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고 땅 봐도 답 안 나오네’
▲ 요즘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은 4대강 공사와 세종시 이전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한다. 사진은 과천 정부청사 전경.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수정안 부결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관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깊어만 가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고민을 들춰봤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6·2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 3일 한나라당 패배 원인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4대강 추진’이라는 응답이 3명 중 1명꼴인 34%로 가장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과 연령에 관계없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지방선거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4대강 사업 반대 등을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송영길 인천시장, 김두관 경남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이시종 충북지사가 전국 곳곳에 포진해 있어 4대강 사업 추진을 둘러싼 갈등이 커진 상태다. 이미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4대강 사업 추진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섰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주요 공약으로 이미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데다 각 지역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런데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기초공사 중인 4대강이 돌발 재난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지방선거 패배를 의식해 4대강 공사 속도를 조절하자니 장마철 피해가 우려되고, 그렇다고 속도를 높이자니 여론 악화가 부담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4대강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면 과장급 공무원들과 20∼30대 미혼 공무원들은 세종시 문제로 고민에 빠져있다. 그동안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부처 이전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부처 이전이 불가피해졌다. 법률상 2012년부터 이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동안 공기 중단을 감안하더라도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과장급 공무원들은 자녀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인 경우가 많아 자녀 교육 때문에 ‘국내산 기러기’로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 경제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한번은 내가 아내에게 ‘우리 은퇴하면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 살까?’ 했다가 면박을 당했다. 사정이 이런데 자녀 교육까지 겹친 상태에서 세종시로 가족이 같이 내려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나 혼자 내려가서 살 수 있게 전세라도 하나 마련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혼 공무원들은 세종시로 이전하면 일보다 결혼이 더 걱정이라며 불만이 가득하다. 결혼 시장에서 과거에 비해 공무원에 대한 메리트가 반감된 상황에서 세종시로 내려가게 되면 결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대전청사에 있는 일부 부처처럼 초임 사무관들을 결혼 전까지 서울 사무소에 근무시키다가 결혼하면 대전으로 발령 내는 방식이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들도 오고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남자 사무관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여자 사무관들이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내부에서 찾아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세종시로 가게 되면 결혼하기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벌써부터 자신의 진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