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위 감독들까지 자진사퇴…‘베테랑’ 정근우·권혁 은퇴 결정 등 벌써 120명 방출
LG 트윈스를 2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류중일 전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패배 이후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어쩔 도리가 없다. KBO리그 10개 구단은 매년 새로운 식구를 맞아들인다. 팀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감독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새 감독이 채우는 것은 프로의 순리다. 적잖은 수의 코치들이 감독의 해임과 선임에 따라 팀을 옮기거나 그만둔다. 또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선수들이 저마다 꿈에 그리던 프로 생활을 준비하는 동안, 기존 선수들 중 일부는 서서히 정든 유니폼과 작별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매년 각 구단의 보류(등록) 선수는 구단별로 65명을 넘지 않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등록할 수 있는 인원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새로운 선수들이 입단한다면, 누군가 그 수만큼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1월 들어 속속 이별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감독, 코치, 선수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인원이 연일 소속팀을 떠나고 있다. 예년이라면 이미 한국시리즈까지 다 끝나고 모든 팀이 마무리 훈련을 진행하고 있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영향으로 리그 일정이 밀린 올해는 포스트시즌 일정과 탈락팀 재정비 일정이 겹쳐 빛과 그림자가 더 짙어 보인다.
#2년 연속 PS 간 류중일 감독도 물러났다
올해는 유독 새 감독을 찾는 팀이 많다. 정규시즌 6~8위 팀 감독은 자리를 지키는데, 4위와 5위 팀 감독의 얼굴이 바뀌는 것도 아이러니한 특징이다. 현역 최고령 감독이자 한국시리즈 4회 우승 사령탑인 류중일 전 LG 트윈스 감독이 올가을 찬바람을 피하지 못한 대표적 인물이다.
LG는 지난 6일 “류 감독이 구단의 재계약 의사와 관계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단은 류 감독의 재계약과 관련해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었지만, 감독의 의견을 존중해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구단에 따르면, 류 감독은 지난 5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끝난 뒤 구단에 면담을 요청했다. LG가 두산 베어스에 2패를 당해 PO 진출에 실패한 직후다. 감독이 차명석 단장을 만나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구단도 그 뜻을 수용하기로 했다.
류 감독은 2011~2016년 삼성 라이온즈를 이끌면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를 이끈 명장이다. 1년 휴식 후 2017년 10월 LG와 3년 총액 21억 원에 계약한 뒤 지난해와 올해 팀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리더십을 보였다. 그러나 LG가 바랐던 한국시리즈 우승 염원은 풀어주지 못했다.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를 ‘우승 적기’로 보고 힘을 쏟았지만, 치열한 순위 전쟁 끝에 정규시즌 최종전 패배로 4위가 돼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했다. 끝내 준PO에서 잠실 라이벌 두산에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탈락했다. 류 감독은 결국 자진해서 물러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류 감독은 구단을 통해 “그동안 LG를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드리고, 아쉬운 경기 결과를 보여드려 죄송하다.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와 함께 LG는 발 빠르게 차기 감독 후보 5인과 면접을 마치고 13일 제13대 감독으로 류지현 수석코치를 선임했다. 계약기간 2년에 총액 9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이다.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SK는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2019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한 강팀이지만 올해 갖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9위로 추락했다. 염 감독의 건강도 온전치 못했다. 성적 부진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지난 6월 25일 두산과 홈 더블헤더 1차전 도중 더그아웃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후송됐다. 의사 권고에 따라 67일간 휴식했고, 9월 1일 LG전부터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염 감독이 돌아온 뒤에도 SK의 연패는 이어졌다. 염 감독은 결국 복귀 5일 만에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이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SK는 남은 시즌을 박경완 수석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마쳤다. 이어 두산 투수코치를 맡았던 김원형 신임 감독을 선임해 팀 재정비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박 전 감독대행과 김 신임감독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영혼의 배터리’로 불린 친구 사이다. SK는 감독 외에도 민경삼 사장, 류선규 단장을 새로 선임해 본격적인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이용규는 올 시즌 한화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유일한 야수였지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방출돼 새 팀 찾은 이용규, 정근우와 권혁 은퇴
선수들의 팀 이탈은 더 본격적이다. 한때 스타플레이어로 군림했다 하더라도, 소속팀에서 더 이상 자리가 없다고 판단하면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한다. 기본적으로 현역 연장과 안정적인 은퇴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야 하는 게 먼저다. 그 다음엔 구단에 방출을 요청해 새 팀을 알아볼 수도 있고, 은퇴를 권유하는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여 곧바로 프로 코치 자리를 얻을 수도 있다. 둘 다 여의치 않다면 그 다음 길은 구단 프런트로 변신해 일단 다른 분야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이 정도는 그동안 팀 성적에 공헌이 많은 선수들에게 구단이 해줄 수 있는 배려다. 그러나 세 가지 갈림길에 설 수 있는 선수들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야수 이용규는 일이 잘 풀렸다. 한화 이글스는 지난 5일 주장 이용규와 내년 시즌 재계약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용규는 2019시즌을 앞두고 한화와 2+1년의 자유계약(FA)을 했다. 2019시즌엔 개막 전 트레이드 요청을 했다가 팀 내 징계로 무기한 참가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올 시즌엔 120경기에서 팀 내 야수 중 유일하게 규정 타석을 채웠다. 성적은 타율 0.286, 17도루, 60득점. 그러나 한화는 팀을 전면 개편하기로 방향을 잡고, 베테랑 이용규의 1년 추가 계약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한화를 떠난 이용규를 키움 히어로즈가 재빨리 잡았다. 방출 소식이 전해진 지 5일 만인 11월 10일, 이용규와 연봉 1억 원, 옵션 최대 5000만 원 등 최대 1억 5000만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2004년 LG에 입단한 뒤 KIA 타이거즈와 한화를 거친 이용규에게 키움은 프로 네 번째 소속팀이 된다. 이용규는 “단장님이 직접 연락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키움은 좋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니, 팀에서 바라는 것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반면 지난해까지 이용규와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베테랑 내야수 정근우는 끝내 16년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근우는 2005년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고 SK에 입단한 뒤 국가대표 주전 2루수로 활약할 만큼 급속도로 성장했다. 세 차례(2006년, 2009년, 2013년)나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주역이기도 했다. 2014년 한화와 FA 계약을 해 6년간 뛴 뒤 올 시즌을 앞두고 2차드래프트를 통해 LG로 이적했다. 그러나 세월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결국 동갑내기 스타인 한화 김태균에 이어 ‘1982년생 전성시대’의 또 한 장을 닫았다.
이외에도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삼성 라이온즈 최강 불펜을 구축했던 권오준(삼성)과 권혁(두산)이 올해 은퇴를 결심했다. 두산 불펜의 터줏대감이던 김승회, SK-LG-두산을 거친 포수 정상호도 유니폼을 벗는다. 국가대표를 거친 키움 베테랑 외야수 이택근 역시 팀에서 방출돼 은퇴를 결심했다. 이미 팀 동료들이 자체 은퇴식을 열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한화에 입단해 한 팀에서만 뛴 투수 윤규진도 구단의 방출 통보를 받자 “고향 팀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싶다”며 은퇴를 선택했다. SK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투수 윤희상도 현역 선수생활을 마쳤다. SK는 윤희상을 위해 성대한 은퇴식을 열어줬고, 절친했던 옛 동료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깜짝 등장해 포옹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벌써 120명 방출, 아직 끝나지 않은 ‘칼바람’
코로나19로 전 구단 재정이 어려워진 올해, 선수단 ‘정리’ 칼바람은 그 어느 해보다 거세다. 11월 13일까지 방출이 공식 발표된 선수만 해도 벌써 120명이 넘는다.
특히 한화는 팀 레전드 출신 정민철 단장 주도 하에 무려 23명의 선수를 방출하면서 대대적인 팀 쇄신에 돌입했다. 선수단 전체의 30%가량이 팀을 떠난 셈이다. 그 가운데는 앞서 언급한 김태균 이용규 윤규진과 시즌 도중 은퇴한 투수 송창식 외에도 투수 안영명 김경태 이현호, 내야수 송광민 김회성, 외야수 최진행 등 팀 주전으로 활약하던 선수들이 포함돼 있다. 시즌 종료 전 이미 방출된 투수 송창현, 외야수 김문호 양성우 최승준 등도 팬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이뿐만 아니다. 구단에 영구결번을 남긴 송진우 투수코치와 장종훈 육성군 총괄도 다른 코치 7명과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제로(0) 베이스’에서 팀 재건을 시작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한화는 “중장기적인 팀의 목표는 ‘기존 주축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단계적 전환’이다. 앞으로 팀의 미래를 책임질 집중 육성 대상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팀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 단장은 “향후 팀의 중심이 될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포지션별 뎁스(선수층), 선수 개개인의 기량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했다. 앞으로 젊고 역동적인 팀 컬러를 찾고 강팀으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팀 쇄신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키움은 2016년 신인왕에 오른 투수 신재영과 투수 정대현, 외야수 김규민을 포함한 8명을 한꺼번에 방출했다. KIA는 직접 방출을 요구한 외야수 김주찬을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줬고, 다른 선수 11명에게도 일찌감치 방출을 통보했다. 대주자로 쏠쏠한 활약을 했던 유재신과 고장혁, 임기준, 이은총 등이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할 처지다.
LG도 총 20명을 정리했다. 은퇴하는 현역 최고령 타자 박용택과 앞서 언급한 정근우 외에도 여건욱, 문광은, 이준형, 박찬호, 전민수, 양종민 등이 포함돼 있다. 두산 역시 은퇴 선수들과 성장이 더딘 유망주들을 내보내면서 13명을 정리했다. 2군 구장인 이천 베어스파크를 담보로 긴급 대출까지 받을 정도로 팀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라 포스트시즌 종료 후 추가 방출도 예상된다.
롯데 자이언츠는 투수 배장호의 은퇴와 함께 1차로 김상호, 김대륙, 설재민 등 11명을 내보냈다. 1980년생 송승준과 1981년생 장원삼을 비롯한 베테랑 투수들의 거취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곧 2차 방출 명단을 결정해 선수단 재편을 확실히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SK는 ‘왕조’ 시절의 필승 불펜 박희수를 내보내기로 결정했고, 염경엽 전 감독이 데려온 베테랑 타자 윤석민과 채태인도 방출했다. 삼성 역시 정인욱과 박찬도를 비롯한 6명에게 일단 재계약 불가 의사를 전달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있는 정규시즌 1위 NC 다이노스와 플레이오프를 치른 정규시즌 2위 KT 위즈도 포스트시즌 종료 후 내부 정리를 마칠 예정이다. KT에서는 금민철, 이상화, 강장산 등이 이미 방출됐고, NC도 홍성무를 비롯한 6명에게 1차 방출 통보를 했다. 12월에 불어 닥칠 2차 ‘칼바람’의 예고편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