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돈이 개인 주머니로 ‘쏙쏙’
![]() | ||
▲ 토종 브랜드 ‘쌈지’는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옷집의 인기로 ‘쌈지길’이란 대명사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한때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
19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대표적인 토종 브랜드로 각인되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쌈지’. 그런 쌈지가 최종 부도를 맞은 것은 지난 4월의 일이다. 그달 7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쌈지가 2009년 발행한 약속 어음금 위·변조 신고가 각하돼 최종 부도처리했다’고 밝혔다. 4월 15일 쌈지는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됐다.
쌈지의 부도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부도 직전 코스닥시장본부로부터 상장폐지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경고를 이미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3월 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사업보고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쌈지는 앞서 2009년 하반기부터 끊임없이 부도설에 휩싸여 왔다. 2009년 11월 29일에는 코스닥시장본부에서 쌈지 측에 부도설과 관련된 조회공시를 요구하기도 했다. 5억 원 규모의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를 맞았다는 설이 증권가에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12월 3일 쌈지는 ‘1차 부도 발생 어음 4억 4000만 원을 12월 1일 23시 전액 결제 완료했다’고 밝혔다.
당시 부도 위기는 11월 27일, 30일에 이은 세 번째 부도설이었다. 4월 7일 최종 부도를 맞았을 때 시장에서는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만큼 쌈지가 내부에서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만 그 이유가 단순히 ‘의류시장의 어려움이 국내 토종 브랜드에까지 미쳤구나’ 정도로만 인식됐을 뿐이었다.
그런데 쌈지가 이처럼 무너진 이면에는 사실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대표이사의 횡령·배임 행각이 있었던 것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 5부(부장검사 임진섭)는 지난 7월 9일 양 아무개 전 쌈지 대표이사를 구속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표가 쌈지를 인수한 것은 2009년 7월. 검찰 수사결과 양 전 대표는 7월 말 회사 소유 주식을 매도해 8억 6000만여 원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8월 초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72억 원 상당의 주식 630만 주를 사채업자에게 맡기고 54억 원의 차용금을 받아 횡령했다고 한다. 뒤이어 8월 말엔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20억 원을 횡령하고 9월에는 80억 원에 이르는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양 전 대표는 횡령 외에 수십억 원대의 배임 혐의까지 받고 있다. 양 전 대표는 2009년 7월 16일 100억 원의 유상증자를 하는 과정에서 해당 자금을 사채업자로부터 빌려 납입하고 이 자금을 바로 인출해 46억 원가량을 사채업자에게 갚는 식으로 가장납입(업무상 배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 전 대표는 또 7월 말 쌈지 지배인에게 쌈지 주가부양을 부탁해 그 담보로 쌈지 명의 50억 원의 약속어음 1장을 발행했고, 또 그해 11월 개인 명의로 호텔 부지와 사업권을 인수 계약하는 과정에서 그 담보로 총 60억 원에 이르는 쌈지 명의의 약속어음을 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양 전 대표는 수백억 원대의 자금을 횡령·배임한 이후 그해 11월 회사 매각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인수 의사를 밝혔던 회사 측에서 의류시장의 여건 악화에 따른 인수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이는 무산됐다. 당시 쌈지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했던 T 사 회장은 11월 28일 “상장사 쌈지의 정상 도전(경영권 인수)에 나서 정상의 눈앞까지 올랐으나 기상상황이 계속 악화돼 철수를 전격 결정했다”며 경영권 인수 포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처럼 양 전 대표가 쌈지를 인수하고 나서 횡령 및 배임한 금액이 약 200억 원에 이른다. 양 전 대표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검찰은 지난 7월 9일 양 전 대표를 구속기소하는 한편 전 경영진의 추가 혐의를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횡령의 규모, 배임의 행각을 볼 때 회사 인수 자체가 의도적이었던 것 같다”며 “과거 경영진의 관여 여부와 참고인 조사를 통해 여죄를 캐고 있다”고 전해 앞으로 더 큰 파장이 예상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