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만원 개인계좌 수령’ 파문에 ‘셀프인상’ 의혹까지…선수들 배신감 “그렇게 많은 돈을 받고 있었나”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가 선수 생활 중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사진=임준선 기자
물의를 일으킨 것은 죄송하지만 여전히 억울하다고 말하는 이대호. 선수협 회장 이대호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전·현직 선수협 관계자들과 익명을 요구한 선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하나씩 그 내용을 짚어보기로 한다.
이 일은 이대호가 선수협 회장을 맡고 나서 함께 일할 파트너라고 데려온 ‘마케팅 전문가’ 김태현 사무총장이 판공비를 현금으로 지급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시작됐다. 12월 1일 한 매체는 김태현 사무총장이 연봉 이외의 판공비를 법인카드 대신 현금으로 받았고, 사무총장 취임 후 4개월치 판공비를 법인카드 사용분을 제외한 약 690만 원가량 정산받았다는 것과 5, 6월에는 각각 250만 원을 지급받았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김태현 사무총장은 선수협 보도자료를 통해 “판공비를 현금으로 지급해달라고 신청한 것은 사실”이라며 “법인카드 대신 현금 사용이 가능하지 않나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면서 자신의 무지로 인해 발생된 일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그는 현금화한 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진 않았지만 만약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된 부분이 발견된다면 원상복구 해놓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또 다른 매체에서는 사무총장의 판공비뿐만 아니라 이대호 선수협 회장의 판공비에 주목했다. 이대호도 판공비를 법인 카드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 계좌로 받았고, 금액이 이전 회장이 받은 돈보다 두 배 이상 인상됐다고 밝혔다. 당시 이대호는 자신의 판공비 관련해서 “공익을 위해 사용했다”고 설명했고, 김태현 회장과 함께 동반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이대호의 사퇴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이대호는 12월 2일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협회 판공비를 ‘셀프 인상’했거나 불투명하게 사용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판공비 6000만 원, 이대호와 선수들의 동상이몽
2019년 3월 18일 선수협 임시 이사회는 이대호를 회장으로 추대하는 자리였다. 임시 이사회에는 각 팀의 회장과 이사들이 참석했고, 팀당 3명씩 모두 30명과 선수협 관계자가 모인 자리였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선수 한 명은 그때 나온 이야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모두 회장을 맡지 않으려고 했다. 이렇게 회장을 맡기 싫어하는데 판공비라도 올려줘야 관심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때 이대호가 1억 원 이야기를 꺼냈다. 판공비 1억 원 인상에 난색을 표한 사람은 당시 선수협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김선웅 변호사였다. 선수협 예산을 고려할 때 1억 원 인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나온 액수가 6000만 원이었고, 회의 끝에 이전 2400만 원에서 6000만 원으로 증액된 상태에서 회장을 뽑았다.”
1억 원 인상안 관련해서 이대호는 기자회견을 통해 “내가 회장을 맡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판공비 인상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회장직을 안 맡으려는 후배들이 나설 수 있도록 액수를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을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2017년 선수협을 이끌던 이호준 회장(NC 다이노스 코치)이 물러난 이후 선수협 회장 자리는 2년여 공석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맡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임시 이사회에 참석했던 또 다른 선수는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사회에 참석하는 선수들 면면을 보면 각 팀의 주장을 비롯해 모두 몸값이 높은 선수들이었다. 나는 판공비 2억 원을 준다고 해도 안 맡으려 했다. 이대호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맡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를 떠올리면 이대호가 자신의 판공비를 인상하려고 미리 판공비를 증액하고 회장 선거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도 회장이 될 줄 몰랐기 때문에 판공비를 올리자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대호는 스스로 인정했듯이 당시 선수협 회장을 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처음에는 서로 안하겠다고 해서 각 팀별로 연봉 3위 안에 오른 선수들을 3명씩 후보자로 내자는 제안이 나왔고, 롯데에서는 이대호, 손아섭, 민병헌이 후보에 있었다고 한다. 이대호는 3월 임시 이사회가 열리기 전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선수협 관계자를 만나 자신을 회장 후보로 낼 경우 선수협에서 탈퇴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왔다. 그럼에도 각 팀 3명씩 30명의 후보자들이 ‘억지로’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거기서 이대호는 40%가 안 되는 지지를 받았다.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해도 최다득표자가 회장으로 선출된다는 규정에 따라 마침내 10대 선수협 신임 회장으로 이대호가 당선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당시 임시 이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대호가 판공비로 6000만 원을 개인 계좌로 받았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배신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지방팀의 한 선수는 판공비 논란을 기사로 접하고선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나는 선수협 회장이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지 몰랐다. 보수 형식의 판공비를 받게 됐다고 해도 그걸 왜 개인 계좌로 받는지 잘 모르겠다. 관행이라고 말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건가. 연봉 25억 원을 받는 선수가 저연봉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판공비를 받았다는 부분에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와 관련, 선수협의 한 관계자는 “이사회에 참석했던 선수들이 팀으로 돌아가 선수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면서 “세부 내용을 모른 선수들이라면 6000만 원의 회장 판공비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대호는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에 나섰다. 사진=임준선 기자
#6000만 원은 어떤 용도로 사용됐나
이대호는 기자회견을 통해 “판공비 외에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 법인카드도 안 받았다. 판공비를 받으면 회의 참석차 경비, 선수들과 식비, 선수협 미팅 경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선수협은 2012년 1월 ‘판공비는 반드시 카드로 결제하고, 증빙이 없는 판공비는 부인한다’는 내용으로 사무총장과 회장의 자금 관련 권한을 규제한 바 있다. 선수협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박재홍, 이호준이 선수협 회장을 맡고 있을 때는 통장 내역을 회계 담당 직원이 모두 확인했고, 그 내역을 회계사한테 넘겨 내용의 이상 유무를 일일이 체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대호는 기자회견에서 판공비를 관례상 회장 연봉 개념으로 이해했다고 해명했다. 판공비 사용 증빙 서류가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대호가 말한 대로 판공비를 회의 참석 경비와 선수들과의 식비, 선수협 미팅 경비 등으로 사용된 게 사실일까. 전 선수협 관계자는 “논의해야 할 현안이 있을 경우 선수협에서 회장을 만나러 부산이나 원정 지역으로 찾아갔지 회장이 서울에 올라와 미팅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비시즌에 회장이 서울에 올라와 선수들을 만나 식사를 할 수는 있겠지만 2020시즌은 코로나19로 인해 선수들의 모임이 제한적이었고, 회의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터라 회장 판공비가 순순히 선수협 관련 일에만 지출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선수협 회비는 전체 선수들의 연봉 1%를 각출해서 모은다. 저연봉 선수들한테 1%는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럼에도 월급에서 자동이체로 선수협에 돈을 보냈고, 선수협이 잘 운영되도록 힘을 모았다. 그런 선수협의 돈을 연봉 25억 원을 받는 회장이 증빙 자료 하나 없이 사용했다는 부분에 선수들이 공분을 느끼는 것이다.
이대호가 처음 선수협 회장에 취임할 당시 “선수협은 2군 선수들, 어린 선수들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밑에서 고생한 선수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쓸 것”이라고 밝혔다. 1988년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선수협 결성을 주도했던 선배 최동원(작고)의 동상 앞에 헌화하며 “최동원 선배가 잘 만들어 온 부분을 후배로서 잘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임기 2년이 채 안 된 상태에서 자신이 데려온 사무총장의 판공비 현금화와 회장한테 지급되는 보수 형식의 판공비 6000만 원 논란으로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주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던 셈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