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총장 허 찌른 ‘직무배제’ 카드 등 여권 핵심 인사 관여 설왕설래…‘훈수’에 움직일 추 장관 아니란 반응도
추미애 장관이 1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친인권적 보안처분제도 및 의무이행소송 도입 당정협의에 참석하고자 의원회관 입구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추미애 장관이 감찰 카드로 윤 총장을 밀어붙일 것이란 관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추 장관이 감찰 라인 핵심 보직에 현 정권 성향 인사들을 발탁하고, 11월 초 법무부 감찰규정을 개정하자 윤 총장을 겨냥한 대대적인 감찰이 이뤄질 것으로 점쳐졌었다. 법무부는 ‘중요사항 감찰에 대해 법무부 감찰위원회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자문을 받을 수 있다’로 바꿨다. 감찰위원회 자문을 강제가 아닌, 임의 조항으로 바꾼 것이다.
그럼에도 11월 24일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청구 조치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정치권과 검찰 관계자들은 놀라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여권 인사들 대부분 사전에 추 장관 발표 내용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신속하고 파격적인, 또 극도의 보안 속에 이뤄진 일로 풀이된다. 윤 총장 측 역시 징계청구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준비를 했었지만 직무배제는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며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다.
추 장관 발표 후 민주당은 윤 총장을 향해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이낙연 대표는 “법무부가 밝힌 윤 총장 혐의는 충격적”이라면서 “윤 총장은 검찰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주길 바란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행정부 소속인 검찰이 사법부를 불법 사찰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용납할 수 있나. 국기문란이자 중대 범죄행위”라며 국정조사나 특별수사 도입을 통한 진상규명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무부와 민주당이 단일대오를 형성한 형국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청와대 ‘침묵’이다. 강민석 대변인이 11월 24일 “문 대통령이 추 장관 발표 직전 관련 보고를 받았다. 그에 대한 별도의 언급은 없었다”고 밝힌 게 전부다. 법무부 감찰 및 징계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별도의 입장을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얘기도 나오긴 한다. 하지만 정가에선 청와대 묵인 없이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반문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 이후 여권에선 윤 총장 거취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당 주류인 친문 진영에선 윤 총장 해임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우세했지만, 임기가 있는 검찰총장 해임을 밀어붙일 경우 역풍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연말 전까지 윤 총장을 해임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대세였고, 결국 추 장관이 감찰카드로 선봉에 섰다.
추 장관은 징계위원회 결과에 따라 윤 총장 정직 또는 해임 등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가능성이 높다. 한 친문 의원은 “가장 큰 걱정은 어떻게 하면 윤 총장 해임의 후유증을 줄이느냐였다. 문 대통령 고민도 이 지점이었다”면서 “하지만 징계위원회 결정이 나면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 부담도 줄어든다. 절차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추 장관이 총대를 멨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11월 26일 대검찰청 모습. 사진=이종현 기자
이는 추 장관 ‘결단’에 여권, 그것도 주류인 친문계 의중이 반영됐음을 추론케 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가 표면적으론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싸움이었다면, 이젠 여권 전체가 윤 총장을 포위하는 구도로 변했다는 얘기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길게 끌면 우리가 불리하다. 늦어도 올해는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아졌다”면서 “추 장관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추 장관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최근 들어 이낙연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가 일제히 추 장관 지원사격에 나선 것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11월 들어 여권 내부에선 추 장관을 향한 비판이 늘어났었다. 윤 총장이 버틴다면 추 장관이라도 교체해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추 장관 거취 언급 대신 윤 총장 몰아내기에 화력을 모으는 형국이다.
정가에선 여권의 이러한 움직임 뒤에 컨트롤타워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하게 나돈다. 추 장관이 전면에 서긴 했지만, 친문계 특정 라인이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권 핵심 인물인 A 씨가 추 장관 취임 후부터 줄곧 검찰개혁 등을 논의하며 윤 총장 대응에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추 장관과 청와대 및 당 간의 가교 역할까지 자처하고 있다는 말도 뒤를 이었다. A 씨와 가까운 한 여권 원로는 이렇게 말했다.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무척 바쁘게 지낸다고 들었다. 윤석열 총장 때문이다. 문 대통령에게 윤 총장 해임을 직접 건의했고, 또 이를 설득했다고 들었다. 윤 총장 타깃이 문 대통령과 친문 세력임이 분명하다는 게 A 씨 판단이다. 추미애 비토론이 고개를 들자 ‘지금은 아니다’라는 말을 민주당 의원들에게 하고 다녔다. 윤 총장 감찰 아이디어 역시 A 씨를 포함한 몇몇 친문 인사들이 냈다고 들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A 씨가 사석에서 했던 윤 총장 관련 발언도 들려줬다. 친문계가 윤 총장에 등을 돌리게 된, 이른바 ‘결정적 장면들’이었다. 우선,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임명 때 윤 총장이 강하게 반발했던 것을 두고 친문 인사들은 대통령에 대한 ‘항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뒤 검찰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청와대로까지 칼을 겨누자 윤 총장은 ‘공공의 적’이 됐다.
윤 총장이 지난 10월 23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며 민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인 것을 두고도 A 씨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토로했다고 한다. 검찰총장이 아닌, 야권 대선후보라도 된 듯한 태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1월 5일 대전지검의 월성원전 1호기 수사 착수는 ‘결정타’가 됐다. 윤 총장이 문 대통령에게 선전 포고를 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서의 민주당 재선 의원은 “윤 총장이 있는 한 언제 또 월성1호기와 같은 수사가 시작될지 모른다. 더군다나 내년부턴 정권 힘이 빠지는 집권 후반기다. 그리고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다. 잠재 리스크(윤석열)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라고 했다. A 씨와 가까운 여권 원로도 “궁지에 몰린 윤 총장이 반격카드를 준비 중이란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다른 걸 떠나 검찰총장이 이렇게 의도를 갖고 수사를 이끌면 되겠느냐”면서 “윤 총장에 대한 정권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라고 했다.
물론 추 장관 배후 가능성에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5선 의원에 집권당 대표까지 지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추 장관이 과연 외부 ‘훈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문 대통령이 한 달 만에 물러난 조국 전 장관 후임으로 자신을 임명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했던 추 장관이 스스로 판세를 읽고, 결단을 내렸을 것이란 분석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치권에선 추 장관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진다(관련 기사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여권 흔드는 ‘추미애 리스크’ 막후). 윤 총장 거취가 정해지는 대로 추 장관이 물러날 것이란 게 중론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추 장관과 친문진영 간 속내가 엇갈릴 가능성 때문이다. 추 장관 주변에선 “‘눈엣가시’나 다름없던 윤 총장과 싸운 것은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반면, 친문 인사들은 “공은 인정한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추 장관 활용법에 대해선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 친문 핵심 인사가 사석에서 추 장관 얘기가 나오자 “혼자만 살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단 말도 화제를 모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