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부르자니 ‘아들’이 걸리네
▲ 지난 5월 열린 LG 스킬올림픽에서 구본무 회장이 우수혁신사례 영상을 보고 있다. |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남용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등과 함께 지난 6월 24~25일 이틀에 걸쳐 LG전자 컨센서스미팅(CM)을 가졌다. LG그룹의 컨센서스미팅은 매년 6월과 11월 두 번에 걸쳐 구 회장과 계열사 경영진이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 이번 컨센서스미팅은 LG전자 위기설이 파다하게 퍼진 시점에 열렸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LG전자는 지난 1분기에 역대 동기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유럽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TV와 가전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덕분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휴대폰 사업부문의 영업이익률이 크게 악화돼 우려를 낳았다. 결국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시장 대응이 늦어지면서 2분기 휴대폰 부문 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분석마저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1분기 매출 신장의 효자 노릇을 했던 TV 부문도 전망이 밝은 편이 아니다. 유럽 재정 위기에 따른 유로화 약세 탓에 유럽지역 수출대금을 유로화로 받는 LG전자의 수입이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LG전자 양대 핵심사업인 휴대폰과 TV 부문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 재계와 증권가에서 LG전자 위기설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LG전자 위기설의 원인을 유로화 약세 같은 외적 요인뿐만 아니라 ‘전략 부재’ 같은 내적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은 그동안 2등 업체가 1등 업체를 빠르게 뒤쫓는 이른바 ‘패스트 팔로우어’(Fast Follower) 전략을 취해왔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LG전자의 패스트 팔로우어 전략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해외는 물론 국내 스마트폰 시장 경쟁에서도 LG전자는 아이폰과 삼성전자 갤럭시S 등이 벌이는 경쟁구도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마케팅에 무게를 둔 LG전자 경영방식을 꼬집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07년 초 남용 부회장이 LG전자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이전 CEO(최고경영자)였던 김쌍수 전 부회장(현 한국전력공사 사장) 시절에 비해 마케팅에 대한 투자가 부쩍 늘었다. 상대적으로 연구·개발(R&D) 비중은 줄었다는 평이다. 재계 일각에선 “김쌍수 부회장 시절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뤄진 덕분에 남용 부회장 대에 와서도 LG전자가 계속 좋은 실적을 올렸는데 이제 한계에 부딪쳤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달라진 경영방식’이 LG전자 위기설을 부른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다 보니 전·현직 CEO 경력에 대한 비교도 곧잘 이뤄지곤 한다. 남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총수로 있던 시절 그룹 회장실에서 구 명예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대표적인 LG가의 ‘가신’이다. 반면 김쌍수 사장은 LG전자 공장장 출신으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 CEO였다.
▲ 왼쪽부터 남용 부회장,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광모 과장. |
그러나 LG그룹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남 부회장을 LG전자 대표이사로 재선임했다. 일각에선 구본준 부회장이 그룹 주력인 LG전자를 맡는 것이 구본무 회장 양아들 구광모 LG전자 과장의 후계 작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구 회장이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LG그룹은 아직 공식화하고 있지 않지만 재계에선 구 과장이 구인회-구자경-구본무로 이어진 경영권 장자승계구도를 4대째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33세에 불과한 데다 경영 경험이 일천한 구 과장이 ‘공식 황태자’가 됐을 때 삼촌인 구본준 부회장이 넘지 못할 벽이 돼서는 곤란할 것이란 고민이 LG 안팎에서 엿보인다.
LG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구본무 회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달리 정기인사철이 아닌 때 갑작스러운 문책성 인사를 하는 일이 흔치 않다”며 당분간 남 부회장 체제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현재 그룹 내에선 LG전자 위기설을 초래한 휴대폰 사업 강화를 위해 지난 7월 1일 새 이름으로 거듭난 LG유플러스(옛 통합LG텔레콤)와의 유기적 협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돼 있다고 한다.
남 부회장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LG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으며 LG텔레콤에 흡수된 LG파워콤과 LG데이콤의 이사도 역임했다. LG전자 LG화학 등을 거쳐 현재 LG상사에 있는 구 부회장에 비해 통신사업에 대한 이해가 밝은 남 부회장이 향후 더욱 힘을 얻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LG전자를 둘러싼 위기설이 당분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만큼 경영진 쇄신과 관련된 추측 역시 계속해서 나돌 전망이다. 일각에선 구본무 회장이 평소 각별한 신뢰를 보여 온 50대 초중반의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올해 61세인 남 부회장의 후임자 물망에 오르내린다는 이야기도 퍼져 있다.
LG전자는 조만간 전 세계적으로 10종 이상의 스마트폰을 출시해 스마트폰 경쟁구도에 불을 지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TV 부문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 유럽 시장에 대한 TV 판매량 중 LED TV 비중을 30%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이런 계획들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느냐에 따라 남 부회장 체제가 롱런할지, 아니면 오너 경영인 투입, 혹은 젊은 피로의 세대교체 카드 나올지 가려질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