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대선 출마 선언과 맞물려 세대교체론 확산…‘블루칩’ 찾는 친문계엔 현실적 대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찰과 법무부의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 현장검증이 열린 11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박용진 세대교체론을 눈여겨봐라.”
한 친문 인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세 변수 관련해 던진 말이다. 이 발언의 핵심은 ‘치고 나간 박용진 민주당 의원의 타이밍’이다. 박용진 의원이 1년 6개월이나 남은 차기 대선 출마에 군불을 땐 것은 당내 세대교체를 겨냥한 일종의 애드벌룬이라는 것이다. 세대교체 바람을 업은 97세대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여권 전면에 등장, 오는 2022년 3·9 대선 때까지 바람몰이를 이어가겠다는 포석이 깔렸다는 의미다. 박용진(1971년)·박주민(1973년) 의원은 97세대의 쌍두마차로 꼽힌다.
실제 박용진 의원은 박주민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직후 “대통령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고 측면 지원했다. 이들은 11월 9∼10일 나란히 언론 등 인터뷰를 통해 서울시장과 차기 대선 출마에 대해 “여러 사람이 권유도 해주고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박주민)”, “진지하게 고민 중(박용진)”이라고 각각 밝혔다. 친문계 한 관계자는 “내년 4월 재보선도 치르지 않았는데, 박용진 의원이 왜 벌써 차기 대선 출마를 언급했겠느냐”며 “서울시장 하마평에 오른 86(1980년대 학번·1960년대 생)그룹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을 겨냥한 것”이라고 했다. 우 의원(1962년생)과 박 장관(1960년생)은 나란히 86그룹에 속한다.
그간 여권 내부에선 세대교체 정체의 원인으로 ‘86그룹’이 꼽혔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발탁한 86그룹은 16∼17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에 대거 입성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주당 우상호·송영길 의원,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여의도에선 30대 젊은 정치인을 가리켜 ‘386’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점차 나이가 들면서 486·586이 됐다. 파릇파릇했던 이들이 50대를 훌쩍 넘자, 586세대와 세대교체론이 상충한다는 이유로 최근엔 86그룹으로 통칭한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적 변곡점마다 당 주류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기사회생하자, 당 안팎에선 86그룹을 향해 “숙주·하청 정치를 통해 또 다른 권력이 됐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국회 한 보좌관도 “대체 한 일이 뭐냐는 비판에 86그룹도 할 말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들이 차기 대선은커녕 당 대표에도 오르지 못하면서 97세대로의 세대교체는 한참 더뎌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신주류로 등장한 86그룹은 청와대를 비롯해 내각에 대거 등용됐지만, 당 대표 경선 등에선 줄줄이 미끄러졌다. 당권 도전의 단골손님인 ‘이인영·우상호·송영길’ 3인방도 당 대표에는 끝내 오르지 못했다. 이들의 최대치는 원내대표와 최고위원이었다. 친노(친노무현)계 한 관계자는 “86그룹이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하는 것도 ‘이제는 자리에서 비켜줘야 한다’는 부채감이 한몫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97세대가 86그룹의 자리이동 시기에 맞춰 세대교체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당 안팎의 세대교체 발판은 마련됐다. 민주당 현역 중 97세대와 08세대(2000년대 학번·1980년대 생)는 직전 국회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1970년대 생만 민병덕 이원택 허영(1970년) 의원부터 고민정 최혜영(1979년) 의원까지 20명을 훌쩍 넘는다. 08세대도 신현영(1980년) 의원부터 오영환(1988년) 의원까지 5명이다. 당 최연소 의원은 전용기 의원으로 1991년생이다. 야권까지 포함하면 7080년대 생만 전체 20%가량인 55명에 달한다. 여야 통틀어 최연소 국회의원은 1992년생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다. 정의당 김종철 호가 출범한 이후 여의도에선 ‘박주민 박용진 김종철(1970년생)’을 97세대 트로이카로 부른다. 민주당 한 청년 당원은 “지금이 86그룹 이후 새로운 세대가 출현할 적기”라고 말했다.
97세대가 지원하는 박주민 카드는 ‘친문계’ 한가운데도 관통한다. 박주민 의원은 친문계의 샛별이다. 앞서 8·29 전당대회에서 박주민 의원(17.9%)은 2위인 김부겸 전 의원(21.4%)보다 3.5%포인트 낮은 3위를 기록했지만, ‘의미 있는 패배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당시만 해도 대세론에 이견이 없었던 이낙연 대표·영남권 주자인 김 전 의원과 한판 붙으면서 자신의 체급을 당 대표급으로 끌어올렸다. 경선 과정에서 초·재선 개혁파인 이재정 의원을 비롯해 김남국 김용민 최혜영 장경태 의원 등의 우군을 확보한 것도 수확이다. 당 내부에선 “박주민계가 형성됐다”는 말까지 돌았다.
고무적인 결과는 민심에서 나왔다. 박주민 의원은 국민 여론조사에서 22.1%를 기록, 김 전 의원(13.9%)을 크게 따돌렸다. 권리당원(박주민 21.5% vs 김부겸 14.8%)과 일반당원(박주민 19.2% vs 김부겸 18.1%) 투표에서도 앞섰다. 당 내부에선 “친문계가 박주민을 찍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반면 김 전 의원은 선거 초반부터 친문계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으나, 당 주류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하면서 ‘상처뿐인 2등’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재보선 판이 달아오르면서 친문계가 박주민 카드를 밀 것이란 전망이 늘고 있는 배경이다. 친문계 초선 의원은 “(당원들 사이에서) 박주민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 주류가 박주민 카드를 전폭적으로 지원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갈 길 잃은 친문계 표심이 결국 박주민 의원에게 수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민주당 권리당원 수는 80만 명을 웃돈다. 친문계가 박주민 카드로 쏠릴 경우 8·27 전당대회 이후 세 차례나 있었던 당권 판세의 재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추미애 호를 시작으로 이해찬 호(2018년 8·25 전당대회), 이낙연 호(2020년 8·29 전당대회)가 출범한 것도 ‘친문계 전폭적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블루칩’을 찾는 친문계 현실과 맞물려 있다. 친문계는 당 최대 주주이지만, 포스트 문재인으로 세울 차기 대선주자는 없다. 양강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친문계와 거리가 있다. 범친노계인 정세균 국무총리도 적자는 아니다. 친문계가 주축이 된 ‘민주주의 4.0 연구원’이 원조 친노 이광재 의원 등을 띄우는 것도 제3후보론 찾기의 일환이다.
서울시장 경선에서 박주민 카드로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다면, 부산시장도 97세대인 김해영 전 의원(1977년)이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쏘아 올렸던 세대교체론을 97세대인 ‘박주민·김해영 카드’를 통해 선점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97세대의 전면 등장을 통한 혁신 공천은 ‘젠더 프레임’과 ‘정권 심판론’까지 무력화하는 일거양득 카드다.
재선에 불과한 박주민 의원 개인에게도 서울시장 출마는 대권 잠룡으로 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간 발목을 잡았던 ‘광역단체장 출마 불이익’ 족쇄도 풀렸다. 민주당은 지난 8월 ‘임기를 4분의 3 이상 마치지 않은 선출직 공직자가 출마할 경우 경선 심사 결과의 100분 25를 감산한다’는 규정에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경우엔 감산하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을 붙였다.
여기에 민주당이 ‘권리당원 투표 50%, 국민여론 50%’로 재보선 틀을 유지키로 하면서 친문 지지를 받는 박주민 의원 공간은 한층 넓어졌다. 범진보 연합군 형성의 최적 카드라는 점도 강점이다. 정당 입문 이전부터 ‘거리의 변호사’로 유명세를 탔던 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도 앞장섰다. 시민정치 한계를 절감하던 찰나에 문 대통령의 권유로 2016년 총선에 뛰어들었다. 친문계 지지층은 물론, 진보 지지층까지 포섭할 카드인 셈이다.
2018년 8·27 전당대회에서 박주민 의원이 최고위원 득표 1위를 차지하면서 ‘깜짝 이변’을 연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의당 한 관계자도 박주민 카드에 대해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박주민 카드를 내세울 경우 정의당 일부 지지층도 이탈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역으로 허약한 중도 외연 확장성은 박주민 의원이 넘어야 할 최대 과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