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사건 재심④] ‘안숨었는데 못잡아’ 부실수사 지적…실종 초등생 유가족 인터뷰 보며 고개 떨구기도
문 : 진술인의 1회 진술조서인데 확인할 건가요. 답 : 아니오. 사실이 아니라서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 : 1회 진술을 번복하는 이유가 있나요. 답 : 사실 난 글재주가 없어서 정리가 안 되는데. 표현하는 방법에서 정리가 안 되고 있었는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제가 마음을 정리하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들이 여기 계신 분들이 다 같이 팀이니까. 다 같이 얘기하면서 마음을 정리하게 된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에 얘기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문 : 그렇다면 어제 면담하면서 얘기한 살인 사건이 모두 몇 건인가요. 답 : 총 14건이었습니다. 문 : 기억이 뚜렷한 사건부터 진술해보세요. 답 : 1회부터 가죠. 문 : 1회부터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답 : 첫 번째 사건부터 얘기하죠. 문 : 얘기해보세요. |
위 문답은 2019년 9월 말,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가 이춘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두 번째 진술조서를 그대로 옮겼다. 첫 번째 경찰 조사에서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모른다”고 했던 이춘재는 이후 이틀 동안 진행된 프로파일러와의 면담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하겠다고 했다. 1986년 1월 발생한 최초 살인사건 자백으로 시작하는 2차 진술서에는 지난 30여 년 동안 묻혀있던 그날 밤의 잔혹한 비밀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춘재가 2019년 9월 자백을 결심하고 프로파일러들에게 건넨 메모. 사진=이춘재 8차 사건 수사기록
일요신문은 경기남부청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와 수원지방검찰청 전담조사팀이 2019년 재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이춘재의 자백 일부를 단독 공개한다. 기록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그의 자백은 검찰과 경찰의 공식 수사 결과 발표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조각조각 파편화돼 공개돼 왔다.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인 8번째 연쇄살인 사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는 한편, 지난 11월 2일 재심 법정 증인 출석 이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규정되고 있는 이춘재의 내면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공개하는 자백 기록은 모두 7건이다. 경기남부청이 2019년 9월 26일과 30일, 10월 1일 각각 작성한 진술조서 제2, 4, 5회와 이춘재가 용의자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이후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제2, 6, 7회 일부(2019년 10월 15, 21, 22일), 그리고 같은 해 12월 13일 수원지검 전담조사팀이 작성한 진술조서다.
경찰과 검찰 기록은 모두 8차 사건 자백이 중심이다. 앞서 경찰은 재심 재판과 관련 있는 내용을 전부 검찰에 송치했고, 다른 사건 기록들은 재심과 관련 없다는 이유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검찰 진술조서에는 이춘재가 경찰에서 뒤늦은 고백을 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이 담겨있다.
이춘재는 최초 경찰 자백과 약 3개월 뒤에 이뤄진 검찰 자백에 이르기까지 번복 없이 골격 사실들을 모두 일관성 있게 유지했다. 검찰과 경찰은 자백의 오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춘재에게 과거 수사 기록을 단 한 차례도 보여주지 않았다. 현장 묘사나 설명 등도 마찬가지다. 이춘재가 기억하는 내용을 먼저 이야기하고, 검·경 관계자들이 그 말의 꼬리를 물고 세부 질문을 하면 답변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자백이 완성됐다.
이춘재 자백이 담긴 검·경 진술조서, 피의자신문조서. 사진=이춘재 8차 사건 수사기록.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잔혹한 진실, 8차사건 재구성
이춘재가 연쇄살인 8차사건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 이유는 재판부가 진범의 증언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자백 기록을 근거로 1988년 9월 16일 오전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한 가정집에서 13세 박 아무개 양이 숨진 채로 발견되기 전날 밤, 이춘재의 행적을 그의 시선으로 재구성했다. 문답형식을 풀어 쓰는 대신 그가 자백 과정에서 썼던 단어와 문장들을 그대로 옮겼다. 성범죄 사건이고,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만큼 구체적인 범행 과정 묘사는 모두 제외했다. 8차사건의 자백은 “유일하게 술을 마시고 한 사건입니다”로 시작된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 밤이었다. 9시 정도. 초저녁은 아니었다. 볼일이 있어 수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버스에 내리고 보니 정류장 근처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났다. 근처 구멍가게 앞 파라솔에 앉아 간단히 술을 마셨다. 취하진 않았다. 20~30분 사이 간단히 소주나 맥주 한 병 정도, 기분 좋을 만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걸어서 10분 거리다. 집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진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더 걸었다. 길을 따라 옆집을 지나쳤고 다시 그 옆집 앞에 섰다. 지금은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 잘 아는 집이다. 고등학교 때 이사 간 후배와 선배가 살고 있어 자주 놀러 갔었다. 대문에 달린 작은 문이 열려있었다. 들어갔다. 화장실과 집 건물 사이 공간이 있었는데 그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그쪽으로 가는 틈이 있었다. 앞쪽은 마당이 넓고 좌측 끝 방에 불이 켜져 있어 자연스럽게 반대로 갔다. 벽돌로 급조한 방식으로, 방으로 쓰려고 만든 것과 같은 집과 연결된 공간이 있었다. 이춘재가 2019년 자백 과정에서 그린 범행 현장(왼쪽)과 사건 발생 이후 당시 경찰이 그린 현장 약도. 사진=이춘재 8차 사건 기록.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옛날 전통 창살로 된 창호지 바른 문이 보였다. 창호지 문구멍으로 방을 들여다봤다. 구멍이 뚫려 있었는지 내가 뚫었는지는 모른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들여다봤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 즈음 방 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 윤곽이 보였다. 어른인지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머리가 길었다. 여자구나. 문을 당겼다. 잠겨있었다. 고리가 걸려있는 부분의 창호지를 찢고 손을 넣어 고리를 풀었다. 구두를 벗었다. 방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벗은 것 같다. 양말도 벗었다. 한 쪽씩 벙어리장갑처럼 손에 끼웠다.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보니 바로 앞에 발판 같은 게 있었다. 달이나 별빛을 받아 광채가 났다. 가구를 갖다 놨나. 제사 지내는 상을 보면 광이 나고 하는데, 그런 종류이지 않나 싶다. 발판과 방바닥에 어느 정도 높이 차이가 있어서 한 번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한 쪽 다리를 올리고 나머지 다리를 그 발판에 다시 올린 후 다 올라서면 방바닥에 다시 한 다리씩 내렸다. 발판을 밟으니 발자국이 서리 비슷하게 하얗게 찍혔다가 없어졌다. 그동안 했던 다른 범행과 상황이 다르다. 모두 외부여서 사람들이 오가는 걸 파악할 수 있었고 여유도 있었다. 여긴 실내다. 바로 앞 방엔 사람들이 있다. 초긴장 상태였다. 이불을 덮은 채로 목을 눌렀다. 점점 더 힘을 줬다. 벗겨 놓은 피해자의 속옷으로 뒤처리를 했다. 바닥에 새 속옷이 있는 걸 보고 다시 입혔고, 이불도 다시 덮었다.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갔다. 대문을 나와 집 반대방향 산으로 향하는 소로길로 올라갔다. 풀이 우거진 곳에 속옷을 던졌다. 산을 삥 돌아 집으로 돌아갔다. |
8차사건에는 자백이 두 개다. 하나는 30년 전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윤성여 씨의 자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춘재의 자백이다. 두 사람의 자백과 과거 수사기록, 현장검증 사진 등과 비교해 보면 윤 씨의 자백에선 곳곳에서 모순이 발견되지만 이춘재의 자백은 모두 당시 현장 상황과 일치한다.
고등학생 시절 선후배 가족이 떠나고 피해자 가족이 새로 이사온 이후 바뀐 집 구조를 ‘벽돌로 급조한 방으로 쓰려고 만든 것과 같은 공간’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실제 현장 검증 사진에는 피해자 방 근처에 새로 지어진 듯 보이는 시멘트 구조물이 있다. 윤 씨는 이 내용을 설명하지 못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피해자의 속옷에 대한 설명이다. 이춘재는 피해자의 속옷을 완전히 벗기고 범행한 뒤 다른 새 속옷을 입혔다고 했다. 역시 사건 발생 이후 촬영된 사진을 보면 숨진 피해자는 속옷을 거꾸로 입고 있었다. 반면 윤 씨의 진술조서와 피의자신문조서에는 “피해자의 속옷과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범행한 뒤 다시 입혔다”라고 기재돼 있다. 경기남부청 수사본부는 피해자 속옷과 관련된 이춘재의 진술을 국과수에 감정의뢰했고 감정 결과 “피해자가 거꾸로 속옷을 입었다는 확률보다는 피의자(이춘재)가 현재 진술하고 있는 부분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양말을 손에 끼운 채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역시 피해자 목에서 발견된 흔적과 일치한다. 11월 2일 증인으로 8차사건 재심 법정에 출석한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피해자 목에서 쓸려서 생긴 상처가 있고 이를 맨손으로 눌러 만들기 어렵다”고 증언했다. 실제 8차사건 피해자 부검 감정서에는 목 오른쪽과 왼쪽, 쇄골부위 등에서 살갗이 벗겨지는 표피박탈이 보인다고 기재돼 있다. 윤성여 씨의 과거 자백에는 양말은 물론 장갑이나 헝겊 등을 손에 끼웠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이춘재가 지난해 자백 과정에서 그린 사건 현장 모습. 사진=이춘재 8차 사건 기록.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자백 경위와 과정 전문 공개
이춘재는 2019년 자신의 모든 범행을 자백했고, 최근 법정 증언을 통해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 윤성여 씨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DNA 감정을 통해 자신이 범인으로 특정되기까지 30여 년 동안 고백한 적이 없었던 만큼, 자백 배경과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이춘재는 검찰 조사에서 자백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당시 문답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답 : 2019년 9월 18일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수사접견이 왔다고 하여 제가 교도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는데, 경기도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경기도에서 수사접견 올 것은 화성 사건밖에 없기 때문에 ‘화성 사건 때문에 왔구나’라고 직감했습니다. 수사 접견을 가보니 경찰관 4명과 여자 3명, 총 7명이 왔고 경찰관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왔다고 하며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3건의 범행현장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저의 DNA가 일치된다며 ‘화성연쇄살인사건’ 10건 중 1건은 모방범죄로 해결됐는데 DNA가 나온 3건을 포함해 나머지 9건을 제가 한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문 : 이후 어떻게 되었나요. 답 : 저는 처음에는 모르쇠로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경찰관이 수사를 받을 건지 물어봤는데 수사를 안 받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여자분들과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는 ‘형사들이랑 여자들이 왜 왔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여자들이 ‘프로파일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첫날은 ‘프로파일러’도 안 만나겠다고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경찰들이 가고 나서 DNA가 나오지 않은 나머지 살인사건과 제가 했던 강간 건은 밝혀질 수 없는 부분이므로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되나 고민했습니다. DNA 가져온 것만 이번에 자백하면 경찰들이 나머지 사건도 저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사건도 추후 DNA를 검출해 가지고 오게 될 텐데 우선은 DNA 나온 것만 인정하고 나중에 다른 사건에서 DNA가 나오면 그때 인정해서 형사들을 골탕 먹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문 : 모방범죄로 마무리되었다는 건은 어떤 생각을 했나요. 답 : 담당형사, 피해자, 검사도 걸려 있는 사건이고 제가 했다고 말하더라도 말 한마디로 30년 전 사건이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미제 사건 같은 경우 증거물을 남겨 뒀을 텐데 해결된 사건은 증거물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저의 기억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기억도 한계가 있으므로 저의 말만으로 안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오픈을 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바뀌지 않으면 아닌 걸 제가 맞다고 한 거밖에 안 된다는 부분도 생각했고, 전부 이야기하지 않으면 결국 모방범죄 1건은 제 입장에서는 해결이 안 되고 평생 끌고 가야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문 : 그 다음날은 어떻게 되었나요. 답 : DNA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99.9% 확실한 건데 제가 DNA 나온 사건에 대해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제 범행은 맞기 때문에 당시 생각은 제가 했던 14건 범행 중 어디까지 진술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습니다. 다음날 경찰관이 왔고 처음에는 어떤 범행에서 DNA가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어떻게 조사가 진행되는지도 궁금해서 일단은 조사를 받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경찰관이 국과수에서 온 자료를 보여주며 3건의 범행 현장에서 저의 DNA가 나왔다고 했고 3건이 제가 한 게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이때도 처음에는 제가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조사가 2시간 정도에 끝나고 형사들의 조사는 마무리됐는데, 조사가 끝나고 형사들이 ‘여자분들 만나서 얘기 좀 해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여자들하고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냐고 했는데 계속 권유하여 여자들하고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이후 형사들은 나가고 여자 3명과 대화했는데 형사들하고 다르게 사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고 분위기 자체가 달랐고 좋은 이야기도 해주어 저의 마음이 조금 풀리고 안정됐습니다. 이후 1시간 정도 대화하다가 그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문 : 그 다음날은 어떻게 되었나요. 답 : 그 다음날 점심 이후 여자 3명이 먼저 들어오고 형사들이 들어가도 되냐고 해서 형사들은 제가 못 들어오게 하고 여자 3명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프로파일러들과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예전 저의 어렸을 때부터 성장과정, 고등학교를 떨어진 얘기, 저의 막내가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었던 이야기도 하면서 오후 4시간 동안 내내 저의 성장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저에 대해 위로도 해주어 저의 마음이 돌아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DNA 나온 부분만 인정한다고 해서 제가 괜찮은 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다 털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이거나 저거나 죽일 놈 되는 건 똑같다’고 생각해 제가 범한 범행 전부를 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전부 다 말하기로 결심하고 여자 3명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서 ‘살인 12+2, 강간 19, 미수 15’라고 쓰고 프로파일러에게 전달했습니다. 문 : 이후 어떻게 되었나요. 답 : 제가 메모한 내용을 여자들에게 건네자 처음엔 여자들이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9건에 대해서만 인정해야 하는데 12건에 2건까지 더해서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여자들에게 모방범죄로 인정된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도 ‘내가 한 거다’라고 하면서 “모방범죄라고 돼 있는데 아닌 걸로 밝혀지면 경찰들이 곤란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고 제가 “곤란하면 안 할 수도 있다”고 얘기했는데, 저 앞에 있던 여자 공은경 팀장님이 “그런 것은 상관없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이춘재 씨가 한 게 맞다면 그것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메모해 준 사건의 대략적인 위치 등을 설명해주고 위 위치에서 일어난 경찰에서 파악하고 있는 기록을 가지고 오면 제 기억과 기록을 맞춰보자고 하여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문 : 이후 어떻게 되었나요. 답 : 그 다음주에 형사들이 살인 14건을 가지고 왔는데 제가 기억하는 장소와 상황들을 얘기하면 형사들이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사건들과 검토하며 사건을 하나씩 체크했습니다. 문 : 당시 형사들이 가지고 있던 사건 기록을 진술인에게 보여줬나요. 답 : 절대 안 보여줬습니다. 제가 하도 기억이 안 나고 자꾸 물어봐서 ‘물어보지만 말고 보여달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절대 안 보여줬습니다. 형사들이 보여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
#드러난 비밀, 남겨진 숙제
이춘재는 자신의 자백을 그대로 이번 재심 법정에서 증언했다. 일부 증언은 2019년 자백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말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도, 마지막 퍼즐인 ‘왜’에 대해서 스스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도 같았다(관련기사 [현장] “왜 죽였는지 나도 궁금” 연쇄살인마 이춘재 법정 4시간의 기록).
전문가들은 이춘재를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규정한다. 장시간 증언 과정에서 목소리의 높낮이와 말의 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었던 점,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외운 듯 기계적으로 답변한 점, 범행 과정과 이후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상해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대답한 점 등이 그 근거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자백한 이춘재(56)가 첫 번째 살인사건 이후 34년 만인 2일 법정에 나와 진범임을 인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범행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는 것”이라며 “자기중심적인 답변 방식으로, 사이코패스들이 자신의 범죄를 떠올리는 전형적인 방식과 동일하다. 근본적으로 사고를 다르게 하는 사람인데 일반적 기준으로 그를 이해하려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러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은 그날 이춘재의 표정과 앞뒤 맥락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러한 유형의 범죄자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증언 내용을 보면 이춘재는 결론적으로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했다.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못 잡았다는 점을 꼬집는다. 방어적인 표정을 하면서도 과시를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법정 증언에서 이춘재가 감정을 보인 지점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변호인이 1급 모범수 생활을 하며 작업반장과 반장 역할을 연달아 맡는 등 주위 신망을 얻기 위해 했던 모든 행위가 전부 ‘위선’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였다. 줄곧 감정 변화 없이 담담히 답변을 해왔던 이춘재는 위선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어떻게 사람이 30년을 연기하면서 살 수 있느냐”며 맞받아쳤다.
다른 지점은 8차와 9차 사건 사이 벌어진 초등생 실종 사건의 유가족이 과거 눈물을 흘리며 했던 인터뷰 영상이 법정에서 재생될 때였다. 영상 도입부까지 담담히 지켜보던 이춘재는 1991년 화성 현장에서 진행된 방송 인터뷰 장면이 나온 이후부터 눈을 아래로 떨구고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는 모습이 증인석 앞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지점들에 대한 해석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의 말대로 연기를 했을 수도 있고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는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
이춘재의 외형은 평범하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사이코패스로 불리지만, 겉으로는 길을 걷다 마주쳐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그가 범죄자임을 미리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연쇄살인 사건의 전말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이춘재가 앞으로의 범죄 예방과 수사를 위한 중요한 연구 관찰 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연쇄살인범의 뒤늦은 고백에 30여 년 동안 묻혀 있던 비밀이 드러났지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숙제가 고개를 들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