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알파 줄래 말래…‘행복’은 아직 멀다
▲ 지난 1월 공사가 진행중인 세종지 부지 전경. |
세종시 원안 추진을 요구했던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한나라당내 친박계 등은 ‘원안+알파’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정부와 친이계는 수정안이 부결된 만큼 ‘플러스 알파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정안의 핵심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국책사업의 향배나 세종시 입주를 계획했던 기업과 대학의 입장 변화 여부도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수정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에게 약속한 이주대책이 예정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도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새로운 암초와 또 다른 논쟁으로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세종시 전쟁의 속살을 들여다 봤다.
국회의 수정안 부결로 실마리를 찾는 듯했던 세종시 문제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꼬여가고 있다. 2라운드로 접어든 세종시 논란의 중심에는 ‘플러스 알파’ 논쟁이 자리잡고 있다.
세종시 원안은 ‘9부2처2청’의 행정기관을 세종시로 이전시킨다는 내용을 핵심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원안에는 국고 8조 5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돼 있다. 목표 인구는 17만 명이고,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 8만 4000개가 새로 생겨날 것으로 추정했다. 결과적으로는 2030년까지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 일대 297㎢에 행정 기능을 중심으로 한 자족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10월 행정기관 이전 백지화를 전제로 마련한 세종시 수정 방침을 공개하면서 세종시 문제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특히 정부는 수정안에 따른 비난 여론을 불식시키고 수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기업에 각종 특혜 등 플러스 알파를 제공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과 삼성·한화·롯데·웅진·SSF 등 기업 5곳 입주, 고려대·KAIST 등 대학 3곳 유치 등을 추진했다. 정부는 세종시 입주 기업과 대학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행정도시 부지를 3.3㎡당 36만∼40만 원의 싼값에 공급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 때문에 세종시 입주 기업에 대한 특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했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1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가 세종시에 투자하는 3대 대기업에 헐값의 토지공급으로 총 1조 7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특혜를 부여했다”고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분석자료를 제시해 특혜설을 부추긴 바 있다.
정부와 친이계는 “수정안이 부결된 이상 플러스 알파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원안 추진론자들은 “플러스 알파는 원안에 이미 다 포함돼 있는 내용”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세종시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온 핵심 정책 중 하나가 폐기됐고, 이 과정에서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감정의 골이 깊게 패인 만큼 더 이상의 출혈은 막아야 한다는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6월 30일 “전당대회(7월 14일)가 끝날 때까지 당분간 ‘플러스 알파’ 문제 등을 비롯해서 이 이슈를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당 화합을 위해서 좋을 것 같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의원은 같은날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원안 갖고는 안된다고 해서 수정안이 나왔는데 이를 거부해 놓고 왜 플러스 알파를 얘기하냐”며 알파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민주당 등 원안론자들은 플러스 알파는 이미 원안에 다 들어가 있는 만큼 정부가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대표적인 친노인사로 6·2 지방선거 때 민주당 공천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된 안희정 도지사는 6월 3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9부2처2청이라는 정부기능과 교육과학연구단지에 대한 유치기능은 세종시 원안에 이미 잡혀있는 것”이라며 “플러스 알파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더 주겠다고 한 것이니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국민을 상대로 플러스 알파가 어떻네 협박하고 국민의 뜻 거스르는 짓 하지 마시라”며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30일 소속 의원 등과 함께 충남 연기군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방문해 “원안이 100%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플러스 알파”라고 강조했다.
수정안의 핵심 내용이었던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등 국책사업과 세종시 입주를 계획했던 기업과 대학의 향후 행보도 세종시 2라운드를 달구는 핵심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세종시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로 지정해 인근 대덕과 오송, 오창 등과 연계된 연구거점 330만㎡를 조성할 계획을 세웠었다. 벨트 조성에는 2011년부터 20년간 총 17조 원이 투자되고 이에 따른 고용 효과는 20년간 연평균 10만 6000명, 생산효과는 11조 8000억 원, 부가가치 효과는 5조 1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러한 계획은 정부가 원안 백지화를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수정안이 폐기된 현 상황에서는 실현 가능성에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원안대로 간다면 수정안의 핵심 내용인 과학비즈니스벨트법도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며 과학벨트 철회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이 “원안대로 가면 예산을 8조 5000억 원 이상 넣을 수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세종시 투자를 약속했던 삼성, 한화, 롯데 등 대기업들은 수정안 부결 이후 즉각 투자 계획 전면 재검토 작업에 돌입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그룹은 애초 2015년까지 삼성전자를 비롯한 5개 계열사가 세종시 일원에 신사업과 관련한 분야에 2조 500억원을 투자키로 했으나 수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세종시 투자를 사실상 ‘백지화’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1조 327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한화그룹도 적극적인 투자 의사를 밝힌 바 있었으나, 세종시를 대체할 부지 확보에 나서는 등 전면 재검토 작업에 돌입한 상황이다. 세종시 부지에 2020년까지 1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을 세웠던 롯데그룹도 확보된 부지나 기업 인센티브, 과학벨트 조성으로 인한 입지 시너지 효과가 사라진 만큼 투자계획을 재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세종시 입주를 타진했던 일부 대학들도 이전 계획을 백지화하거나 원점에서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 1월 수정안을 전제로 100만㎡ 부지에 6012억 원을 투입해 바이오와 녹색기술, 치의학전문대학원 등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정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으나 수정안이 부결되자 입주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수정안이 발표된 이후 기획단을 꾸려 연구시설 이전 계획을 검토해 왔던 서울대는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 포함된 수정안이 부결된 만큼 세종시 입주 계획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만㎡ 부지에 7700억 원을 투자해 대학원과 연구기능 위주의 대학을 운영할 예정이던 KAIST는 수정안이든 원안이든 입주계획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KAIST는 지난 2006년부터 녹색교통대학원과 생명과학대학원 등이 입주할 세종캠퍼스 조성계획을 구상해 온 만큼 입주 시기만 늦어질 뿐 입주 계획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수정안에 담긴 원주민들에 대한 이주대책 등이 차질없이 실행될지 여부도 뜨거운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수정안에는 1억 원 미만의 보상을 받은 세종시 주민들을 위해 아파트 500여 채를 추가로 공급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기존에 공급될 예정이던 500여 채를 포함해 1023세대에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실제로 정운찬 총리는 지난 2월 초 총리 공관에서 세종시 원주민 대표들을 만나 주민지원 대책을 논의하는 등 수정안을 전제로 한 적극적인 후속 지원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세종시가 수도권 과밀과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라면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는 것이 효과가 가장 크다”며 “국가의 백년대계와 고향의 발전을 위해 수정안에 힘을 실어달라”고 강조했다.
원주민들은 이날 정 총리에게 소액보상 주민에 대해 가구당 2억 원씩 보상해 줄 것과 이주자 택지 원형지 공급, 양도세 환불, 영농허용, 과수 및 조경수 재감정평가 보상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정부는 영세민용 행복아파트 1000세대와 경로복지관 200세대 건립은 수정안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지원하고 건립시기도 내년 말로 1년 단축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원주민들과의 약속을 차질없이 이행할지 여부 또한 2라운드로 접어든 세종시 정국을 달구는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