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증권사 중징계 이어 은행 제재 예고…증권사보다 낮은 수위 예상되지만 CEO 징계 안갯속
라임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 세 곳은 높은 수준의 징계를 받았다. 금감원은 그동안 라임펀드 판매 증권사에 이어 판매 은행들에 대한 제재 방침을 시사해왔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지난 10월 말부터 지난 11월 12일까지 여러 공식석상에서 “증권사들을 먼저 정리하고 은행 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각 금융지주 은행 본점 전경. 사진=일요신문DB·연합뉴스
은행들이 판매한 펀드 액수를 모두 더하면 약 1조 원에 달한다. 우리은행 3577억 원, 신한은행 2769억 원에 이어 하나은행 871억 원, BNK부산은행 527억 원, BNK경남은행 276억 원, NH농협은행 89억 원, KDB산업은행 37억 원 등이다. 금감원은 지난 6월 펀드 판매액이 가장 큰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을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진행했고, 하나은행과 부산은행은 코로나19 여파로 일정을 미루다가 지난 10월 부문검사를 했다. 경남은행 등 나머지 은행들에 대한 검사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검사가 마무리된 은행 순으로 제재심에 상정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관련된 금융사에 대한 검사를 마친 후 한 번에 제재심에 올리지만, 현재로선 일정 조정이 쉽지 않아 금감원은 순차적으로 제재하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따로 제재를 하면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금감원은 오히려 선례가 나오는 만큼 제재 절차가 더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 10월 말 가장 먼저 현장검사가 마무리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 검사의견서를 보냈다. 현장검사 결과가 담긴 의견서 전달은 본격적인 제재심 절차가 시작됐다는 신호탄이다. 두 은행이 검사의견서에 대한 이의신청 등 의견을 제출하면, 금감원은 검토를 마친 뒤 징계 등 조치 예정 내용을 담은 사전통지서를 보낸다. 제재심 안건 상정은 그 다음이다.
금감원은 검사의견서에 두 은행이 라임펀드를 선정·판매하는 과정에서 내부통제 부실, 불완전 판매 및 부당권유의 금지 위반 등이 있었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진다. 중징계를 받은 증권사들에 적용된 내용과 같다. 이 때문에 은행과 은행장에게도 환매 중단 사태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은행권은 라임 펀드를 2018년부터 2019년 사이 판매했다. 당시 은행장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지성규 하나은행장이다. 신한은행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재임한 위성호 전 회장(현 흥국생명 부회장)과 후임 진옥동 신한은행장의 재임기간이 겹친다.
이 가운데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은 올해 초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로 문책경고를 받았다. 앞서 증권사 CEO(최고경영자)들 수준의 강도 높은 징계가 내려질 경우 2연속 중징계라 부담이 더욱 커진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임기가 올해 12월까지인데, 제재심을 비롯한 최종 징계 확정 일정 등을 감안하면 연임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계열사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가 복합점포와 특유의 매트릭스 조직 체계 등으로 얽혀 있다. 두 곳의 펀드 판매분을 합치면 모두 6017억 원으로, 금감원이 이 구조를 따로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부담은 지주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각 은행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현재로선 확정된 내용이 없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다”고 말했다.
라임 펀드 판매 증권사 대상 제재심을 마무리한 금융감독원이 이번에는 판매 은행들을 정조준했다. 사진=일요신문DB
그러나 징계 수위에 대한 금융업계 의견은 엇갈린다. 현재로선 증권사보다는 은행과 은행장, 금융지주 수장들에게 내려질 제재 수위가 낮아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경우 앞서 DLF 사태로 받은 문책경고의 대표적인 사유가 내부통제 기준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DLF 판매 기간과 라임 펀드 판매 기간이 겹치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내용의 위반 기준이 최종 적용되면 중복 제재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징계 수위가 감경되거나 지주사 회장에 대한 CEO 제재까지는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금감원이 강조하고 있는 소비자 보호 노력을 적극적으로 한 점이 감경 사유가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은행권 가운데 특히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지난 8월, 금감원이 권고한 라임 투자 원금 100% 배상안을 판매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운용사가 아닌 판매사가 원금 전액을 물어주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최근엔 라임 펀드 중 손해액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펀드에 대한 분쟁조정도 추진 중인데, 우리은행이 적극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추정 손해 분쟁조정은 100% 배상안만큼 배임 우려가 높아 판매사들이 장고를 거듭해왔는데 우리은행이 발 빠르게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눈길을 끌었다”며 “은행권에선 지주사 회장들이 DLF로 징계를 받은 곳들인 만큼 라임 사태 흐름과 금감원 눈치를 보고 무리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향후 제재심에서 유리한 사정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변수가 있다. 라임 펀드 사태로 인한 제재 사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부당권유의 금지 위반’이다. 불완전판매 유형 중 하나인데, 앞서 DLF 사태와 관련한 제재심에선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았다. 사실상 새로운 위반 사항이 추가된 만큼 DLF로 제재를 받은 은행과 CEO들이 추가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번 증권사들 제재심에도 이 조항이 적용됐다.
직접 판매에 나서지 않은 증권사 CEO들이 최종적으로 중징계를 받은 점도 우려 대상이다. 증권사들은 펀드 부실은 운용사에 주로 책임이 있고, 보고 받는 위치에 있는 대표이사에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금감원은 증권사 대표들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있는 ‘행위자’로 판단했다.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대규모 손실 사태를 초래했으며, 라임 펀드들이 부실화된 상황을 알고서도 판매를 하는 등 죄질이 무겁다고 결론 내렸다.
은행권에선 조직이 상대적으로 작은 증권사들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 책임이 대표이사에게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은행들은 본부장들에게 있다는 점에서 금융지주 수장 징계 거론은 너무 앞서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금융사 임원은 “징계를 받은 증권사들의 주장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고, DLF 사태 당시 금융지주사 CEO들에 대해 문책경고의 중징계가 결정된 전례가 있는 점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