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개발 일단 멈춤’ 그녀의 점검?
▲ 삼성물산이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의 자금 조달과 관련해 코레일과 갈등을 겪고 있다. 용산역 인근 전경.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삼성물산과 코레일이 용산역세권 개발사업과 관련해 자금조달 문제로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다. 개발사업 컨소시엄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드림허브)의 대표사인 삼성물산은 지난 6월 24일 코레일에 “토지대금 중 중도금 4조 7000억 원을 준공 때까지 무이자로 연기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코레일은 “토지대금과 이자지급에 대해 납득할 만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업 중단도 불사하겠다”고 맞섰다. 급기야 지난 7월 20일 코레일은 드림허브를 상대로 토지매매 중도금 등 7010억 원에 대한 납부이행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밝힌 상태다.
재계 일각에선 부자 회사 삼성물산이 ‘돈 문제’로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에 차질을 빚게 된 배경을 최근 단행된 강도 높은 경영진단에서 찾기도 한다. 지난 4월부터 약 3개월간 그룹 차원에서 삼성물산에 대한 집중적인 경영진단이 이뤄진 바 있다.
▲ 이부진 전무. |
삼성 안팎에선 이번 경영진단 도입을 삼성물산의 최근 실적 하락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공시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해 영업이익 2805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2008년) 3641억 원보다 23%가량 하락한 수치다. 건설경기 부진에 따른 것이겠지만 이는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의 주력 계열사로서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이었다.
삼성물산은 지난 1월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재직 시절(2003~2009년) 해외수주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온 정연주 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맞이했다. 정 사장은 지난 2003년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에 취임하면서 1조 1300억 원이던 매출액을 지난해 4조 300억 원까지 끌어올리는 역량을 발휘했다.
그런데 대표이사 교체에도 불구하고 올 1분기 실적은 시원치 않았다. 영업이익은 567억 원으로 전년 동기(2009년 1분기) 901억 원에 비해 37% 하락했다. 지난 3월 이건희 회장이 2년 만에 우여곡절 끝에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후 대표 계열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예고됐으며 이는 곧 삼성물산에 대한 고강도 경영진단으로 나타났다.
일단 올 2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경영진단 약발은 통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7월 16일 영업(잠정)실적 공시를 통해 올 2분기 113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음을 알렸다. 전기(올 1분기) 대비 99.3%, 전년 동기(지난해 2분기) 대비 45.1% 증가한 수치다.
재계 일각에선 경영진단이나 용산역세권 개발사업 자금문제 재검토 등 삼성물산의 굵직한 사안들이 이건희 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의 입김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 전무는 지난해 9월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을 겸하게 된 데 이어 올 초부터는 삼성물산 업무에도 깊이 개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삼성에버랜드가 빌딩 관리 사업을 하다 보니 건설 업무를 하는 삼성물산과 연계되는 부분이 있을 뿐”이라며 이 전무의 삼성물산 내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요 임원회의에 이 전무가 꼬박꼬박 참석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로 이 전무는 삼성물산 경영 중심에 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무가 삼성물산 경영에 관여한 이후로 강도 높은 경영진단이 실시되면서 삼성물산 체질개선 작업의 주체가 사실상 이 전무일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부진 전무의 활동영역 확대는 계열분리와 관련된 여러 관측을 낳는다. 그동안 재계에선 이건희 회장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전자와 금융을 맡고, 이부진 전무가 호텔신라와 에버랜드를 맡는 식의 분할구도가 점쳐져 왔다. 그런데 삼성물산에서의 이 전무 입김이 점점 강해지면서 이 전무가 삼성물산에도 눈독을 들일 만하다는 전망이 대두되는 것이다.
일각에선 아무리 이부진 전무가 남다른 경영 역량을 보여준다 해도 이건희 회장이 삼성물산을 고스란히 이 전무에게 물려주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기도 한다. 삼성물산이 그룹의 모태이자 주요 계열사 지분을 두루 갖고 있는 만큼 이 회장이 ‘황태자’ 이재용 부사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이부진 전무가 최근 삼성물산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에 이 회장이 있을 거라 본다면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평가받는 이 전무 영향력하에 삼성물산이 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증권가에선 삼성물산의 ‘미래’와 관련해 몇 가지 눈길을 끌 만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삼성물산이 건설과 상사로 분리될 가능성, 또 하나는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될 가능성이다. 전자는 기업 분할을 통해 이부진 전무가 그중 하나를 챙길 것이란 시각과 연결된다.
후자는 삼성엔지니어링 출신 정연주 사장이 삼성물산의 개혁 작업을 이끈 뒤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으로 시너지 효과를 도모할 것이란 관측이다. 정 사장이 ‘이재용 부사장 계열’로 여겨지는 만큼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 합병법인이 ‘이재용 시대’의 중심축이 될 것이란 내용이다.
반면 삼성물산이 건설과 상사로 분리된 뒤 건설부문이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는 새 합병법인을 이재용 부사장 몫으로, 삼성물산 상사부문을 이부진 전무 몫으로 할 것이란 시나리오로 연결된다. 이부진 전무의 등장 이후 삼성물산 체질개선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이재용-이부진 남매와 삼성물산의 미래를 둘러싼 갖가지 관측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