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줄타기보다 친중 행보 강화할 듯…“바이든 강경책 내부 결속 꾀하는 데 이용할 것”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후보는 10월 22일 열린 TV 토론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세 차례나 ‘불량배(Thug)’로 비유했다. 바이든 후보는 불량배와 좋은 친구라고 자랑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를 저격했다. 바이든 후보가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관련기사 바이든보단 트럼프 응원? 북한 김정은 시점으로 본 미국 대선).
바이든 후보는 대통령 당선 시 전통적 우방관계를 중시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외교 방식 회귀를 천명한 바 있다. 북한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면서 비핵화를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바이든 후보는 ‘바텀업 방식’ 외교 협상을 바탕으로 북미 실무자간 실질적인 협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이 먼저 만나 교감을 나눈 뒤 실무진이 협의를 이어가는, ‘톱다운 방식’ 외교를 선호했다.
북한은 지난 6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이후 별 다른 대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군사적 도발이나 무력시위를 최소화한 모양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이 미국 대선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복지부동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되는 순간까지 최대한 도발을 자제하면서 추후 4년의 협상 전략을 새로 짜는 데 집중했다”면서 “미 대선이 치러지기 전까지 북한은 홍수 피해, 코로나19 방역 등 내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했다. 그는 “미 대선 결과가 나온 뒤 북한은 ‘가을잠’을 마치고 다시 한번 적극적인 액션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사진=공동사진취재단
미 대선이 치러지기 전 현지 여론조사는 바이든이 트럼프에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북한 소식통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경우 북한 입장에선 다시 한번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 수 있다”면서 “현지 여론조사가 바이든 당선을 예측하자 북한은 중국과 친분을 강조하는 행보에 나섰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에 실패하면, 북한이 강조해오던 통미봉남 작전이 퇴색될 수 있다”면서 “바이든의 ‘전통적 동맹 우선 정책’이 현실화 된다면 북한 입장에서도 전통적 우방인 중국을 멀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최근 중국의 ‘항미원조’ 70주년을 맞아 중국 측에 의사를 전달했다. 김정은은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열사능원을 참배했다. 트럼프 행정부 초·중반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북한의 적극적인 대중 친밀 행보다.
10월 22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중공군 묘소를 찾아 “중국인민지원군 장병들의 붉은 피는 우리 땅 곳곳에 스며 있다”고 했다. 중국은 10월 25일을 ‘항미원조 기념일’이라 칭한다. 중국의 항미원조 기념일에 김정은이 중공군 묘소를 참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복수 북한 소식통들은 김정은이 북한과 중국이 밀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 대선 후보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든 후보 당선은 북한의 오락가락 외교 노선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점치는 이들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집권 내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했던 북한이 완전히 중국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다.
중국 거주 북한 소식통은 “바이든이 정권을 잡은 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이 재현된다면, 북한이 굳이 중국의 그늘을 벗어날 필요가 없다”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벗어나 살 방법’이란 당근을 제시하며 북한을 꼬드겼지만, 바이든이 정권을 잡으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의 좋은 친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 소식통은 “다소 즉흥적인 성격의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선 남·북·미·중 4개국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북한이 어부지리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보였다”면서 “바이든이 백악관에 입성하면 한반도 정세는 다시 한미동맹과 북중 우호관계 2 대 2 대립 형국으로 개편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재선을 전제로 준비하던 북한의 대미 친화 제스쳐도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은 미국이 대선을 앞두고 있던 10월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을 미국 특사로 파견하는 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북한은 김여정 특사 파견 카드를 꺼내진 않았다. 이후 북한 지도부는 트럼프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복수 북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권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북한이 김여정을 특사로 파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관련기사 미국 대선 끝나야 가속? 북한 ‘2인자 김여정’ 광폭행보 급제동의 비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11월 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바이든의 ‘김정은 불량배’ 발언과 관련해) 북한이 최고존엄(김정은)에 대해 모독하면 즉시 반박 성명을 내거나 외교적인 항의를 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침묵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 “바이든이 당선되면 바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부정적 반응을 삼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북한이 핵개발에 상당히 진척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와 좋은 관계 정립에 실패한다면 오히려 강대강 전략으로 나올 여지도 있다”면서 “이 경우 북한은 치밀한 도발 프로세스에 따라 내부 반미 정서를 결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통은 “반미 정서를 결집시키는 것은 김정은이 자신의 체제를 공고화하는 것엔 득이 되는 요소”라면서 “오히려 북한 지도부가 바이든의 강경책을 내부 결속을 꾀하는 데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사진=연합뉴스
북한 대미 외교라인은 상당히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대미 외교라인 핵심은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다(관련기사 사수-부사수 ‘빅 마우스’ 분업…북한 외교 카운터파트 재정립 안팎).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선희는 미국 대선이 펼쳐지기 전부터 여러 시나리오를 다각도로 분석해 차기 미국 정권과 협상할 전략을 세우는 데 역량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파악한 내용도 비슷하다. 국정원은 11월 3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여정-최선희 대미 (외교)라인이 유지되고 있다”면서 “최선희가 미국 대선 예상 결과를 분석하고 대선 이후 대미 정책 수립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