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예보’ 맑다고 할 때 우산 챙겨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보고서 작성의 주체인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주요 고객은 크게 기업과 투자기관, 자산운용사다. 애널리스트의 고액 연봉은 주로 이들 법인들이 주식 주문을 낼 때 발생하는 매매수수료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주식을 살 때도, 팔 때도 수수료는 발생한다. 왜 유독 ‘사라’고만 할까.
먼저 애널리스트가 담당하는 기업과의 관계다. 이들은 주요 정보를 담당기업으로부터 주로 얻는데, 해당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쓰면 정보를 얻기 어렵다. 부정적 보고서를 쓰겠다는 데 정보를 줄 리 만무하다. 출입정지는 물론 심할 경우 해당기업이 증권사 경영진 측에 압력을 가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자산운용사 같은 전문투자기관도 매도 보고서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매도 의견 종목을 보유한 운용사 입장에서는 보고서 때문에 주가가 떨어질 경우 펀드수익률이 하락할 수 있다. 펀드매니저가 애널리스트와 같은 의견을 가져 미리 해당 종목을 팔아 치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 펀드매니저의 밥줄인 펀드수익률에 흠집 내는 애널리스트가 반가울 리 없다. 매년 이뤄지는 펀드매니저들의 애널리스트 평가는 몸값을 좌우하는 주요한 기준이다.
지난 금융위기 이전 국내 최대 규모 운용사가 대량으로 보유한 종목들에 대해 역시 국내 최대 규모 증권사가 매도 의견도 아닌, 문구상에 부정적인 언급 정도를 한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해당 운용사가 증권사 영업부서는 물론 리서치센터에 상당한 불만을 표시, 담당 애널리스트가 해명을 하는 사태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역시 국내 최대 규모의 다른 증권사도 수년 전 이 운용사 보유 종목에 대한 리서치센터 보고서 관련 갈등으로 한때 주식위탁영업부문 점유율이 줄어들자 ‘백기투항’했다는 사례도 회자되고 있다.
개인 고객의 항의 역시 부담 요인이다. 몇 년 전 모 증권사 자동차 애널리스트가 매도 보고서를 냈다가, 개미들의 항의 전화에 곤욕을 치러 한동안 업무를 보지 못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외국계의 경우 어떻게 국내 증권사보다 매도 보고서를 더 자주 낼 수 있을까. 일단 국내 증시에 대한 영향력이 다르다. 기업이 자사에 대해 매도 리포트를 쓴 외국계에 항의를 잘못하다가는 외국인 투자자 차익 실현으로 인한 주가의 추가하락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외국계 증권사의 고객기반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므로 몇몇 기업이 거래를 줄인다고 해도 별 타격이 없다.
또 일부 외국계의 경우 더 큰 고객의 이익을 위해 리포트를 활용한다는 추측도 있다. 즉 매도 리포트를 낸 이후 더 싸게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외국계 리포트의 방향과 이들 창구에서의 매수도 현황이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서울 지점에서 매도 리포트를 내고, 해외 본사에서 사들인다면 확인할 길이 없다.
#고객 vs 회사 이해상충
모든 증권사들이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다지만, 그 앞에는 ‘회사에 이익을 주는’이란 말이 숨겨져 있다. 주식의 경우 수수료가 많이 발생하려면 주가가 오르는 게 좋다. 주가가 오르면 수수료도 늘고, 발생한 수익으로 다시 거래를 하게 되니 증권사에 많은 보탬이 된다. 반대로 주가가 내려도 매도시 수수료가 발생하지만, 투자에 실망한 투자자는 거래를 중단하거나 줄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사게 되면 종목은 물론 시장에도 긍정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펀드의 경우 더욱 뚜렷하다. 펀드에 계속 돈이 들어오면 주가를 더 올릴 여력이 생기고, 주가 하락시에도 추가 매수를 통해 낙폭을 줄일 수도 있다. 또 무엇보다 펀드 관련 자산운용사와 판매사의 수익은 운용자산 크기에 비례하므로 환매보다는 운용자산을 늘릴 수 있는 추가 투자를 권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정작 시장이 좋지 않을 때 환매를 권해야 함에도 오히려 추가 투자를 권하는 것은 환매가 나올 경우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고, 이는 주가 하락을 부채질해 펀드 수익률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추가 투자를 하는 적립식을 최고의 투자방법으로 권하는 이면에도 이 같은 메커니즘이 깔려 있다.
#우상향하는 증시의 특성
객관적으로 경제가 성장의 본능을 갖고 있는 만큼 증시 역시 우상향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좋은 종목을 골라 길게 투자한다면 성공 확률이 높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위기 상황에서는 늘 위험을 경고하는 비관론자들이 두각을 나타내지만, 실상 이 같은 위기는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 비관론자도 시장에 필요하지만, 정작 돈을 버는 데 확률이 높은 쪽은 낙관론자다.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경제성장과 기업이익 성장을 전제로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처럼 애널리스트도, 펀드매니저도 어쩔 수 없는 이해관계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 ‘여의도’의 목소리를 제대로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최선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적극매수는 매수, 그냥 매수는 보유, 중립 또는 보유는 매도로 이해하는 게 좋다. 그리고 투자 의견과 관계없이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최대한 투자 판단 근거를 제시하려 애쓴다. 긍정적인 재료보다 부정적 재료에 대한 설명이 더 긴 경우에는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애널리스트의 보이지 않는 경고가 담겨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한 펀드매니저는 “매년 늘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는 게 펀드매니저다. 흔히 좋을 때 돈을 더 넣으라고 하지만, 실상 좋은 때 환매하고, 좋지 않을 때 추가로 납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좋을 때는 돈이 계속 들어오므로 환매로 인한 수익률 축소 효과가 적다. 반대로 나쁠 때는 저렴해진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익이 어느 정도 쌓이면 적절히 차익 실현을 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