계없는 자발적 모임”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본’ 정 총리가 차기 대선 준비의 활시위를 당겼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미래권력 플랜 일부도 공개했다. 정 총리의 한 핵심 관계자는 “내년 4월 재보선 전 총리직을 그만두고 대선 준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 총리는 내년 3월께 총리직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는 권한 범위 내에서 대권 몸풀기에 나섰다. 앞서 정 총리는 대선 싱크탱크 역할론으로 주목받은 ‘목요대화(20차)’에서 총리로는 이례적으로 대국민 사전공모 형식의 ‘총리와의 대화, 무엇이든 물어보~세균!’을 진행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나선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지원을 위한 외교전도 전개했다. 코로나19 방역에 나섰던 지난 추석 기간 땐 “이번 추석엔 총리를 파세요”라는 제목의 카드 메시지를 전했다. 정 총리와 가까운 한 인사는 “차기 대선을 앞두고 국민과 스킨십을 늘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측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정 총리 행보가 신경 쓰이는 것은 맞지만, 둘은 선의의 경쟁자”라고 전했다. SK계도 지난 4·15 총선 당시 이 대표 주도의 선거전 등을 예의주시했다. 일부 참모진 사이에선 ‘이낙연 선거’였던 총선 때 역대급 승리를 거둔 이후 민주당 수장까지 오르자, “이러다가 또 어대낙(어차피 대선 후보도 이낙연)으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감지됐다. 이 대표 측은 지난 4·15 총선 때 기존의 종로 조직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터트렸다. 이 와중에 터진 ‘정세균 서울시장 차출설’로 SK계는 부글부글 끓었다. 이에 정 총리는 “차라리 진안군수를 하겠다”고 일축했지만, 관련 보고를 접하고 격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SK계에선 한때 ‘정세균 서울시장 차출론’의 진원지로 야권이 아닌 여권 내부를 지목했다고 한다. 최종 발설자는 여전히 미궁이지만, 정 총리의 링 안 편입을 막으려는 당내 일부 인사가 의도적으로 흘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SK계뿐 아니라 친문계나 비문(비문재인)계에서도 링 밖에 있는 정 총리가 대선 운동을 본격화할 경우 만만치 않은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본다.
청와대 안팎에서도 “친문계가 SK를 지원한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친문계의 SK 지원 시나리오에 베팅하는 이들은 ‘SK의 NY 표 잠식’을 이유로 든다. 호남과 국무총리, 정치 1번지 입성, 합리적 리더십 등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정 총리가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올 경우 NY 표가 이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낙연·정세균의 시소게임’이 민주당 대선 경선의 첫 번째 승부처인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