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이용자·개발자 피해 우려…“구글 측이 야당 의원 만난 뒤 상황 바뀌어” 주장도
앞서 여야는 ‘구글 인앱결제 방지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으나 야당이 일방적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종합국정감사 현장. 사진=박은숙 기자
앞서 구글은 게임 외 모든 애플리케이션(앱)에 자사 결제시스템인 ‘인앱결제’ 사용 의무화와 수수료 30% 부과 정책을 예고했다. 신규 앱은 내년 1월 20일부터, 기존 앱은 내년 10월부터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앱 유통을 위한 수수료는 정당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수수료 부담으로 인해 앱 마켓 이용자와 모바일 콘텐츠 개발자에게 피해가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일찍부터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와 수수료 30% 부과를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도 지난 8월부터 법안을 발의했고 여야 구분 없이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법안 통과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과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국정감사 기간인 지난 10월 23일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구글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을 통과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 7건을 병합 심사해 당일 처리하기로 한 것. 그러나 이날 과방위 회의에는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박성중 야당 간사를 중심으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안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야당은 ‘공청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법안을 가다듬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여당이 이를 받아들이며 지난 11월 9일 국회에서 ‘인앱결제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는 4명의 진술인이 참석했는데, ‘구글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2명은 찬성을, 국민의힘의 추천 인물은 반대 주장을 펼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만약 국민의힘이 법안 처리 시간을 끌기 위해 공청회 기획했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라며 “법안에 잠잠하던 반대 여론을 부각해 다시 처음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체되며 흐지부지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앞다투어 법안을 발의하던 과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이제 와서 “신중하게 판단하자”는 태도에 대해 비난 여론이 거세다. 발의된 법안 7개 가운데 3개가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 발의이다. 이 법안들은 앱 마켓 사업자가 ‘결제방법을 부당하게 지정하거나’ ‘타 플랫폼에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10월 7일 인사를 나누는 박성중 국민의힘 간사(왼쪽)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간사. 사진=이종현 기자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성중·허은아·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갑자기 자신들의 법안이 ‘졸속 처리 법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대표발의자임에도 법안 처리에 미온적인 이유’에 대해 조명희 의원실 관계자는 “저희가 발의한 법안은 앞서 다른 의원님들께서 발의한 법안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충적인, 대안 성격의 법안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허은아 의원은 “저의 법안은 시장 자율 진출에 대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통과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그런데 다른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공청회 때 살펴보니 찬반 논쟁이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방위 야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법안화했으면 한다”며 “법안을 철회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의원들 외에 과방위 소속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도 “신중하게 봐야할 것 같다. 법안 처리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이 부족했다”고 답했다. 김영식 의원 역시 박성중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 함께 이름을 올렸지만 “다들 법안이 필요해서 만들긴 했지만, 후유증도 고려하고 면밀히 검토했어야 했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 심도 있게 살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민주당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과방위 여당 간사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하는 게 이해가 안 가고 준비가 미흡한 상태로 법안을 발의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법안 발의를 위해 업계 관계자와 인터뷰 등을 거쳤어야 했는데, 만약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정말 실망이다”며 “‘인앱결제 강제는 안 된다’는 데 합의가 이뤄졌지 않나. 공통분모가 있으면 합의를 해야 하고, 법안에 문제가 있다면 공식적으로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구글 측에 설득당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방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국감 초반에 법안을 처리하자고 여야가 동의했는데, 어느 날 구글 측이 야당 의원과 접촉한 뒤 상황이 바뀌었다”며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던 그날 회의실 밖에서는 ‘동의하자’고 해놓고서 얼마 뒤 야당 의원들끼리 회의를 열더니 ‘더 논의해봐야 한다’고 입장이 다시 정리됐더라”고 전했다.
야당의 입장 변화로 법안 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해졌다. 과방위에 상정될 법안은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먼저 심사돼야 하는데, 11명의 위원 가운데 위원장을 포함한 4명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들이 법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개진할 경우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 또 법안은 과방위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서도 통과돼야 하기 때문에 이번 정기국회 내 처리시키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