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한국인의 밥상
손님도 가게도 대를 잇는다. 긴 세월 한결같은 뚝심 있는 맛,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정을 만나본다.
매일 아침 깨를 볶으며 고소하게 37년을 보낸 경기 성남 기름집.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에는 ‘기름골목’이 있다. 10여 미터가 넘는 골목 양쪽에 온통 기름집만 들어선 곳.
어느 집에 들어가도 10년이 아니라 20년을 훌쩍 넘는 노포들 뿐. 하지만 그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오래된 곳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눈에 ‘하트’를 띄우고 두 살 배기 손자에게 병에 기름 넣는 법을 가르치는 할아버지 장찬규 씨와 그 곁을 지키며 만면에 미소를 띈 할머니 최연화 씨를 만나게 된다.
남편 장찬규 씨와는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지만 그 친구와 결혼을 하고 가업을 이어 기름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연화 씨. 이제는 장성해 가정을 꾸린 아들도 함께하며 ‘3대 기름집’이 돼서 든든하단다. 요즘은 기계가 다 해주는 세상이라 편할 것 같아보여도 참깨 건 들깨 건 겉으로 봐선 제대로 볶아졌는지 구분이 힘든데 그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려면 대를 이어온 눈썰미가 필요하다고.
참기름 들기름은 물론 동백, 고추씨, 홍화씨, 살구씨, 피마자기름까지 갖은 기름에, 미숫가루, 콩, 도토리, 메밀, 검정콩, 율무, 귀리, 감자, 고춧가루까지. 웬만한 가루는 죄다 만든다. 하루를 가득 채운 주문으로 바쁜 가게가 잠시 한산해질 무렵이면 그 때가 식사시간. 손님들이 앉던 조그마한 평상은 부엌이자 식탁으로 변신한다. 항상 달궈져있는 깨 볶는 솥에 들기름 바른 김을 몇 번 스치기만 하면 김구이가 되고. 직접 빻은 메밀가루는 생들기름으로 묵은지메밀전을 부친다.
장찬규 씨가 제일 좋아하는 고추지두부범벅엔 그가 어릴적 고추 농사를 지으신 부모님의 추억이 담겨있다. 4대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최연화 씨 가족의 고소한 밥상을 만나본다.
이밖에 대전 유성구 40년 전통의 묵집, 전북 익산 50년째 매일 만드는 100% 대창 피순대 식당, 충북 영동 신발집 등을 소개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