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범 불법촬영 무죄, 정바비 강력 부인 속 기소의견 송치…피해자 사망, 진술 부재 “지켜봐야”
가수 정바비 씨는 11월 18일 ‘검찰송치 관련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여전히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사진=정바비 블로그 캡처
“오늘 부로 고발 건에 대한 검찰 송치가 이루어졌습니다. 경찰은 준강간치상 부분에 대해 전부 혐의없다 판단하여 불기소의견을 냈습니다. 언론에 보도됐고 고발의 유일한 근거가 된 카톡 내용이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11월 18일 정바비 씨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밝힌 ‘검찰송치 관련 입장’의 앞부분이다. 경찰 수사 결과 가운데 강간치상 혐의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의견이 나온 데 대한 입장이다. 정 씨의 주장처럼 이번 사건은 고인인 A 씨가 지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이 유가족 고발의 시발점이 됐다.
A 씨는 지난 4월 사망했다. A 씨의 부친은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술에 약을 탔다” “나한테 더 못할 짓 한 걸 뒤늦게 알았다. 아무 것도 못하겠고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등 지인에게 고통을 호소한 카톡 메시지를 발견해 경찰에 고발했다. 이렇게 시작된 경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정 씨는 ‘카톡 내용이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라는 입장이다. 이미 피해자가 사망해 성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 가운데 하나인 ‘피해자 진술’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진술을 할 수 없었던 데다 약물 투여 여부 등을 가릴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고인의 지인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이뤄졌지만 피해자 진술을 갈음할 만큼의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증거 불충분에 의한 불기소 의견 사건 송치’가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당연히 정 씨도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따라서 핵심 관건은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정 씨의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결과였다. 정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기억하는 한,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기록 상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경찰이 뭔가를 발견했고 이를 기반으로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는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경찰 수사 결과는 정 씨가 불법 촬영을 했다는 의미다. 다음은 정 씨의 ‘검찰송치 관련 입장’ 뒷부분이다.
“다만 기소의견을 낸 부분은 원래의 고발 내용이 아닌 다른 부분에 대해 확인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고발 근거가 사실이 아님이 명명백백해진 상황에서 또 다른 부분을 문제 삼아 일부라도 제가 죄를 지은 것처럼 퍼져가고 있는 이 상황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만, 향후 검찰조사에 있어서도 성실하게 임하여 남겨진 진실을 밝혀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단독 보도한 MBC는 경찰이 디지털포렌식으로 확보한 증거에 대해 “촬영 각도 등을 볼 때 피해자의 동의 없이 찍힌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과 사진들”이라며 “정 씨는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문제의 영상과 사진을 경찰 수사를 앞두고 삭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만 놓고 보면 분명 정 씨의 휴대전화나 컴퓨터에서 고인과 관련된 민감한 증거가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의 기소 여부와 법원의 유무죄 판결까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게다가 정 씨는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피해자의 동의 여부다. 이런 까닭에 MBC가 촬영 각도 등을 볼 때 피해자의 동의 없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연예계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구하라-최종범 사건이다. A 씨와 달리 고 구하라 씨는 리벤지 포르노 협박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피해자로 조사를 받아 피해자 진술을 했다. 그렇지만 끝내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최종 판결까지 보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지난 10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재물손괴와 상해 협박 강요죄로 기소된 최종범 씨에 대해 징역 1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지만 신체를 불법적으로 촬영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단했다. 이에 대해 당시 대법원은 “구하라 씨와 최종범 씨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동일하게 설정해 자유롭게 서로 검색하고 필요할 경우 사진을 삭제해 왔다”며 “성관계 동영상은 삭제했음에도 이 사건 사진은 남겨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 판결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 역시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정 씨의 휴대전화나 컴퓨터에서 피해자 A 씨와 관련된 민감한 동영상이나 사진이 증거로 경찰 수사를 통해 확보됐지만 A 씨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무죄 선고가 나올 수 있다. 정 씨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까닭 역시 이 부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범죄 관련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구하라 씨 사건의 경우 피해자 진술이 갖는 증거 능력으로 재물손괴, 상해, 협박, 강요 등의 혐의가 입증됐음에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촬영) 위반에서는 무죄가 나왔다”며 “이번 사건은 여전히 가장 결정적인 피해자 진술이 없는 터라 검찰의 기소 여부와 법원의 판결까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